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1일 실시된 일본의 참의원 선거 결과에 많은 사람의 이목이 쏠렸어. 옆 나라 선거가 우리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올랐을 정도였지.
특히 아베 총리는 이번 선거 공시일에 맞춰 한국에 ‘수출 규제’라는 비장의 카드를 꺼내면서 ‘한국 때리기’에 열을 올렸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참의원 선거 압승’을 위한 노림수라는 말도 있었어.
그래서 결과는?
아베 집권 자민당과 공동 여당인 공명당이 전체 의석의 과반을 확보했어. 그러나 아베는 울상. 오래 전부터 품어 온 ‘꿈’을 이루는데엔 실패했지.
그의 꿈은 바로 ‘평화헌법 개헌’. 이번 참의원 선거 결과에 따라 일본의 평화헌법이 바뀔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지. 그동안 아베 총리는 이번 선거에서 압승하면 ‘평화헌법 9조’를 개헌하겠다고 동네방네 떠들어왔어.
근데 아베 집권당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했는데 뭐가 문제냐고? 이 헌법을 고치려면 ‘참의원 정족수의 3분의 2’를 채워야 하는데 전체 245석 중 160석을 받아 4석 미달로 개헌선 확보에는 실패했거든.
아베가 이토록 고치고 싶어하는 평화 헌법 9조, 대체 뭐길래 또 바뀌면 어떻게 되길래 이 난리인걸까?
◇싸움 유발자 일본은 어쩌다 ‘평화주의자’가 됐을까
평화헌법.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평화를 위한 법을 말해. 과거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등 아시아 국가뿐만 아니라 미국에게 덤빌 정도로 툭하면 전쟁을 선포했던 일본이 어쩌다가 평화주의자가 됐냐고?
때는 바야흐로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에 패한 일본은 7년간 미군정의 지배를 받았어. 당시 연합군 최고사령부(GHQ)는 일본에게 전쟁의 책임을 묻는 도쿄 재판을 열고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헌법 개정’을 요구했지.
이 개정된 헌법엔 ‘일본이 전쟁을 포기하고, 일본이 육·해·공군이나 여타 전력을 보유하지 않으며, 교전권을 부인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어.
언제 또 갑자기 일본이 싸움을 걸지 모르니까 군대와 무기를 못 갖게 한거야. 연합국 최고사령부의 헌법 초안을 기초로 제정된 이 평화 헌법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2년 후인 1947년 5월 3일 시행돼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지.
이 법 때문에 지금까지도 일본은 다른 나라를 절대로 먼저 공격할 수 없고 오로지 공격을 받았을 때 방어만 할 수 있는 상태야.
여기서 잠깐, 근데 TV를 보다보면 심심찮게 등장했던 ‘일본의 자위대’는 군대가 아니냐고? 응 아니야. 자위대는 엄밀히 말하자면 준군사조직이거든. 자위대는 6.25전쟁 후 일본이 치안 유지를 명분으로 만든 경찰 경비대로 만들어졌어. 말그대로 자기 방어를 위한 병력이었지. 그렇지만 틈틈이 전력과 예산을 쌓아둬서 세계 군사력 6위인 정도로 막강해졌지. 사실상 ‘군대’를 갖추고 있긴 하지만 평화 헌법 때문에 ‘군대’라 부를 수 없는 상황인거야.
그래서 일본 우익들은 오랜 기간동안 이 평화 헌법을 탐탁치 않아했어. 애초 미국의 요구에 의해 바뀐 헌법규정이라는 점에서 자존심이 상했을뿐더러 미국, 중국, 북한, 한국 등 시시때때로 갈등이 벌어지는 국제 관계에서 다른 나라처럼 ‘군대와 무기’가 없으니 앙금빠진 찐빵같이 느낀거지.
개헌 주장론자 중 한 명이었던 아베총리는 정계 입문 직후부터 줄곧 다른 나라처럼 군대를 보유하는 ’보통국가화’를 외치면서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정치 인생에 목숨을 걸기 시작했어.
근데 어차피 일본 헌법인데 그냥 자기끼리 개정하면 안되는걸까? 정답부터 말하자면 바꿀 수는 있지만 쉽지 않아. 우선 일본 헌법은 개정이 어려운 ‘경성헌법’이거든. 쉽게 말해 일반 법률 개정과는 달리 헌법은 개정절차가 매우 어렵다는거야.
일본은 현재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는데, 앞서 말했듯이 개헌 발의를 하려면 양원 모두에서 총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발의가 가능하거든. 여기다가 국민 투표를 실시해서 과반수 이상의 찬성표를 얻어야 해. 그래서 평화헌법 뿐만 아니라 개헌 절차 규정인 96조도 여권에서 개정하려고 여러 번 시도했지만 실패했지.
이처럼 어려운 개헌 과정임에도 일본은 평화 헌법 시행 후 70여년동안 꾸준히 헌법을 바꾸려고 했어. 본격적으로 논의된 건 1991년 걸프전쟁 때였지.
