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법조계와 재계는 한 특허분쟁 대법원 확정 판결에 발칵 뒤집혔다. 중소기업과 공동 개발한 기술을 탈취했다는 의혹을 받는 현대자동차가 전초전 성격의 특허소송에서 최종 패배한 것이다. 이른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불리는 소송전에서 다윗인 비제이씨(BJC)가 예상을 깨고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면서 현대차(005380)는 자칫 “벼룩의 간을 내어 먹듯 중소기업의 기술을 탈취했다”는 오명을 뒤집어쓸 위기를 맞았다. 현대차 만약 이 소송에서 패소할 경우 다른 기업들의 기술탈취 의혹에 대해서도 줄소송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11일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현대차가 중소기업 BJC를 상대로 낸 특허등록무효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BJC는 2004년부터 현대차 도장 공정에서 나오는 악취 정화 작업을 맡아온 협력업체다. BJC는 현대차와 함께 도장설비 악취 제거를 위한 미생물제와 이를 이용한 악취 제거 방법을 공동 개발해 2006년 이 기술을 특허로 등록했다.
문제는 2015년 1월 현대차가 경북대와 독자적으로 새 미생물제 기술을 개발했다며 특허를 따로 등록하면서 불거졌다. BJC는 한순간에 기술을 잃은 것은 물론 납품업체와의 계약도 끊겼다. BJC는 “현대차가 우리 기술을 빼돌려 유사기술을 개발했다”며 2015년 11월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중소기업기술분쟁조정·중재위원회에 분쟁조정을 신청했다. 현대차가 2013년부터 8차례나 핵심 자료를 요구하고 기술을 탈취했다는 것이었다. 중재위는 2016년 8월 “기술탈취가 인정된다”며 현대차에 3억원 배상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법원 판단과 달리 강제력이 없는 이 결정에 현대차는 거부 입장으로 버텼다.
BJC는 결국 법원에 기술탈취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고 특허심판원에 특허무효심판도 청구했다. 2018년 1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치러진 민사소송 1심은 현대차의 승리로 끝났다. 재판부가 BJC 측의 소송 청구 자체를 기각한 것이다.
하지만 특허소송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특허소송의 1심 격인 특허심판원은 민사소송에 앞서 2017년 현대차 특허엔 선행기술 대비 진보성이 없다며 특허무효 결정을 내렸다. 이 판단은 대법원까지 흔들림 없이 유지됐다. 2심 격인 특허법원은 “현대차 특허는 진보성이 부정되므로 등록을 무효로 처리해야 한다”며 “특허심판원의 결정은 적법하다”고 결론 내렸고 대법원도 이 결정이 옳다고 봤다.
이번 대법원 판단을 법조계와 재계가 의미 있게 받아들인 이유는 ‘기술 탈취’ 여부를 실질적으로 다루는 민사소송 2심이 특허소송과 같은 재판부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통상 특허등록 무효 소송과 이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은 2심부터 같은 재판부가 비슷한 시기에 결론을 내는 편이다. 그러나 해당 사건의 경우 양측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만큼 특허법원 재판부가 특허소송부터 대법원의 첫 판단을 기다리며 민사 2심 결정을 미뤘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차는 이에 대해 “특허의 진보성만 부정됐을 뿐 기술탈취 여부와는 전혀 관계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 ‘기술탈취 의혹’에 대한 법원의 최종 판결은 공정거래위원회의 판단에도 영향을 줄 전망이다. 당초 현대차의 기술탈취 위반 혐의에 대해 ‘무혐의’ 결정을 내렸던 공정위는 2017년 말 재조사에 착수했지만 아직 결론을 내리지 않은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