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창간기획] "의사·전업주부·법조인 여러 길 있었지만…미생물학 연구·실험하고픈 욕구 더 강했죠"

김빛내리 RNA연구단장 '인생의 갈림길'

김빛내리 기초과학연구원 RNA연구단장./이호재기자김빛내리 기초과학연구원 RNA연구단장./이호재기자



“원래 저희 아버지께서는 제게 기초의과학을 전공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김빛내리 기초과학연구원 RNA연구단장은 8일 서울경제신문 59주년 창간기념 인터뷰에서 자신이 지금과는 다른 길을 걸을 뻔했던 적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첫 번째 갈림길은 학창시절 전공 선택 과정에서 직면하게 됐다. 당시 문과와 이과 중에서 이과를 선택했던 그에게 부친은 의대 진학을 권했다. 교육자 출신이자 출판 사업자로서 교육 현실을 잘 아는 부친으로서는 이과에서 가장 전망이 밝은 직업이 의사라는 점을 무시하기는 어려웠던 것. 하지만 김 단장은 임상 활동보다는 공부를 하고 싶었고, 서울대에서 미생물학과를 전공으로 선택했다. 그는 “제 아버지는 선견지명이 있는 분이셨지만 (미생물학 전공을 선택한 데 대해서는) 결과적으로는 제 판단이 맞았다”며 “1980~1990년대에 의대로 진학했다면 (임상 쪽 비중이 커) 연구할 시간이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김 단장은 물리학도나 수학자를 꿈꿨던 적도 있었다. 지식 암기보다는 논리적 사고로 풀어가는 학문에 매료됐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에게 생명과학자의 비전을 보여준 사람은 사촌 오빠였다. 지금보다 여성의 이과 분야 사회진출 기회가 훨씬 적었던 당시 상황에서 그나마 미생물학이 여성에게 조금 더 문호가 열려 있다고 조언했다. 당시 서울대에서조차 여성 교수가 재임 중인 학과는 노정혜 교수(현 한국연구재단 이사장)가 있던 미생물학과뿐이었다. 실험연구가 많았던 미생물학은 학구적인 김 단장의 적성에 맞았다. 서울대에서 석사까지 마치고 영국 옥스퍼드대 리네커칼리지로 박사과정 유학을 떠났을 때에는 대부분 휴가를 떠난 크리스마스 시즌에도 캠퍼스에 남아 연구를 했을 정도로 미생물학에 빠져 있었다. 그때 리보핵신(RNA) 연구에 전념했던 것이 계기가 돼 이후 마이크로RNA(miRNA) 생성·작동원리를 규명하는 세계적인 학문 성과로 이어지게 됐다.



두 번째 갈림길은 영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지 얼마 후 찾아왔다. 귀국해 결혼하면서 얼마 뒤 출산하게 된 것이다. 육아를 위해 1년 6개월 남짓 전업주부로 살았다. 학계로 복귀할지, 주부로 여생을 보낼지의 갈림길에서 그는 망설였다. 김 단장은 “출산하고 나서 포닥(박사후 연구원)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그 길을 간다고 해서 취업을 할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고 반추했다. 그는 “국내에 (미생물학을 전공하는) 대학이 늘면서 졸업 인력의 배출이 많아지던 시절이었는데 그에 비해 관련 분야 산업은 발전이 안 돼 있었다. (기업 쪽) 일자리는 찾기 어려웠고 그래서 학교나 연구소로 취업 진로를 봐야 했지만 그곳도 자리가 별로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특히 여성에게는 더욱 취업난이 심했다”고 전했다.

그런 그에게 법조인이던 남편은 차라리 성차별이 덜한 사법고시의 길을 권유하기도 했다. 그 의견을 따라 한때 고시공부를 하기도 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고 연구하고 실험하고 싶은 욕구만 더욱 자극하게 됐다고 한다. 남편은 이를 눈치채고 포닥의 길을 계속 가라고 김 단장을 응원했고, 덕분에 1999년부터 2년간 RNA연구로 정평이 났던 미국 하워드휴스의학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 귀국 후 서울대에 계약직 조교수로 임용되면서 국내 생명학계에 안착했다. 세 번째 갈림길은 38세가 되던 2007년 위암 선고를 받으며 찾아왔지만 암 초기여서 약물치료로 완치할 수 있었다.

현재 그는 가장 노벨상에 근접한 한국인 과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런 평가를 그는 부담스러워하며 연구에만 정진하고 싶다고 말한다. 김 단장은 앞으로의 연구계획에 대해 “miRNA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이를 생성하는 효소는 밝혀졌지만 (효소를) 조절하는 인자가 아직 발견되지 않아 그런 자세한 것들에 대한 연구를 앞으로 10년 안에 마무리 짓고 싶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miRNA로만 탐구 분야를 한정시키지는 않고 있다. 김 단장은 “기존에 하던 연구도 계속하겠지만 전혀 RNA가 아닌 것을 연구할 수도 있다”며 “중요한 과학적 발견을 할 수 있는 단서들은 주변에 널려 있는데 단지 우리가 못 보는 것일 뿐이며 저는 가능하다면 평생 (학문적으로) 재미있는 발견을 계속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민병권·백주원기자 newsroom@sedaily.com

민병권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관련 태그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