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오는 2023년까지 문재인 케어(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 드는 41조원의 건강보험 재원조달을 둘러싸고 가입자단체와 정부 간의 힘겨루기가 본격화하고 있다. 대내외 경제환경과 성장률 전망이 밝지 않아 2023년까지 매년 건강보험료 3.49% 인상을 전제로 한 문재인 케어의 과속 논란도 여전하다. 가입자단체들은 내년도 건강보험료율 결정을 미루며 정부가 상습적으로 과소지원해온 국고지원을 정상화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건강보험 보장성을 70%로 확대한다고 하면서 국고지원금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보다 더 적게 부담하고 있다(나순자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위원장)”는 것이다.
2023년 건강보험 보장률을 70%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문재인 정부의 건강보험재정 정부지원율은 13.4%로 이명박 정부(16.4%)나 박근혜 정부(15.3%)를 크게 밑돈다. “정부는 보장성 확대 정책으로 생색만 내고 그 부담을 국민에 전가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 여당도 아파하는 부분이다. 일본과 대만은 건강보험 재정의 39%, 23%가량을 지원한다.
지난 12년(2007~2018년) 동안 건강보험 보험료 수입이 148%(21조7,287억→53조8,965억원) 늘어나는 동안 정부지원금은 93%(3조6,718억→7조802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2012년 이후 연평균 증가율도 보험료 수입이 7% 수준인 반면 정부지원금은 5%를 밑돈다.
더불어민주당도 문재인 케어의 순항을 위해 국고지원 확대 방침을 밝혔다. 이해찬 대표는 (문재인 정부 출범 2년을 맞아) 지난 5월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에서 가진 현장 최고위원회에서 “국가의 지원이 있어야만 환자들의 보험료가 많이 인상되지 않도록 할 수 있다”며 “당에서 특별위원회를 운영해 (문재인 케어와 건강보험 제도가)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입자단체의 강경 드라이브도 이런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이미 “2007년 이후 13년간 미납된 국고지원금 24조5,000억원에 대한 납부 입장을 명확히 밝히지 않으면 내년도 건강보험료율 인상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여론전 성격이 강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정부는 ‘예산 범위에서 해당 연도 건강보험료 예상 수입의 14%(국고)+담배부담금을 재원으로 한 건강증진기금 6%(기금의 65% 이내) 상당액’을 지원하면 된다. 법에 ‘예산 범위에서’처럼 빠져나갈 구멍이 많아 기획재정부는 매년 건강보험료 수입을 과소 추계해 정부 예산을 과소지원해왔다. 하지만 항상 국회 예산승인을 받아냈다. 따라서 정부가 가입자단체 등에서 주장하는 미납 국고지원금을 납부하겠다고 나설 가능성은 없다.
국민건강보험노조를 포함한 전국사회보장기관 노동조합연대가 “올해 정부의 미지급금 예상액 2조1,000억원이 정부가 추진하는 내년 보험료 인상률 3.49% 중 3.11%에 해당하므로 이를 뺀 0.38%만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18일 기업 매출 둔화와 수익성 악화, 급속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기업들이 사회보험료 추가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운 만큼 내년 보험료 동결과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정부지원 확대를 요구했다. 정부가 3.49% 인상론의 근거로 삼은 과거 10년(2007~2016년) 연평균 인상률 3.2%에 대해서도 “후기 5년(2012~2016년)의 연평균 인상률이 1.65%로 전기 5년(2007~2011년)의 4.74%보다 크게 낮아 10년 평균을 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다.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 재정규모가 커져 보험료 수입의 20%를 정부가 지원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보고 있다. 4월 발표한 ‘제1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2019~2023)’에서도 건강보험에 대한 정부의 현행 지원방식 유지를 전제로 깔았다. 또 문재인 케어의 시행을 위해 2022년까지 올해 인상 폭과 같은 연 3.49%의 건강보험료 인상을 추진하기로 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연평균 3.2%씩 올릴 계획이었지만 그해 동결, 이듬해 2.04% 인상으로 차질이 생겨 0.29%포인트 추가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정부 안대로면 직장가입자의 건강보험료율은 올해 6.46%에서 2020년 6.68%로, 2026년에는 현행 건강보험법상 보험료율 상한선인 8%를 넘게 된다.
