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관점]가족형태 변하는데 제도는 '4인' 중심...정책 패러다임 확 바꿔야

<1인 가구 시대,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1인가구 579만가구 전체 30% 육박...4인 비중 넘어

저출산·고령화에 나홀로 가구 증가 더 가팔라질 듯

의식주 문화 급변...소비·서비스시장 '일코노미' 확산

주거 보안·노후대비 등 다인가구보다 현저히 취약

주택서 복지까지 성별·연령별 맞춤형 정책 마련 절실





서울 서초구가 올 3월 전국 최초로 개소한 ‘1인가구 지원센터’의 문화교실에서 참가자들이 목공예를 배우고 있다. 1인가구는 성별·연령별로 처한 상황이 다양해 정교한 맞춤형 정책이 필요하다. /사진제공=서초구서울 서초구가 올 3월 전국 최초로 개소한 ‘1인가구 지원센터’의 문화교실에서 참가자들이 목공예를 배우고 있다. 1인가구는 성별·연령별로 처한 상황이 다양해 정교한 맞춤형 정책이 필요하다. /사진제공=서초구


지난달 10일 서울 중구 서울시 청년일자리센터에서 열린 ‘1인가구 포럼’. 이날 행사는 1인가구의 생생한 생활상과 고충을 듣고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열렸다. 이 자리에 참석한 혼자 사는 여성과 60대 독거 남성 등 3명은 1인가구가 겪는 어려움과 고독감을 토로했다. 솔로인 30대 여성은 “비싼 집값과 임차료 때문에 살 곳을 구하는 것부터 쉽지 않다”면서 “어렵사리 예산에 맞춰 집을 구해도 안전문제로 걱정”이라고 말했다. 특히 집에 돌아와 잠만 자는 청년 1인가구의 고립 문제도 크다고 털어놓았다.

0215A36 1인 생활의 걱정거리


◇1인가구 30% 시대=이들처럼 나 홀로 사는 1인가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1인가구는 579만가구에 달한다. 1년 사이에 17만가구 이상(3.1%) 증가했다. 222만가구 수준이었던 지난 2000년과 비교하면 2.5배나 급증한 셈이다. 전체 가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급속히 높아지는 추세다.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봐도 29.2%로 30%에 육박한다. 과거 가족 구성의 기본적 형태였던 4인가구 비중을 이미 뛰어넘었다. 지난해 통계청이 내놓은 장래가구 추계에 따르면 오는 2030년에는 전체의 33.2%(720만가구), 2045년에는 36.3%(810만가구)가 1인가구다. 이에 비해 4인가구 비중은 7.4%밖에 안 된다.

이런 가구 형태의 급변은 미혼과 비혼, 이혼가구의 증가 등 인구·사회 구조의 변화가 주원인으로 꼽힌다. 청년 실업난으로 인한 젊은 층의 결혼 기피와 저출산과도 무관치 않다. 세계 최고 수준의 노인 빈곤율과도 맞닿아 있다. 지금 같은 저출산·고령화에다 취업난, 이혼·비혼 증가 등을 고려하면 1인가구는 더 가파르게 늘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 인구증가율이 마이너스로 전환되는 2030년 후에도 1인가구는 계속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불과 40~50년 전 대가구 위주에서 3~4인 핵가구화를 거쳐 이제는 1인가구 중심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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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변하는 의식주 문화=이렇게 1인가구가 늘면서 4인가구 중심이던 의식주 문화도 크게 바뀌고 있다. 경제적 관점에서 이들을 부르는 명칭도 새로 생겼다. 이코노미의 앞글자에 ‘1’을 넣은 ‘1코노미(일코노미)’가 대표적이다. 일코노미를 겨냥한 소비·서비스시장도 확대일로다. 혼자 마음 편하게 식사하려는 사람들이 늘면서 배달음식점이 큰 수혜를 입고 있다. 최근에는 1인가구 전용 배달업체도 생겨났을 정도다. 취미생활도 나 홀로 하는 경향이 강해져 내리막길을 걷던 업종도 1인 맞춤형 서비스로 살아나고 있다.

