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對)한국 수출규제 조치를 규탄하는 내용의 ‘일본 수출규제 철회 촉구 결의안’이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채택됐으나 본회의 개최가 무산되면서 ‘반쪽짜리’로 전락했다. 여야가 본회의 의사일정에 대해 접점을 찾지 못한데다 예결위원회 심사마저 중단돼 추가경정예산 처리 여부도 안갯속에 빠졌다. 여야가 친일 논란, 정경두 국방부 장관 해임 등을 두고 충돌하는 사이 결의안, 추경 처리 등의 안건이 뒷전으로 밀리는 모양새다.
국회 외통위는 22일 전체회의를 열고 만장일치로 결의안을 채택했다. 외통위는 앞서 지난 17일 처리 시점을 두고 여야 간 견해가 엇갈리면서 결의안 채택에 실패했다. 이후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 등 교섭단체 3당 원내대표는 19일 문희상 국회의장 주재 회동에서 외통위 차원의 결의안 처리에 합의했고 이날 채택으로 뜻을 모았다.
외통위가 재차 전체회의를 열어 결의안을 채택했지만 실제로 국회 문턱을 넘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이날 문 의장 주재로 이인영 민주당, 나경원 한국당,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모여 결의안 처리, 추경, 국방부 장관 해임건의안 등을 위한 본회의 개최 의사일정을 논의했으나 결국 합의가 불발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당 소속의 김재원 국회 예결위원장이 추경 심사 중단까지 선언했다. 정부가 일본 수출규제 대응을 위한 증액을 요청했는데 이에 대한 보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따라 국회 안팎에서는 추경의 국회 계류 기간이 사상 최장을 기록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4월25일 국회에 제출된 추경안은 이날로 89일째 국회에 계류돼 있다. 이는 2000년 107일에 이어 광우병 촛불집회 때인 2008년 91일에 이은 역대 세 번째로 오랜 계류 기간이다. 여야가 국회 본회의를 열고 있지 못한데다 추경 심사마저 중단되면서 일각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추경이 무산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 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추경 관련 일본 무역보복 대응 증액 요청이 8,000억원가량이라는데 어떤 내용이냐고 구윤철 기획재정부 2차관에게 구두로 물었다”며 “이에 구 차관은 중복도 있고 여러 검토를 해보니 약 2,700억원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예결 소위에서 소재·부품 관련 대일 의존도 현황과 함께 관련 연구개발(R&D) 예산을 구체적으로 보고해달라고 했지만 산업통상자원부는 B4용지 한 장의 복잡한 수를 나열한 표를 들고 와서 잠깐 열람하고 돌려달라는 이야기를 해 그런 보고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정부가 국익을 위해 보고할 수 없다는 게 국민 세금을 함부로 쓸 수 없다는 측면을 망각한 행위라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특히 그는 “이는 국가 예산 사용권을 아무런 통제 없이 ‘백지수표’로 사용하겠다는 의도로 보였다”며 “정부의 이런 자세는 국회의 재정통제권과 예산심사권에 중대한 도전”이라고 비판했다.
이처럼 본회의 의사일정은 물론 추경에 대해서도 여야가 평행선을 걷고 있는 데는 일본 무역보복 대응방안 등을 둘러싼 뚜렷한 의견 차가 자리하고 있다. 현재 여야는 일본의 무역보복을 두고 ‘일본이 조치를 철회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대응방안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르다. 청와대·민주당은 일본의 무역보복에 강경 기조로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추경을 통한 재정적 지원으로 일본 조치에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한국당은 외교적 응대와 함께 기재부의 정확한 현황 분석을 토대로 한 대책이 필요하다며 맞불을 놓고 있다. 무조건적인 추경보다는 사태 발생의 원인을 파악해 적절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추경 처리를 국방부 장관 해임건의안과 연계해 ‘투 포인트’ 본회의를 열거나 북한 목선 사건 국정조사를 수용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민주당은 불가 입장만 거듭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