하지만 건강보험료를 결정하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의결권의 3분의1을 가진 가입자단체들의 생각은 다르다. “정부 미지급액에 대한 정부 책임을 반영해 2020년 보험료율을 동결해야 한다”는 주장마저 나온다. 가입자단체들은 또 기재부에서 지원금을 과소산정하지 못하게 정부가 ‘전전년도 실제 보험료 수입’ 등으로 지원 기준을 명확하게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복지부는 현행 국고지원 체계가 2022년까지 유지되므로 연구용역을 통해 보험료율 상한(현행 8%) 변경, 정부지원 기준 등 재정 관련 이슈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 기재부 등과 협의해야 하므로 일러도 내년쯤 본격 논의에 들어가 2023년부터 새 방안을 시행하겠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가입자단체와는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다. 다만 기재부가 여당과 가입자단체의 요구를 일부 수용해 내년 정부지원 비중을 14%대 이상으로 높이는 등 성의를 보일 경우 내년 건보료 인상을 계속 저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정부의 재정 지원 여건이 여의치 않다면 문재인 케어의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건강보험·국민연금 등 공적 사회보험을 포괄하는 보험료 수준을 어떻게 운영할지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문재인 케어는 비용 효과성이 다소 낮더라도 의학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비급여 항목을 단계적으로 급여화하는 예비급여제도를 도입해 국민부담을 덜고 비급여 항목 발생을 일부 차단하고 있다. 그동안 고액의 비급여 검사였던 컴퓨터단층촬영(CT)·자기공명영상(MRI)·초음파 등이 급여로 전환되면서 검사비용은 기존 비급여 가격보다 3분의1 수준으로 낮아져 국민의 부담이 줄었다.
하지만 상급종합병원 쏠림현상 심화와 국민건강보험 재정 악화, 의료 공공성 확대 미진, 불충분한 적정수가 등이 부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동네의원-병원-상급종합병원으로 이어지는 의료전달체계가 부실한 상태에서 보장성 강화 정책인 문재인 케어의 시행에 따라 상급종합병원의 문턱이 낮아지자 환자 쏠림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건강보험 재정악화 우려도 여전하다. 급속한 인구 고령화와 저출산, 노인 의료비 급증 추세 때문이다. 2025년에는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선다. 반면 보험료를 내는 생산가능인구는 줄어든다. 건강보험 진료비 중 노인의 비중은 2008년 30%를 돌파한 데 이어 지난해 31조6,527억원으로 40%대로 올라섰다. 문재인 케어로 이런 추세는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소득 있는 곳에 보험료를 물리겠다며 2단계 부과체계 개편을 추진할 계획이다. 지난해 7월 1단계 개편에 이어 2022년 7월 적용되는 2단계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 때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 기준을 강화해 소득·재산이 있는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에 대한 건보료 부과를 확대할 계획이다. ‘소득이 있는 곳에 건보료를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1,987만명에 이르는 피부양자 중 지역가입자로 전환되는 연 소득 기준을 현행 3,4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하향 조정하고 재산 기준은 과표 5억4,000만원에서 3억6,000만원으로 낮추게 된다. 현재 보험료가 부과되지 않는 연 2,000만원 이하 주택임대소득에 대해서도 예정대로 내년 11월부터 보험료를 부과할 계획이다. 하지만 반발이 만만치 않은데다 보험료 수입 증가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불필요한 요양병원 입원방지와 사무장병원 단속 강화, 약가 사후관리 강화, 효과가 없는 의약품 등의 건강보험 퇴출 등도 추진하고 있다. 강도태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이런 노력을 통해 건보재정의 3%까지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건보료 수입이 약 54조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6,000억~1조8,000억원의 재정절감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견해가 많다. 김진현 서울대 교수는 “비용효과 등이 입증되지 않은 새로운 비급여 의료행위가 늘어나지 않게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확립해야 돈은 돈대로 들고 보장성 강화에 실패한 과거의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며 “정부 지원율을 낮추더라도 반드시 준수하도록 해야 가입자도 보험료 인상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임웅재 선임기자 jael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