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17일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영국 재무장관을 만나 규제 샌드박스를 설명했더니 한국이 영국보다 광범위하게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한 사실에 대해 놀라더라”며 한국의 규제개혁 성과를 자평한 바 있다.
6개월간의 정보통신기술(ICT) 규제 샌드박스 시행을 보면 이런 ‘자화자찬’이 이해도 된다. ICT 규제는 정량 성과로 총 76건이 신청돼 45건(실증특례와 임시허가 18건, 신속처리 27건)이 처리됐다. 6개월 만에 59%의 성과라니 그런 자찬이 나올 법도 하다. 그러나 문제는 기업도 국민도 이런 성과를 체감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전문가 집단 역시 ‘59%의 성과’에 대한 감동이 없다.
규제개혁에 대한 고민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진보와 보수의 구분도 없다. 김영삼 정부는 ‘규제실명제’를 통해 규제를 도입한 관료의 이름을 공개하려고 했다. 노무현 정부는 신설되거나 강화되는 모든 규제가 존속기한이 끝나면 자동적으로 폐기되는 ‘규제일몰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는 전봇대 뽑기로 상징되는 규제개혁 노력을 기울였지만 규제 건수가 오히려 2배 이상 늘어나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다.
심지어 박근혜 정부도 규제는 ‘쳐부수어야 할 암 덩어리’라는 전투적인 용어를 사용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문재인 정부 역시 규제 샌드박스 등의 새로운 용어를 도입해 규제 철폐를 추진하지만 그 성과는 크지 않다. 이 점에서 규제개혁은 진보와 보수 같은 이념의 문제도 아니고 과거와 현재의 문제도 아니다. 규제 철폐는 대한민국 미래의 문제이자 시대적 과제이다.
그럼에도 왜 홍남기 부총리 같은 관료들의 인식이 등장하는 것인가.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실적 위주의 규제개혁이라는 착시효과 때문이다. 6개월에 민간기업에서 요청한 규제의 59%가 철폐되거나 적용 유예됐다면 이는 분명 놀라운 성과이다. 그러나 이 숫자에는 질적인 측면이 간과돼 있다. 국민경제적 효과가 가장 크고 미래지향적이며 산업적 플레이어가 준비돼 있는 산업에 대한 외면이다. 대표적인 것이 공유차량·빅데이터·바이오 같은 4차 산업혁명 관련 산업이다.
예를 들어 카풀은 70%가 넘는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으며 대기업은 물론 스타트업도 이미 전개하고 있는 사업이다. 또 공유차량은 단순히 사람의 운송을 넘어 아마존 같은 물류회사로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국회는 카풀을 택시라는 구산업의 지배구조에 묶어놓은 ‘퇴행적’ 정책으로 정리해버렸다. 70%의 국민이 지지해도 카풀이 안 되는 것은 여당도 야당도 선거에서 택시 업계를 적으로 돌리면 불리하기 때문이다. 기득권 세력의 집단적 저항을 받으면 선거에서 불리하기에 그들의 기득권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다. 이러니 규제개혁이 될 리가 없다.
둘째는 효과가 있는 규제, 경제적 충격과 영향이 큰 규제가 아니라 마이너 규제 위주의 개혁이기 때문이다. 영국의 핀테크 규제 샌드박스는 의미가 크다. 국민경제적 파급효과가 큰 금융 부문을 개혁했고 핀테크라는 중요한 산업적 돌파구를 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정부의 규제개혁은 이런 국가경제적으로 의미 있고 중요한 개혁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얼마 전 정부는 7개 지방자치단체를 규제자유특구로 지정하기로 결정했다. 승인된 특구는 강원의 디지털 헬스케어, 충북의 스마트 안전, 경북의 차세대 배터리 리사이클링 등 7개 지역과 사업이다. 시장도 기업도 떨어져 있는 지역에서 이런 규제 완화로 기업들을 불러들일 수 있을지, 시장은 형성 가능한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선정이 규제자유특구가 아니라 ‘예산자유특구’, 즉 지자체가 정부 예산을 타내는 또 하나의 명분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