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시행된 금융혁신지원특별법에 따라 금융당국이 지정한 혁신금융서비스가 이달부터 속속 시장에 나온다. 첫 테이프를 끊은 서비스들은 가입과 해지가 간편한 해외 여행자 보험서비스와 스마트폰으로 여러 금융사의 대출 금리를 조회할 수 있는 대출 플랫폼 서비스 등이다. 규제 특례를 통해 소비자 편익을 높이는 금융서비스들을 내놓겠다는 당국과 업체의 노력이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23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1~4차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된 32건 중 6건의 서비스가 이달 처음으로 출시된다. 이들 6건의 서비스 중 가장 먼저 출발선을 끊은 곳은 NH농협손해보험이다. NH농협손보는 지난 12일 한 번만 가입하면 재가입 시 별도의 상품안내나 공인인증 절차 없이 보험을 가입·해지할 수 있는 ‘온오프 해외여행보험’ 상품을 선보였다. 두 번째 해외여행부터는 보험료 10% 할인혜택도 받을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오는 7월에는 가족형 가입 기능도 추가될 예정이다. 김광수 NH농협금융 회장은 해당 서비스 출시를 기념해 온오프 해외여행보험 1호 고객으로 가입하기도 했다.
모바일자산관리서비스 뱅크샐러드를 운영 중인 레이니스트도 이달 중 NH손보와 같은 보험서비스인 ‘스위치 해외여행자보험’을 출시한다. 스위치 해외여행자보험 역시 특정 기간 내 재가입 시 별도 절차 없이 여행 일정만 입력하면 된다. 레이니스트 관계자는 “뱅크샐러드 앱을 통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으며 고객의 항공권·여행사 결제 명세 등을 통해 보험의 필요 여부를 확인하고 가입을 유도할 것”이라며 “현재 여행자보험은 삼성화재의 상품인데 앞으로 다른 보험사와의 제휴를 통해 상품을 늘려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여러 금융회사의 금리·한도 등 대출조건을 한 번에 비교하고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대출 서비스 플랫폼 4건도 출시를 앞두고 있다. 이들 서비스에는 대출모집인이 1개의 금융사와만 대출모집업무 위탁계약을 체결해야 하는 ‘1사 전속주의’ 의무가 면제된다. 대출금리 조회 상품은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를 시작으로 핀셋(빅데이터를 활용한 모바일 대출다이어트 플랫폼), 핀다(데이터 기반 원스톱 대출 마켓플레이스), 마이뱅크(맞춤형 대출검색 온라인 플랫폼)등이 잇따라 선보일 예정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다양한 대출상품의 소비자 선택권이 높아지는 한편 금리 투명성 제고와 소비자의 이자비용 부담 완화가 기대된다”며 “유사한 서비스의 경우 핀테크 업체들이 얼마나 많은 금융사와 대출모집 위탁계약을 체결해 차별화된 서비스를 내놓을 지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쏟아지는 혁신금융서비스-시행 앞둔 혁신금융서비스 32건 들여다보니]
신용카드 기반 송금서비스부터
문자 인증만으로 온라인몰 결제
빅데이터 이용 주택금융 서비스
AI 활용 보험상품 등 속속 출시
혁신금융서비스의 핵심은 금융규제 샌드박스가 제공된다는 것이다. 규제 샌드박스는 신기술과 신산업의 발전을 위해 특정 서비스에 시간·장소·규모 등 일정 조건을 한시적으로 풀어주는 제도다. 어린이가 모래를 마음껏 가지고 놀 수 있게 한다는 의미인 ‘모래 놀이터’에서 유래했다.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되면 기본 적용기간 2년에 연장기간 2년까지 포함해 최장 4년 간 규제 특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같은 규제 개혁 틀 안에서 기존 금융사와 핀테크들의 신기술 개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이 지난 4월 발표한 1차 혁신금융서비스는 9건으로, 노점에서 결제 가능한 신용카드 등 국민 생활을 바꿀 새로운 기술이 담겼다. 문자메시지(SMS)로 인증하는 온라인 간편결제 서비스도 기술 발전에 맞춰 금융소비자들의 결제 방식을 바꿀 혁신금융서비스로 평가받는다. 우선 1차 혁신금융서비스 사업자로 선정된 BC카드는 내년 1월부터 개인 가맹점을 통한 QR 간편결제 서비스를 운영한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은 노점에서도 별도 단말기 없이 QR코드로 모바일 결제를 진행할 수 있다. 국내 계좌나 카드 발급이 어려운 외국인 고객도 따로 환전할 필요 없이 스마트폰 앱으로 간편하게 결제가 가능하다. 국민은행의 알뜰폰 사업을 통한 금융·통신 융합 서비스도 오는 9월부터 시행된다. 이는 금융업자가 통신업을 영위하는 첫 사례로, 유심만 넣으면 공인인증서나 앱 설치 등 복잡한 절차 없이 은행과 통신서비스를 한 번에 가입·이용할 수 있다. NH손해보험과 레이니스트의 ‘스위치보험’도 이달부터 서비스를 개시한다. 마치 스위치로 켜고 끄듯 보험 개시와 종료를 선택할 수 있는 혁신적인 상품이다. 신한카드는 내년 1월부터 신용카드로 경조사비를 내거나 중고품 거래 같은 개인 간 일회성 직거래를 할 수 있는 신용카드 기반의 송금 서비스를 개시한다.