주거문화도 달라지는 모습이다. 부동산 경기가 안 좋아도 1인가구에 맞춘 오피스텔과 소형 아파트는 여전히 인기다. 집이 좁아 큰 짐을 둘 곳이 없어 고민하는 나 홀로 가구를 위한 틈새 사업도 활기다. 잠금장치까지 달아 칸칸이 나눠놓은 공간을 개인 창고처럼 쓸 수 있게 빌려주는 창고대여사업(셀프 스토리지)도 그중 하나다. ‘일코노미’ 확산을 반영하듯 1인가구의 소비지출도 급등세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전체 가구 가운데 1인가구의 소비지출 비중은 2010년 8.7%(36조원)에서 2020년 15.9%로 약 두 배 뛸 것으로 예상된다. 2030년에는 194조원(20%)으로 4인가구 178조원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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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준비 등은 무방비 상태=그렇지만 개별적으로 보면 경제적인 어려움에 노출돼 있다. 전체 1인가구에서 차지하는 취업자 비율은 60%를 조금 넘는다. 10명 중 4명은 취업 시장에서 밀려나 있다는 얘기다. 취업 1인가구 중에서도 임시직과 일용직으로 일하는 경우가 약 33%에 이른다. 이렇다 보니 경제적으로 빠듯하다고 호소하는 1인가구가 많다. 특히 노후 대비까지 할 여유가 없는 편이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올 4월 조사해보니 1인가구들은 은퇴에 대비해 월 123만원 정도의 저축이나 투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에서는 준비금액이 60%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투자·저축 금액이 월 70만원에 불과했다. 그중에서 연간 소득 1,200만~2,400만원대 저소득층은 월 저축액이 31만원에 그쳤다. 저소득을 비롯한 상당수 1인가구가 노후준비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노후준비를 못하는 원인 중 하나가 주거비용이다. 1인가구는 자가거주율이 낮아 임대료에 많은 돈을 지출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1인가구의 소비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약 18%인 주거비용이다. 특히 여성들의 경우는 최근 사회문제로 떠오른 취약한 주거보안 문제에도 노출돼 있고 노년층은 고독사에 직면해 있다. 1인가구가 고령화되면 고독사나 빈곤자살 같은 사회병리 현상이 심해질 수 있다. 무엇보다 1인가구가 일자리를 잃으면 가정이라는 실업의 완충지대가 사라진다. 이여봉 강남대 교수는 “남녀 구분 없이 전 연령층의 1인가구가 공통으로 사회경제적인 면에서, 정서적·육체적 건강 면에서 다인 가구에 비해 현저히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정책·제도는 여전히 3~4인 가구 중심=이처럼 가파른 1인가구 증가는 가족형태의 변화를 넘어 주거·복지·문화·교육·산업 등 전방위로 파장이 확산하고 있다. 하지만 관련 정책이나 제도는 이런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서울시가 2016년 전국 지자체 최초로 1인가구 지원 조례를 제정하는 등 많은 지자체가 다양한 1인가구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아직은 미흡하고 제한적이다. 여전히 부부를 중심으로 한 가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주택청약 등 기존 제도들은 대개 자녀를 둔 3~4인 가구를 대상으로 한다. 비혼이나 1인가구들은 연말정산과 같은 세제혜택에서도 소외되고 있다. 실태를 알아야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올 텐데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 대상도 2인 이상 가구로 1인가구는 빠져 있다. 다른 선진국들은 1인가구를 포함하고 있다. 정부는 이제야 내년부터 가계동향 조사의 주 지표를 1인 이상 가구로 개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기존 가족 개념만을 고수해서는 변화의 흐름을 따라갈 수 없다. 이는 사회·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려 결국 국가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시대 변화에 맞게 1인가구들의 어려움을 덜어줄 수 있는 지원체계 마련을 서둘러야 할 때다. 주택·주거정책은 물론 보육·요양을 비롯한 복지정책도 패러다임의 변화가 시급하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공적부조제도도 바뀌어 가는 사회구조에 맞게 개선하기 위한 논의를 빨리해야 한다. 정인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 1인가구연구센터장은 “1인가구는 성별·연령별로 처한 상황이 다른 만큼 세밀한 접근이 중요하다”며 “정교한 맞춤형 정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임석훈 논설위원 sh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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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은 어떻게 하고 있나>

스웨덴, 집합주택 제도

원룸 제외 주방 등 공유

美는 저소득 1인가구에

낡은 호텔 개조 주택 공급

우리보다 앞서 1인가구에 관심을 둔 미국·유럽 등에서는 다양한 지원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독일 등 유럽에서는 ‘혼자 산다’는 이유로 주거·복지혜택을 못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독일에서는 1인가구도 주거보조금제도(본겔트)의 혜택을 보고 있다. 대상 가구에 제한이 없어 1인가구도 보통 월세의 10% 정도를 지원받는다. 영국은 청년과 노년층을 위해 1인가구 소형 임대주택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또 민간임대 주택을 대상으로 임대료에 상한선을 제한해 임차인을 보호하고 있다. 스웨덴의 ‘공동주택정책’은 집합 주택을 만들어 거주자들이 개인 원룸을 제외하고 주방과 육아센터 등 나머지 시설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한 정책이다. 청년층과 노년층의 안정된 주거를 뒷받침하기 위해 주택보조금도 지원한다.

프랑스의 경우 노인층 1인가구의 고독과 사회적 고립을 예방하기 위한 대응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현금과 같은 물질적 지원 외에도 노인 관련 공공·민간기관들로 구성된 이른바 ‘모나리자(MONALISA)’가 대표적이다. ‘노인들의 사회적 고립에 대응하는 국가활동’으로 불리는 이 단체는 2014년 활동에 들어가 노인격리예방을 위한 지원과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곳에서 이뤄진 연구를 토대로 노인 1인가구에 대한 맞춤형 정책을 제공한다.

덴마크 등 북유럽에서는 개별 구성원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면서도 공동체의 장점을 결합한 주거단지 ‘코하우징(주거공동체)’ 문화가 발달했다. 1970년대 덴마크에서 시작된 코하우징은 원래 독거노인들의 사회안전망 확충을 위해 보급된 주거형태지만 이제는 다양한 연령대의 1인가구가 사는 공간이 됐다. 다른 1인가구와 함께 생활하면서 주거비는 물론 정신적 고독감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일본은 주거 취약층 1인가구의 주거 안정을 위해 정부 차원에서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한 뒤 임대료를 할인해주는 정책을 쓰고 있다. 도쿄도 신주쿠구의 경우 긴급연락을 위한 표지판 설치 등 1인 거주자의 안전확보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은 저소득층 1인가구를 위한 ‘싱글 룸 거주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는 낡은 호텔 등 활용도가 낮은 시설을 임대주택으로 개조해 저소득층에게 공급하는 정책이다. ‘주택바우처제’도 눈에 띈다. 저소득 임차인의 월 소득에서 임차료 비중이 너무 높을 경우 연방정부에서 금액을 보조해주는 제도다. shim@sedaily.com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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