당시 미국 조지 부시 대통령은 일본의 가이후 도시키 총리에게 걸프전에 자위대를 파견할 것을 요청했었어. 그러나 가이후 총리는 평화 헌법을 근거로 자위대를 파견하는 것을 거부했지. 대신 미국에 130억 달러(한화 약 13조 원)에 달하는 재정 지원을 한거야. 이것 때문에 ‘수표책 외교(checkbook diplomacy·돈으로 권력 확보)’를 한다는 비아냥도 있었지. 그래서 일본은 이걸 기회 삼아 1992년 유엔 평화유지활동(PKO) 협력법을 만들고 자위대의 해외파병 근거를 마련했어. 이를 시작으로 지난 2012년 일본 자민당 주축의 헌법 개정 초안을 완성했고 2014년 공산주의 국가나 분쟁지역 국가들에 무기를 수출하지 않는다는 무기 수출금지 3원칙을 사실상 폐지했어. 심지어 2015년엔 안보법을 개정해 평화헌법 해석을 바꿈으로써 ‘집단자위권’ 행사까지 가능하게 만들었지. 즉 일본 영토가 공격받지 않고 동맹국이 공격받을 경우 일본이 공격 받은 셈치고 반격할 수 있다는거야.
평화헌법 개정을 위해서라면 없는 법은 만들고 있는 법도 새로 해석하는 기염을 토해냈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지 단 한 번도 평화 헌법 자체가 수정된 적은 없어. 그래서 점점 임기가 임박한 아베 입장에선 안달날 수 밖에 없는거지.
◇‘보통국가’ 꿈꾸는 아베…‘안보 부담’ 줄이고픈 미국
이와중에 애시당초 이 법을 만든 미국은 지금 어떤 반응이냐고? 사실 최근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월가에선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어.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이 한국에 수출 규제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설이지. 이번 일본의 한국 제재는 단순히 양국간 문제가 아니거든. 반도체 등 IT산업을 옥죄면 나비효과처럼 애플, 구글, 아마존 등 미국의 기업까지 피해를 볼 수 있어. 그니까 당연히 양국이 사전 논의를 했을거라는 추측이야. 근데 만약 맞다면 대체 미국은 왜 묵인했을까?
먼저 호시탐탐 세계 원톱 미국의 자리를 넘보는 중국을 압박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거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이 메모리 반도체 생산에 차질을 빚을 경우 가장 큰 경제적 타격을 받는 곳이 샤오미를 비롯한 중국 기업들이거든.
또 ‘군사력 향상’에 집착하는 일본을 통해 미국이 자신들의 무기를 대량 판매하려는 목적도 있어. 그러면 중국 견제용으로 쏟아붓는 어마어마한 국방비를 메꿀 수 있는 동시에 군사력을 갖춘 일본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면서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거지. 그러니까 미국입장에선 내심 개헌을 바라고 있을거야.
보통국가가 되고 싶은 일본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안보부담을 나누고 싶은 미국의 퍼즐이 딱 맞아 떨어진거랄까.
◇일본 국민 2명 중 1명 ‘개헌 반대’ …아베의 꿈은 이뤄질까
어찌됐건 이번 선거에서 개헌선 확보 실패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아베는 자신의 임기인 2021년까지 이 꿈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한 상황이야. 일각에선 벌써부터 임기 연장 얘기가 나오고 있어. 이미 일본 전후역사상 최장수 총리를 눈앞에 두고 있는데 자민당은 당규를 또 고쳐 아베 총리의 4연임을 추진하려는 거지. 어떻게 해서든 임기 중에 아베의 꿈인 ‘개헌’을 이뤄주려고 말이야. 그럼에도 아직 난관은 많아. 자민당을 제외한 정치권내에서도 아직 개헌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데다가 설령 의회에서 개헌안을 통과시킨다해도 국민투표에 붙여 과반수 지지를 얻어야 하는데 이게 또 쉽지 않거든.
특히 현재 일본 국민들의 최대 관심사는 개헌보단 ‘복지와 소비세율 인상’인데 오는 10월 소비세율이 8%에서 10%로 올리는 것에 대해 매우 예민한 상태야. 지금이야 ‘한국 때리기’ 하면서 우익의 지지를 얻고 있지만 소비세 인상 후 경기가 나빠지면 그마저도 동력을 잃으면서 개헌 논의를 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겠지.
그동안 아베는 자신의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 온갖 꼼수를 써왔어. 하지만 개헌의 최종 관문은 ‘국민의 민심’은 얻는 것. 지금처럼 아무리 한국을 옥죄봤자 증세, 연금 등 ‘민생 문제’를 풀지 않으면 개헌의 꿈이 그냥 ‘개꿈’이 되는거지. 과연 그의 정치인생 꿈은 이뤄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