결국 최저임금 법정결정시한을 넘겼다. 최저임금법은 고용노동부가 최저임금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한 지 90일 안에 다음해 최저임금의 액수를 결정해 고용부에 제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고용부가 지난 3월29일 심의를 요청하면서 법정 기한이 6월27일로 결정됐지만 이 기한이 지켜진 경우는 몇 차례 되지 않는다. 그나마 1994년부터 2006년까지는 최저임금 적용 시점이 매년 9월이었던 관계로 파행을 거듭한 끝에 시행 직전 아슬아슬하게 결정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최저임금을 둘러싼 갈등의 골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최소한의 생존 수단을 넘어선 ‘인간다운 삶’을 위한 논의로 향하면서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측과 적정한 보상을 요구하는 측 사이의 팽팽한 줄다리기는 올해도 반복되고 있다. 기자가 맞닥뜨린 현장에서도 최저임금발(發) 고통의 아우성은 노사를 가리지 않고 터져 나온다.
최저임금 인상의 후폭풍은 상대적으로 열악한 여건에 놓인 고령의 근로자나 단기 일자리 근로자에게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대형 아파트 단지에서는 경비원 집단 해고가 잇따랐고 직업계고 졸업생의 취업률은 7년 만에 30%대로 떨어졌다. 편의점이나 피자가게·빵집 등에서는 아르바이트를 최소화하면서 단기 일자리 근로자들이 구직난에 시달리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의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의 처지도 나을 건 없다. 고용인원을 최소로 유지하면서 버티고 있지만 불경기·임대료·금융비용 등이 겹치면서 폐업에 내몰리는 곳이 상당수다. 최저임금 결정시한을 앞두고 본지가 소상공인연합회와 함께 868명의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긴급 설문조사에서는 지난해 영업이익이 1년 전보다 줄었다는 응답 비율이 88.4%에 달했다. 영업이익 감소율이 20%를 넘는 곳도 61.1%로 집계됐다.
한 대형마트 노조가 임금협약을 준비하면서 조합원에게 생활임금 적정선에 대해 조사한 결과 가장 많이 나온 구간이 ‘200만~220만원’이었다. 임금을 지급해야 하는 자영업자나 중소기업인 가운데는 월급쟁이보다 못한 처지가 상당수다. 소상공인 10명 중 6명의 벌이는 200만원도 되지 않는다. 여기에는 임대료· 인건비·재료비·금융비용 등이 포함돼 있다. ‘차 떼고 포 떼면’ 몇십만 원도 손에 쥐지 못하는 셈이다. 그나마 전체 응답자의 22%는 장사가 되지 않아 적자를 감수하고 있다.
물론 최저임금 그 자체로는 죄가 없다. 2017년 9월 문재인 대통령과 만난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최저임금이 오르면 사람들은 지출을 늘리고 추가적인 소비를 진작하며 이는 성장모델의 균형을 바꿔놓는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동시에 “임금 인상 속도가 너무 빠르면 일부 구성원들이 도태될 수 있다. 변화는 언제나 환영할 일이지만 늘 효율성을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사학자 더글러스 노스는 “제도의 ‘경로 의존성’이 문제”라고 설파했다. 법률이나 제도, 관습이나 문화 등은 한번 형성되면 외부의 충격에도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2,000년 전 로마시대 마차의 차로가 기관차의 선로에 영향을 미치고, 화물철도에 실려 이동하는 로켓의 지름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말이다. 문재인 정부 역시 (최저임금 문제에 있어서는) 기존 경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로 의존성’에 갇혀 있는 듯하다.
헌법 제32조 제1항 제2문은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 증진과 적정 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고용 증진’과 ‘적정 임금의 보장’의 균형을 위해 최저임금제를 시행해야 한다는 취지인데 후자만 고집하느라 전자의 가치를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더 늦기 전에 지금까지의 길을 버리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설 수는 없는가. 기존 경로를 벗어나는 ‘경로이탈자(clinamen)’가 될 수 없다면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 이어 새로운 길을 놓는 ‘경로개척자(pathfinder)’가 되는 것은 어떨까. ‘길’에 갇혀 앞으로도, 뒤로도 가지 못하는 우(愚)를 범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머리를 맞대고 다음 발자국만큼은 제대로 된 방향으로 내딛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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