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리뷰-'엑시트'] 목숨건 탈출서도 유머가...사이다 같은 '삶의 출구'

백수와 갑질 시달리는 알바생

가스 퍼진 건물서 '발랄한 탈출'

대형 쓰레기봉투 등 일상 소품

재난속 용도 탈바꿈 보는 재미도

영화 ‘엑시트’ 스틸컷영화 ‘엑시트’ 스틸컷



오는 31일 개봉을 앞둔 영화 ‘엑시트’는 청량한 재난영화다. 목숨이 촌각을 다투는 재난 상황에서도 곳곳에 포진된 유머는 영화가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피로해지지 않도록 만든다. 일상 가운데 익숙하게 존재해온 물건들이 재난 속에 다른 용도로 탈바꿈하는 모습은 더 높은 곳을 향해 탈출한다는 단순한 용남(조정석 분)과 의주(임윤아 분)의 여정에 변주를 더한다. 덕분에 영화는 103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시원한 쾌감을 선사한다.

“지금 안전하다고 생각하냐? 너 지금 재난 안에 있어. 우리 상황이 재난이라고.” 취업에 실패해 술을 마시던 용남은 친구에게 이런 대사를 듣는다. 그는 대학 시절 산악동아리의 ‘에이스’였지만 취업문을 통과하지 못한다. 동아리 후배 의주의 상황도 유쾌하진 않다. 직장 상사의 갑질을 묵묵히 견디며 아르바이트 생활을 전전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쉽게 만날 수 있는 두 소시민의 모습이 영화에 익숙함을 더한다. 백수 용남은 어머니 현옥(고두심 분) 칠순 잔칫날에도 가족 친지들에게 끼어들지 못하고 연회장을 겉돈다. 잔치가 끝나갈 무렵 도심에서 가스 테러가 발생하고, 유독가스는 서서히 건물을 타고 올라온다.

영화 ‘엑시트’ 스틸컷영화 ‘엑시트’ 스틸컷


하룻밤 동안 정신없이 펼쳐지는 탈출 과정은 관객들을 피로하게 만들 법도 하지만 유머가 긴장을 풀어주며 영화의 완급을 조절한다. ‘건축학개론’(2012)에서 ‘납뜩이’로 찌질한 매력을 뽐냈던 조정석은 한층 더 다채로워진 연기력을 선보인다.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여기서 나가면 저렇게 높은 건물로 된 회사에만 원서 낼 거야”라는 용남의 절규에 관객들은 웃음을 터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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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근 감독은 대형 쓰레기 봉투, 지하철 비치 방독면 등 일상 소품을 잘 활용해 생생함을 더한다. 실종자를 애타게 찾는 휴대전화 소리가 가스에 뒤덮인 거리 속을 메우고 인터넷 방송, 드론, 스마트폰 등을 통해 전파되는 실황은 몰입감을 높인다. 회식자리에서 흔히 보던 고깃집 환풍기가 복병이 되기도 한다. 이 감독이 “실생활 공간을 그대로 가져왔다”며 “무심코 스쳐 지나간 공간과 구조들이 위협이 되거나 도움을 주도록 디자인했다”고 설명한 그대로다.


또 능동적인 캐릭터로 짜인 스토리가 답답함을 걷어낸다. 이기적인 행동으로 불필요한 희생을 야기하는 인물이나 사건을 방치하는 무능한 정치인 등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평범한 인물에 집중해 긴장감을 높였다. 4~5m를 뛰어도 겁이 나고 체력적으로 부치는 인물이지만 주저앉을 법한 상황에서도 모두 제 몫을 해낸다. 용남의 어머니 현옥, 아버지 장수(박인환 분), 누나 정현(김지영 분) 등 연기파 배우들이 감칠맛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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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시트’는 “인정받지 못하거나 작은 능력처럼 보일지라도 그 능력이 적재적소에 발휘되는 순간이 오면 재밌지 않을까”란 이 감독의 호기심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어떤 재주라도 갈고닦다 보면 빛 볼 날이 있다는 말이다. 백수 용남과 아르바이트생 의주가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오늘날, 영화는 삶에 지친 관객들에게 한 잔의 사이다 같은 ‘엑시트(출구)’가 될 것이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한민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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