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가

계속된 '최·윤 갈등' 누군가 관둬야 끝나나

키코·삼바부터 예산·인사까지

사사건건 크고 작은 갈등 연속

국회서도 두사람 관계 우려 나와

개각·총선 앞두고 崔 거취 변화

건전한 긴장 관계 필요하지만

외부로 갈등 노출…시장엔 혼선

지난해 7월25일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 참석한 최종구(오른쪽) 금융위원장과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서로 등을 돌린 채 자리에 앉고 있다. /서울경제DB지난해 7월25일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 참석한 최종구(오른쪽) 금융위원장과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서로 등을 돌린 채 자리에 앉고 있다. /서울경제DB



‘교수 시절에도 그렇게 주장하셨겠습니까.’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에 대해 이른바 ‘교수 시절’ 발언을 한 것은 지난해 10월이었다. 당시 금융위 전체회의에서 회계감리를 받는 기업이 요청할 경우 대리인(변호사)을 조사과정에 입회하도록 하는 방안을 놓고 최 위원장과 윤 원장은 설전을 벌였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이슈가 불거질 때여서 사안의 민감성은 컸다. 윤 원장은 현장조사나 강제조사권이 없는 상황에서 변호사 입회까지 허용하면 조사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최 위원장은 윤 원장이 금융위가 삼성바이오로직스를 봐주려 한다는 불신 때문에 대리인 입회를 거부하고 있다고 오해하면서 ‘교수 시절’ 발언이 튀어나온 것이다. 두 사람의 물밑 갈등이 어느 정도인지를 단적으로 드러낸 ‘사건’이었다. 윤 원장은 이후 주위 지인에게 두고두고 최 위원장의 발언에 서운함을 토로했다는 후문이다.


지난 4월에는 금융위와 금감원의 실무진을 긴장시킨 일이 또 벌어졌다. 당시 KB국민은행은 SK텔레콤과 협력해 은행에서 ‘알뜰폰’ 가입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했는데, 규제 샌드박스의 일환으로 정례위에서 최종 통과될 예정이었다. 양측의 실무진이 조율해 안건으로 올린 것이다. 그러나 윤 원장은 이 자리에서 “혁신도 좋지만 상품 결합 서비스가 금산분리 이슈와 연관될 수 있으니 살펴봐야 한다”고 제동을 걸었다. 최 위원장이 되받지는 않아 별 탈 없이 마무리됐지만 두 사람의 관계를 아는 참석자들은 순간 식은땀을 흘렸다고 한다.

최 위원장과 윤 원장의 악연은 서울대 겸임교수였던 윤 원장이 2017년 금융위 자문기구인 금융행정혁신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윤 원장은 당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차명계좌 과징금 부과, 키코(KIKO) 분쟁조정, 노동이사제 도입, 인터넷전문은행 은산분리 등 금융권 핵심 이슈를 놓고 사사건건 금융위와 부딪쳤다. 그런 윤 원장이 갑자기 금감원장으로 부임하면서 최 위원장과의 불협화음은 커졌다.

윤 원장은 학자 시절부터 김상조 당시 한성대 교수 등과 함께 금융위를 해체하고 금감원의 역할과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며 ‘금융위 해체론’을 주장했다. 금감원장에 취임하면서 금융위와의 관계가 순탄치 않을 것임이 자명했다. 윤 원장의 취임 일성도 “금융감독의 역할은 단지 행정의 마무리 수단이 되면 곤란하다”며 역할 확대에 무게를 실었다. 호랑이로 통하던 윤 원장 때문에 최 위원장의 초반 기세는 눌렸고 ‘최종구 패싱론’도 나왔다.


