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어떻게 지내십니까] "反日 프레임보다 우리 실력·품격 높여 克日의 길로 가야"

정의화 전 국회의장

日 경제보복은 패권외교 나쁜 선례...과거사 문제 사죄가 중요

한·일 정면충돌땐 손실 커...특사 파견 등 대화·협상으로 풀어야

반일감정 부추겨 총선 활용하는 정략적 접근 되레 재앙될 수도





정의화 전 국회의장이 2일 부산에 있는 ‘전 국회의장 정의화 기념관’ 앞에서 한일 갈등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그는 봉생병원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구한말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우리의 실력과 품격을 높여 일본을 극복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광덕 논설위원정의화 전 국회의장이 2일 부산에 있는 ‘전 국회의장 정의화 기념관’ 앞에서 한일 갈등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그는 봉생병원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구한말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우리의 실력과 품격을 높여 일본을 극복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광덕 논설위원


정계 은퇴 후 3년 동안 부산에서 지내고 있는 정의화(71) 전 국회의장의 우렁찬 목소리는 예전 그대로였다. 정 전 의장은 고조되는 한일 갈등에 대해 거침없이 소신과 해법을 쏟아냈다. 그는 지난 2일 부산 봉생병원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아베 신조 내각의 연쇄적인 과잉대응을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하게 성토했다. 하지만 그는 “국익을 위해서는 반일감정을 부추기기보다 우리의 실력을 키우고 품격을 높여 일본을 극복해야 한다”면서 ‘극일’에 방점을 찍었다. 그는 한일정상회담 등을 통한 외교적 해법도 강조했다. 그전과 달라진 모습은 백발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었다. 국회부의장 시절 사회를 보다 한 의원의 최루탄 투척으로 폐포에 상처를 입어 미세먼지로 종종 고생하는 것 외에는 건강상태가 아주 좋다고 한다. 국내 정치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사실 그는 “현실 정치인도, 현인도 아니다”라면서 여러 차례 인터뷰 고사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2016년 5월 국회의장 임기를 마친 뒤 3년이 지났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부산으로 낙향한 뒤 처음 한 일은 자서전 쓰기였다. 정치인생 20년을 정리한 책 ‘아름다운 복수’를 쓴 뒤 의사인생 23년을 돌아보는 ‘우연은 신의 지문이다’를 썼다. 그리고 지역구였던 부산 동구에 ‘전 국회의장 정의화 기념관’을 만들었다. 민주시민의식을 고취하는 자리로 만들고 싶었다. 또 사단법인 ‘새한국의비전’도 만들었다. 마침 새한국의비전이 주최하는 민주시민교육강좌 3기가 이달 하순 정의화 기념관에서 개강한다.

-정계 입문 전 운영했던 봉생병원으로 복귀해 의료원장도 맡고 있다는데.

△부산에 있는 두 곳의 병원을 묶은 봉생의료원 원장을 맡고 있다. 요즘 의사 기능은 하지 않고 병원 경영인 역할만 하고 있다. 그런데 ‘문재인 케어’로 환자들이 서울의 대형 병원으로 쏠려 지방 병원들의 경영이 매우 어렵다. 병원 경영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평소 정치인이나 의사 등 리더가 갖춰야 할 세 가지 요건을 강조해오셨는데.

△외과의사는 담대함을 뜻하는 ‘사자의 심장’, 예리한 판단력을 뜻하는 ‘독수리의 눈’, 세심함을 의미하는 ‘여성의 손길’ 등 세 가지를 갖춰야 한다는 격언이 있다. 정치인도 세 가지를 겸비해야 한다. 특히 서민과 약자를 보듬고 돕는 섬세함을 지녀야 한다.

-일본이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반도체 소재·부품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를 취한 데 이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전략물자 수출심사 우대국가 목록)에서 제외하는 법령 개정안을 각의에서 통과시켰다.

△일본은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요즘 한일 갈등은 정치·외교적 혜안으로 풀어야 할 사안인데 일본은 난데없이 경제보복으로 과잉대응을 하고 있다. 양국의 우호관계를 완전히 짓밟는 일본의 연쇄 조치를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무역보복은 한일관계에서 불행의 씨앗이 되고 동북아시아의 미래를 걷잡을 수 없는 벼랑으로 떨어지게 만들 수 있다. 나아가 다른 패권 국가들에도 나쁜 선례를 남기고 인류 미래에도 참담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베 신조 내각은 직시해야 한다.

-일본의 추가 보복 조치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무모한 결정”이라고 경고하고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을 것”이라며 단호한 대응에 나섰다.

△일본의 과잉대응 때문에 문 대통령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와 여당은 감정적으로 강경 대응만 할 게 아니라 국익을 지키기 위해 실질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 정부도 일본에 최소한의 명분을 줄 수 있도록 지혜를 짜내고 대통령 특사를 보내 무역전쟁을 종식시키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직접 테이블에 마주 앉아 대화로 풀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실무 차원의 협상 과정을 거쳐서 양국 정상이 하루빨리 회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양국은 본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체계를 공유하는 우방이므로 미래를 위해 서로 이해하면서 대화와 협상으로 풀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등 여권 내부에서는 한일관계와 관련해 강경 대응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

△친일(親日) 대 반일(反日) 프레임을 설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우리 국론을 분열시킬 뿐 아니라 일본도 자극하면서 한일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반일감정을 부추겨 내년 총선에서 여당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정략적 접근을 해서는 절대 안 된다. 그것은 민족에 재앙이 될 수 있다.

