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아이폰용 패널 공급업체를 다변화하기 위해 중국 BOE에 접촉한 것은 일본 규제의 영향이 현실화하고 있는 방증이다. BOE가 공급사로 추가될 경우 아이폰용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을 독점 공급 중인 삼성디스플레이는 직격탄을 맞게 된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예상보다 낮은 아이폰 패널 수요로 애플로부터 약 8,000억원의 보상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10일 외신 및 업계에 따르면 애플은 아이폰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인 BOE에 접촉했다. 일본의 수출 규제 탓에 삼성디스플레이 등 국내 업체의 OLED 패널 생산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디스플레이 업계의 한 관계자는 “품질만 된다면 BOE가 애플에 패널을 공급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만 일본의 수출 규제에 따른 선제조치라는 점에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BOE는 이미 화웨이 등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에 중소형 OLED를 공급하고 있다. 화웨이 ‘메이트 20 프로’에 들어간 OLED 패널이 대표적이다. 화웨이의 폴더블폰인 ‘메이트 X’의 패널 역시 BOE가 납품한다. 애플에 패널을 공급한 경험도 있다. BOE는 현재 아이패드와 맥북에 들어가는 액정표시장치(LCD) 패널을 공급하고 있다. 특히 BOE는 애플 공급을 염두에 두고 플렉시블 OLED 생산라인 가동도 준비 중이다. 외신에 따르면 BOE 측은 “올해 말 가동하는 B11과 내년 가동하는 B12는 모두 애플을 위한 생산라인”이라며 “지난해부터 본격 가동한 중소형 OLED 생산라인의 수율 역시 크게 개선됐다”고 밝혔다. 다만 화웨이에 납품한 OLED 패널에 ‘녹색 테두리’ 결함이 발생하는 등 패널의 품질은 국내 제품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BOE가 아이폰 패널 공급업체로 선정될 경우 삼성디스플레이는 직접적인 타격을 받게 된다. 아이폰용 OLED 패널을 독점 공급 중인 삼성디스플레이는 이미 애플 전용 생산라인의 낮은 가동률에 시달리고 있다. 애플은 연 1억대 규모의 생산량을 요구했으나 ‘아이폰 XS’ 등 OLED 채택 모델의 수요가 예상에 비해 크게 부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2·4분기에는 애플로부터 이례적으로 약 8,000억~9,000억원의 보상금을 받아 ‘깜짝 실적’을 내기도 했다.
이렇게 아이폰 수요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추가 공급업체 진입을 추진 중인 LG디스플레이(034220)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강인병 LG디스플레이 최고기술책임자(CTO) 부사장은 “일본이 발표한 규제 품목 중 불산 외에 영향을 받는 것은 없다”며 일본 규제를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당부했다. 그러나 LG디스플레이와 BOE가 모두 공급업체로 선정된다면 1차 공급사인 삼성디스플레이보다는 2차 공급사인 LG디스플레이의 물량을 가져갈 가능성이 크다.
실제 아이폰 신제품의 출시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지난 8일(현지시간) 로젠블래트증권은 “아이폰 XS는 애플 역사상 최악의 실적을 기록한 제품 중 하나”라며 “애플이 6~12개월 이내 근본적 쇠퇴에 직면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증권사가 애플에 대한 투자의견을 ‘중립’에서 ‘매도’로 낮추면서 ‘매도’ 의견을 제시한 증권사는 22년 만에 가장 많은 5곳이 됐다.
한편 일본 기업들은 자국 정부의 수출 규제로 인한 한국으로부터의 반도체 조달 차질에 대비해 대책 마련에 나선 것으로 나타났다. 니혼게이자이신문과 교도통신에 따르면 소니의 컴퓨터 사업 부문이 독립한 ‘VAIO(바이오)’의 하야시 가오루 이사는 “부품 조달에 영향이 있는 것은 틀림없다”며 한국 이외에서 대체 조달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컴퓨터 제조사 후지쓰크라이언트컴퓨팅은 제품의 설계를 변경하는 방안까지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이토 구니아키 사장은 “다른 공급원이 있어서 당분간은 괜찮다”면서도 “문제가 장기화하면 설계 변경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