실제 현 정부 출범 초기에 금융홀대론이 불거지는 등 최 위원장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최 위원장은 청와대로부터 “문재인 정부의 금융철학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힐난까지 받았다. “국민이 체감할 수 있게 금융개혁을 소리 나게 해달라”는 주문도 이어졌다. 윤 원장의 힘이 세지고 최 위원장의 입지는 좁아졌다. 최흥식·김기식 전 원장의 바통을 윤 원장이 이어받아 개혁에 나서는 게 아니냐는 우려는 컸다. 초반기에 다소 흔들리던 최 위원장은 중반부를 넘어서야 점차 안정감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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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인상으로 자영업자의 반발이 거세자 금융위는 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를 주도했다. 투박한 시장개입이라며 카드사들이 반발했지만 세금이 줄어든 자영업자는 환호했다. 자영업자 표를 얻어야 하는 여권에 최 위원장이 강한 인상을 남긴 계기가 됐다. 핀테크 혁신에서도 일정한 성과를 내자 최 위원장의 발언권은 커졌다. 암호화폐와 9·13 부동산대책 등 위기관리 능력도 어느 정도 인정받았다. 최 위원장의 행정고시 후배인 윤종원 전 경제수석과 도규상 경제정책비서관이 청와대로 자리를 옮긴 후 정부의 경제·금융정책 방향을 긴밀하게 공유하면서 최 위원장의 보폭도 커진 것으로 보인다.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올 4월 초 아시아나항공을 살리기 위해 경영 일선 퇴진 등과 자구안을 내놓았지만 박 전 회장의 사재 출연이나 유상증자 등의 실질적인 방안이 빠져 있고 아들 박세창 아시아나IDT 사장의 경영승계 논란이 불거지자 최 위원장은 “아버지가 물러나고 아들이 물려받는다고 하는데 뭐가 다르냐”며 직격탄을 날렸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당시 “최 위원장의 발언은 청와대 참모진이 하고 싶은 얘기를 대신해준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최 위원장에게 이런 정무적 감각이 있었다는 사실에 다들 놀라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당시 금호아시아나그룹 고위관계자는 “그룹이 공중분해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다”고 했을 정도로 임팩트가 컸다. 최 위원장이 현 정권의 정책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현 정부의 경제정책이 낙제점에 가까운 상황에서 금융정책이 성과를 내면서 최 위원장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높아진 것은 사실”이라며 “누군가 청와대 내부의 분위기를 실시간으로 전달해 정무적 감각을 키워준 것 같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신뢰가 커지자 최 위원장은 금감원을 더 옥죄기 시작했다. 금감원에 대한 예산배정을 무기로 임원 인사는 물론 조직에도 입김을 미쳤다. 5월 금감원이 도입하는 특별사법경찰의 권한 등을 놓고 두 기관의 충돌은 정점에 달했다. 특사경 수사범위를 놓고 금감원이 인지수사를 포함한 업무규칙을 기습적으로 외부에 공개하면서 논란이 되자 금융위가 발끈했다. 인지수사는 제외하자던 금융위 방침에 정면 반발한 것이다. 그러자 금융위 A 국장은 자신의 명의로 특사경을 담당하는 금감원 조사기획국에 감정이 담긴 공문을 보내 또 다른 논란을 낳았다. 2008년 금융위와 금감원이 분리된 후 두 기관 사이에 주고받은 수많은 공문 가운데 이처럼 감정이 담긴 공문은 처음이었다며 금감원은 부글부글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아무리 금융위가 금감원의 시어머니라고 하지만 기관 대 기관끼리 주고받는 공문의 내용으로는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최 위원장의 그립(장악력)이 커질수록 윤 원장과의 갈등은 비례해 커졌다. 제로섬 게임의 연속이었다. 지난해 국회에서 두 사람의 갈등관계에 대한 우려가 공개질의 형태로도 나왔지만 나아진 게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갈등설이 나돌 때마다 “갈등은 없다”고 해명했지만 시장은 반대로 해석했다. 두 사람의 관계를 잘 아는 전직 고위관료는 “청와대의 신임이 두터워진 최 위원장은 윤 원장에 대한 압박 강도를 더 높이고 있다”고 했다. 청와대 내부에서도 학자 출신인 윤 원장에 대한 평가가 갈수록 박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출범 이후 예상됐던 금융감독체제 개편 움직임도 사실상 사라지면서 최 위원장이 윤 원장에 대해 사실상 판정승을 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윤 원장을 옹호해온 여권 일각에서는 “최 위원장이 관료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며 “아직은 발톱(관료의 보수적인 속성)을 숨기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 개입을 통해 일부 정책 코드를 맞추는 데는 성공했지만 재벌개혁 등의 핵심 이슈에서는 완벽하게 맞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현안마다 갈등하고 긴장관계에 놓였던 최 위원장과 윤 원장의 오랜 불편한 동거가 조만간 끝을 맺을지 주목된다. 19일로 취임 2주년을 맞는 최 위원장이 개각이나 내년 총선을 앞두고 거취에 변화가 예상되고 있어서다. 금융권에서는 “두 사람의 갈등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심해질 수밖에 없다”며 “누군가 그만두지 않으면 끝나지 않을 싸움”이라고 전했다.

이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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