-평소 반일감정 조장보다는 극일(克日)로 ‘아름다운 복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해오셨는데.


△일본에 대한 국민들의 증오심을 키워갈 것이 아니라 일본을 극복하면서 아름다운 복수를 준비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우리의 지혜를 모으고 실력을 키워 일본보다 더 경쟁력 있는 강국을 건설해가야 한다. 어떤 나라보다도 우리나라 국민들이 더 청렴하고 남을 배려한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품격 높은 신뢰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면 진정으로 일본을 극복하고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꽃피우는 주역이 될 수 있다. 한일관계를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쌍방이 모두 이기는 ‘윈윈 게임’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한국과 일본이 정면충돌하면 두 나라의 손실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양국은 국익과 실리, 미래를 위해 신뢰를 쌓아나가면서 선린 우호관계를 복원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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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를 개선하려면 일본이 진정으로 과거사에 대해 사죄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일본은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깨끗이 정리해야 한다. 1965년 폴란드의 가톨릭 주교들이 독일 주교들에게 ‘우리는 독일을 용서함과 동시에 용서를 빕니다’는 내용의 편지를 전달한 일화를 떠올리게 된다. 이어 1970년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는 폴란드 바르샤바의 전쟁 희생자 위령비 앞에서 무릎 꿇고 사죄했다. 그의 진정성 있는 행동으로 폴란드인들의 가슴 속 응어리는 상당 부분 사라졌다. 아베 총리도 한국의 상징적인 곳을 찾아 진정 어린 사죄를 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 사회에서도 통 크게 용서하자는 얘기들이 나올 수 있다.

-요즘 한반도 정세는 100여년 전 구한말을 연상시킨다는 얘기가 있다. 일본의 경제보복, 러시아와 중국의 영공 및 방공식별구역 도발,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에서 중국·한국 등을 배제하려는 미국의 움직임, 북한의 잇단 미사일 도발 등이 겹쳤기 때문이다. 구한말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조언한다면.

△구한말 당시 집권층이 세계사 흐름을 읽지 못해 결국 치욕스러운 일제강점기를 겪어야 했다. 요즘 동북아 정세가 신냉전 시대로 치달으면서 주변 강국들은 패권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우리도 강력하고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우리 정부 일각에서 반미(反美)·친중(親中)·종북(從北) 움직임들이 나타나는 바람에 주변 강국들뿐 아니라 북한까지 우리를 얕잡아보는 듯한 일들이 벌어졌다. 우리 지도자가 담대하게 대응하면서 강단 있는 모습을 보여야 주변국들이 우리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단호한 대응을 위해 우리의 자주 국방력도 키워야 한다.

-국회의장이었던 2014년 12월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났는데, 기억에 남는 장면은.

△당시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 주석과 만났다. 시 주석은 30만명이 희생된 난징대학살 77주년 추모식에 참석한 직후였기 때문인지 일본에 대한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시 주석은 “사악한 짓을 한 일본을 그냥 둘 수 없지 않느냐”는 취지의 말을 했다. 그랬던 시 주석이 요즘에는 아베 총리와 손잡고 관계 개선을 시도하고 있는 게 바로 국제사회의 현실이다.

-2014년 10월에는 일본에서 아베 총리와 만나 무슨 대화를 나눴는가.

△내가 위안부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자 아베 총리는 ‘고노 담화(위안부에 대해 사과한 담화)를 수정할 의사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당시 아베 총리는 노트에 일본 정부의 입장을 메모해서 그대로 읽는 것 같았다. 원론적 입장을 그대로 반복한 것이어서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본래 적폐청산은 잘못된 관습과 제도·문화·시스템 등을 개혁해서 나라를 업그레이드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은 주로 인적청산으로 흘러가고 있어 안타깝다. 사람들을 적폐로 몰아가는 것은 굉장히 불행한 일이다. 유한한 권력이 인적청산에 주력하면 반작용이 생긴다. 만일 정권이 교체될 경우에는 정반대의 적폐청산이 시도될 수 있다. 그러면 우리 국민과 경제만 어려워진다. 머지않아 임기 반환점을 도는 문재인 정부가 앞으로 국민 분열이 아니라 통합을 향해 나아가는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

-야당은 집권세력 견제와 대안 제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현 정부가 많은 실망을 주고 있지만 야당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에서 ‘도로 친박당’ 소리가 나오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 정치가 미래를 향해 나아가려면 야당도 합리적 보수 정당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합리적 중도·보수세력들이 힘을 모아 견제와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김광덕 논설위원 kdkim@sedaily.com

He is

1948년 경남 창원에서 태어나 부산고를 졸업했다. 이어 부산대 의대와 연세대 의대 석사과정을 마치고 인제대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신경외과 전문의로서 부산에서 봉생병원 원장을 지내다 1996년 15대 총선 당시 부산 중·동구에서 당선돼 19대까지 내리 5선을 했다. 그는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에 이어 18대 국회 후반기 국회부의장, 19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 등을 지낸 뒤 고향 부산으로 되돌아갔다. 그는 주역에 나오는 ‘의(義)로써 화(和)를 이루면 모두에게 이롭다’는 말을 좋아한다.

김광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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