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끝내 한국의 화이트리스트(전략물자 수출심사 우대 국가목록) 제외를 2일 강행하면서 한일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외교가에서는 일본의 한국 화이트리스트 제외를 한일관계 파국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여기고 있다. 한국 정부가 일본의 추가 보복 조치에 대해 강경한 대응을 예고한 만큼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 등 한일갈등은 이제 경제마찰을 넘어 안보영역으로 확전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일본 정부는 이날 오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주재로 각의(국무회의)를 열어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 명단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의결했다고 교도통신 등이 긴급뉴스로 전했다.
이 개정안은 주무 부처 수장인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경제산업상이 서명하고 아베 총리가 연서한 뒤 공포 절차를 거쳐 그 시점으로부터 21일 후 시행된다. 내주 중 공포가 이뤄질 것으로 보여 시행 시점은 이달 하순이 될 것으로 유력하다. 화이트리스트는 군사 목적으로 전용할 수 있는 물품이나 기술을 일본 기업이 수출할 때 일본 정부가 승인 절차 간소화 혜택을 인정하는 나라다. 이에 따라 수출 우대조치로 그간 한국은 수출품에 대해 3년에 한 번 포괄적으로 받던 일본 정부의 허가를 매번 받게 됐다. 대상 품목이 식품과 목재를 제외한 1,100여 개에 달해 일본 수입 의존도가 높은 우리 기업들의 광범위한 피해가 예상된다. 특히 일본은 대체가 어렵고 대일 의존도가 높은 정밀공작기계, 탄소섬유, 기능성 필름ㆍ접착제 등 정밀화학제품을 저격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미국과 영국 등 서방 국가 외에 한국, 아르헨티나, 호주, 뉴질랜드 등 총 27개국이 지정돼 있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한일갈등에 따른 일본의 수출규제 보복조치 등은 현재 한일만의 문제가 아닌 자유무역을 흔드는 국제 무역의 밸류체인 변화와 연관성이 깊은 것으로 보인다”며 “미중 등 강대국의 보호무역주의가 날로 심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첨단 부품소재 개발 등 장기적으로 위기를 극복할 자생력을 갖춰야 한다”고 진단했다.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아베 내각의 핵심 지지세력인 보수층 사이에 한국에 대한 강경 여론이 큰 상황에서 일본의 추가 경제 보복은 예정된 결과라고 평가했다.
일본이 많은 우려 속에서도 추가 보복을 감행하면서 양국의 경제전쟁은 안보 영역으로 확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특히 한국 정부가 일본의 추가 보복조치에 대해 필요한 모든 대응을 한다는 강경 기조를 수차례 언급한 만큼 청와대가 지소미아 파기 카드를 꺼낼지 주목된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일본이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강행 의사를 밝힌 만큼 이제 한일관계는 대화로 해결될 수 있는 단계를 지났다”며 “일본이 안보상의 이유로 전략물자에 대한 규제를 시작한 만큼 청와대 역시 안보상의 이유로 지소미아 파기를 검토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강 장관도 전날 방콕에서 열린 한일 외교장관 회담 직후 기자들과 만나 지소미아 연장 여부에 대해 “일본의 각의 결정이 나온다면 우리로서도 필요한 대응조치를 강구할 수밖에 없다”며 “일본의 수출규제가 안보상의 이유로 취해진 만큼 우리 한일 안보의 틀, 여러 가지 요인을 우리도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그런 얘기를 전했다”고 경고했다.
외교가에서는 일본의 추가 경제 보복 조치에 대한 대응책을 놓고 강경론과 온건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대일 강경론을 주장하는 쪽은 일본이 안보상의 이유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한 만큼 한국도 안보상의 이유로 일본과의 지소미아를 파기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에 맞서 온건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양국의 확전으로 피해가 더 큰 것은 한국이기 때문에 한일갈등의 근본원인인 강제징용 배상판결 문제에 대한 해법 마련을 통해 일본과 외교적 해결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일본이 끝내 파국을 선택하면서 한국은 긴장 속에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일본 각의 결정이 나오면서 청와대는 이날 오후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임시 국무회의를 개최한다. 특히 전날 청와대 대책회의에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정경두 국방부 장관 등 국가안보를 책임지는 핵심인사들이 참석한 만큼 지소미아 파기라는 칼을 문 대통령이 빼 들지 주목된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일본이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강행 의사를 밝힌 만큼 이제 한일관계는 대화로 해결될 수 있는 단계를 지났다”며 “일본이 안보상의 이유로 전략물자에 대한 규제를 시작한 만큼 청와대 역시 안보상의 이유로 지소미아 파기를 검토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