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587년 7월29일, 느부갓네살(네부카드네자르 2세)이 이끄는 바빌로니아 군대가 예루살렘에 들이닥쳤다. 구약 성경에도 이 장면이 나온다. ‘유다 왕 시드기야 제 9년 열째 달에 도성을 포위한 바빌로니아의 군대가 시드기야왕 11년 넷째 달 9일에 마침내 성벽을 뚫었다(예레미야서 39장1절).’ 18개월 동안 공성전에 지쳤던 느부갓네살은 분노를 내뿜었다. 10년 전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왕으로 세운 시드기야왕이 연거푸 배반하며 이집트와 내통한 데 대한 응징 차원에서 예루살렘을 철저하게 짓밟았다.
느부갓네살은 2만여명의 유대인을 바빌론으로 끌고 가고 예루살렘의 성전과 모든 집을 불태웠다. 사제들은 느부갓네살 앞에서 살해당했다. 그나마 죽은 사람이 살아남은 사람보다 나을 만큼 극심한 학대와 고통, 기아가 찾아왔다. 찬란하고 웅장했던 솔로몬의 성전은 약탈자들이 금가루 하나라도 더 찾아내려 헤집는 통에 흙밖에 남지 않았다. 하나님의 뜻을 앞세워 ‘평화’를 주장했던 예언자 예레미야는 ‘눈물로 눈이 상하고 창자가 들끓으며, 간이 땅에 쏟아진다’며 슬픈 노래(예레미야 애가)를 불렀다.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노부코’에서 ‘히브리노예들의 합창’의 배경이 바로 이즈음이다.
주목할 대목은 바빌론 유수가 오히려 유대민족의 정체성을 만들었다는 점. 유대인들은 역사를 재서술하고 율법을 재구성하는 데 힘을 쏟았다. ‘예루살렘 전기’를 쓴 유대계 영국인 전기작가 사이먼 몬트피오리에 따르면 ‘유다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유다인들은 점점 유대인들이 되어 갔다.’ 느부갓네살은 고대 7대 불가사의의 하나라는 공중정원을 짓고 영토를 크게 넓히는 등 치적을 쌓았지만 아들에게 권좌를 빼앗긴 채 허망하게 역사에서 사라졌다. 반면 유대인들은 ‘주님께서 기름부터 세운 고레스(이사야서 45장 1절)’ 덕분에 70년 만에 고향으로 되돌아갔다.
구약성서가 ‘왕 중의 왕’ ‘메시아’로 치켜세운 고레스는 페르시아의 왕 키루스 대제.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크세노폰이 쓴 ‘키루스의 교육(키로파에디아)’의 주인공이다. 현대 경영학의 개척자인 피터 드러커에게 ‘최초이자 최고의 경영인’으로 극찬받았던 키루스 대제는 인류 최초의 인권 선언으로도 유명하다. 민족과 종족, 승자와 패자를 초월한 인간의 기본권을 2,500년 전에 강조한 인물이다. 키루스 대제 이후 페르시아와 유대인들은 선린 관계를 수천년간 이어갔지만 요즘은 견원지간이다. 오늘날 이스라엘은 이란 폭격을 위해 날을 세운다. 어디서 뭐가 잘못된 것일까.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