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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톈안먼 강경 진압' 리펑 전 中 총리 사망

'톈안먼 학살자' 꼬리표와 달리
中 내부서는 진압 공로 인정받아
'장수 권력' 누리며 승승장구
한중 수교 첫 방한 총리 인연도

  • 최수문 기자
  • 2019-07-23 22:02:28
  • 경제·마켓
'톈안먼 강경 진압' 리펑 전 中 총리 사망

지난 1989년 6월 톈안먼 민주화 시위 당시 강경 진압을 주도한 리펑(사진) 전 중국 총리가 22일 별세했다. 향년 91세. 그는 외부에서는 ‘6·4 톈안먼 학살자’라는 악명을 얻었지만 중국 내에서는 공로를 인정받아 총리에 이어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한국의 국회의장)도 맡는 등 ‘장수 권력’을 누렸다.

23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리펑 전 총리가 22일 저녁 11시11분에 베이징의 한 병원에서 노환으로 숨졌다고 보도했다. 2008년부터 건강이 악화한 리 전 총리는 최근 몇 년간 수차례 사망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날 신화통신은 “중국 공산당은 우수한 당원이자 걸출한 무산계급 혁명가, 당과 국가의 탁월한 지도자를 잃었다”고 전했다.


리 전 총리가 국제적인 유명세를 탄 것은 국무원 총리로 있던 1989년 톈안먼 시위에 강경 진압을 주장하며 관철시키면서다. 당시 명목상의 최고 직위에 있던 자오쯔양 총서기는 시위 중인 학생들과의 대화를 주장한 반면 리 전 총리는 인민해방군을 동원한 강제진압을 요구했고 결국 실질적인 최고권력자 덩샤오핑의 승인을 얻었다. 그해 6월3일부터 4일 새벽까지 탱크까지 동원한 무력진압으로 수천명의 시민이 죽거나 부상을 당했고 결국 민주화시위는 실패로 돌아갔다.

톈안먼 사태로 인해 자오 총서기는 곧바로 실각했고 사실상 가택연금 상태에 있다가 2005년 사망했다. 반대로 리 전 총리는 승승장구하며 1998년 총리를 계속했고 이후 전인대 상무위원장으로 옮겨 2003년까지 역임했다. 역대로 중국의 권력 3인방 가운데 국가주석 외에 총리와 전인대 상무위원장 두 자리를 모두 맡은 사람은 그가 유일하다.

1928년 10월 상하이에서 태어난 리 전 총리는 양친 모두 중국 혁명가로 태자당으로 분류된다. 부친인 리숴쉰은 저우언라이·주더 등과 함께 1927년 난창 봉기를 주도했는데 이후 국민당에 체포돼 처형됐다. 저우언라이가 고아가 된 그를 양자로 삼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리 전 총리는 2014년 발간한 회고록에서 저우언라이와 자신의 관계를 ‘원로 동지와 혁명열사 자녀의 관계’라고 밝혔다. 1945년 17세에 공산당에 가입해 러시아에서 유학했고 귀국 후 에너지 관련 정부부처에서 일하며 전력공업부장 등도 지냈다. 리 전 총리에 이어 그의 자녀들도 승승장구했다. 리 전 총리가 에너지 전문가였던 탓에 자녀들도 에너지 분야에서 태자당을 형성했다. 딸 리샤오린은 중국의 ‘전력여왕’으로 불리며 중국전력국제유한공사 회장을 지냈고, 아들 리샤오펑도 중국의 5대 전력회사인 화넝그룹 이사장으로 일하다 현재 교통운수부장으로 있다. 한편 리 전 총리는 1992년 한중수교에 큰 역할을 하는 등 한국과 인연도 있다. 앞서 1991년 5월에 북한을 방문해 중국이 앞으로 “두 개의 코리아 정책을 펴게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사전정지 작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4년 10월 중국 권력 3인방 가운데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해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회담하기도 했다./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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