지난 5월 2차 혁신금융서비스들은 대출상품 비교 서비스가 주를 이뤘다. 비바리퍼블리카, 핀다, 핀셋은 사용자가 여러 금융회사의 대출상품 조건을 맞춤 검색해 원하는 상품을 고르고 신청까지 할 수 있는 서비스를 다음 달 중 선보일 예정이다. 이와 함께 우리은행은 드라이브 스루 매장이나 공항 인근 주차장에서 환전·현금인출할 수 있는 서비스를 연내 출시한다. 이외에도 비상장기업 주주명부 및 장외거래 서비스, 부동산 유동화 증권을 일반 투자자에게 발행·유통하는 상품, 비외부감사 기업 등의 세무회계 정보를 활용한 신용평가·위험관리 모형 제공 서비스 등도 2차 혁신금융서비스로 선정돼 한창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3차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된 8건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보험계약 서비스와 스마트폰 앱 결제 서비스 등 크게 2가지로 분류된다. 페르소나시스템은 내년 초 AI를 활용한 보험상품 제공 서비스를 출시한다. 이 서비스는 가입 상담부터 계약 체결까지 텔레마케팅(TM)채널 모집 전 과정을 AI를 통해 진행한다. 핀크 역시 통신서비스 이용정보를 활용한 신용평가 시스템을 내놓기 위해 시스템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사업자등록을 하지 않은 개인도 결제대행업체(PG)를 통해 신용카드 결제 수납할 수 있도록 스마트폰 앱 개발도 이뤄진다.
금융당국은 지난 12일 4차 혁신금융서비스 지정 발표를 통해 6건의 서비스를 추가로 지정했다. 이날 선정된 신규 혁신금융서비스는 선불거래지급수단을 기반으로 한, 지인간 계 모임 플랫폼 서비스, 온라인쇼핑몰 등에서 문자 인증만으로 간편결제가 가능한 출금 서비스, 공공데이터를 활용한 빅데이터나 AI 알고리즘을 통한 주택금융 서비스 등이다.
4차에 걸쳐 32건의 혁신금융서비스가 지정되는 과정이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금융당국의 심사 논의 과정에서 스마트폰 앱을 이용한 결제 서비스를 운영하는 업체 간 특허 갈등이 불거져 나왔기 때문이다. 이에 당국은 혁신금융심사위원회를 열고 심사기준을 명확히 했다. 혁신금융서비스 지정 이후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 특허심판원 심결 확정 시 지정을 취소하고 지정 이전에 분쟁이 발생했거나 예상되는 경우에는 특허청 등 전문가 의견을 청취하겠다는 내용이다. 현재 갈등을 겪었던 두 업체의 서비스는 여러 차례의 논의 끝에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됐다.
한편 금융당국은 지난달 3일부터 17일까지 신청받은 37건 중 남은 서비스 24건에 대해 오는 26일 금융위원회에 상정하는 등 순차적으로 처리할 계획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신청받은 서비스 가운데 남은 서비스를 순차적으로 처리하는 한편 혁신금융서비스가 곧 시장에 출시되는 만큼 이에 대한 모니터링도 면밀히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