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화이트리스트(수출 절차 간소화 국가 명단)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법령 개정이 이르면 사흘 뒤 이뤄질 전망이다.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제외가 결정되면 일본은 한국에 타격을 줄 수 있는 품목을 중심으로 대(對)한국 수출 절차를 대폭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30일 일본 현지 언론과 업계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이르면 8월 2일 각의(국무회의)를 열고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처리할 전망이다.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각의 개최일을 밝히진 않았으나 현재로선 다음 달 2일 열리는 각의에서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제외를 결정할 가능성이 가장 유력하다. 한국 정부는 지난 1일 일본이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고시한 후 세계무역기구(WTO)와 미국에 잇달아 고위급 인사를 파견해 저지 총력전을 벌이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우리 정부는 화이트리스트 배제가 예정된 수순이라 보고 단기 및 중장기 대책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제출한 서면 질의 답변서에서 “화이트리스트 제외가 현실화하면 수출제한대상이 확대될 우려가 있다”며 “추가 보복에 대해 발생 가능한 모든 경우를 염두에 두고 관계 부처가 긴밀히 공조해 철저히 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 역시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며 “통상 측면에서는 WTO 제소나 아웃리치(대외접촉)를 할 수 있다”고 29일 기자간담회에서 말했다.
일본은 한국경제에 당장 타격을 줄 수 있는 품목부터 규제를 적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면 무기로 전용될 우려가 있는 1,100여개의 대(對)한국 수출 물품은 포괄허가에서 개별허가 대상으로 바뀐다. 이들 품목을 한국으로 수출하려면 일본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일본 정부는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된다고 해서 한국으로 수출길을 완전히 막는 것은 아닌 만큼 수출규제 조치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민간용으로 사용되는 정상 수출은 무리 없이 허가를 내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도체처럼 한국 산업 내 비중이 큰 업종을 중심으로 수출을 막거나 추가 서류를 요구해 허가를 지연하는 등 ‘꼼수’를 부릴 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일본이 기업이 몇 천개 품목을 수출할 때마다 신청서를 내면 건건이 봐서 검토하겠다는 이야기”라며 유리한 품목을 넣었다 빼는 식으로 운영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다음 타깃은 일본 의존도가 높은 화학, 정밀기계와 한국이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주력하는 전기차 등으로 예상된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일 주요 산업의 경쟁력을 비교한 결과 방직용 섬유, 화학공업, 차량·항공기·선박 등의 대일 수입의존도는 90%가 넘는 것으로 분석된다. 전기차 배터리, 수소전기차 탱크에 들어가는 필수 소재부품 역시 상당수가 일본산이다. 이에 따라 LG화학, SK이노베이션, 삼성SDI 등 배터리업체들은 대비책을 고민 중이다.
앞서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은 지난 9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일본의 수출규제 품목이 확대될 경우를 가정해 시나리오 플래닝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반도체·디스플레이업체들은 수출규제 대상이 지난 4일 이뤄진 3개 품목에서 대폭 늘어날 것으로 보고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시나리오별 대책을 마련하는 등 비상경영에 돌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이 다른 방식으로 한국을 압박할 가능성도 있다. 대일 의존도가 높은 제품의 한국 수출을 막는 동시에 한국의 주력 수출품에는 비관세장벽을 세울 수 있다. 일본은 우리나라 농식품·수산물의 최대 수출 시장이다. 특히 지난해 파프리카 수출액의 일본 비중은 99%에 달했다. 현지 언론은 최근 일본 정부가 반도체 소재에 이어 한국 농식품을 추가 규제 품목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산업부 관계자는 “외교부 및 경제 관계 부처들과 수시로 만나 의견을 교환하고 대응책을 논의하고 있다”며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민수 인턴기자 minsoojeo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