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부품소재 국산화' 시작부터 삐걱

정부 대중기 상생안 조율없이 진행

대기업들 "의견 안묻고 정책 추진

불투명한 사업 못 뛰어들어" 난색

일본의 수출규제에 맞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연결해 취약 분야인 부품·소재를 국산화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이 시작부터 삐걱대고 있다. 정부가 대기업·중소기업의 입장이나 의견을 사전에 제대로 조율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대기업들은 취지에 십분 공감한다면서도 성사가 불투명한 사업에 무리하게 뛰어들 수 없다며 난색을 보이고 있다.


11일 관계부처와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9일 석유화학·철강 등 주요 업종 대기업에 상생품목을 선정해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다. 정부는 또 대·중소 상생협의회 구성을 위한 대기업을 추천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요청에도 복수의 대기업들은 ‘마땅히 꼽을 만한 품목이 없다’는 취지의 답변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대기업들은 상생협의회에도 참석할 의사가 없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공문을 반려한 기업의 한 관계자는 “일본에 의존하는 품목이 적지 않지만 당장 수입이 중단된 품목은 없다”며 “많아 봐야 연간 수억원 규모로 사용하는 제품을 국산화하기 위해 수십억원을 투자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상생품목은 대기업이 최종 구매를 전제로 국산화가 필요한 제품을 지목하면 중소기업이 개발·생산하게 된다. 정부는 대·중소기업으로 구성된 상생협의회를 발족하고 기업의 수요를 조사해 20여개의 상생품목을 추가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세운 바 있다. 하지만 정부가 마땅한 참여 유인을 만들지 못할 경우 대기업의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해 정책 실현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대기업이 상생품목 선정에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 중 하나는 경제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국산화 가능성 자체가 불투명한데다 양산 단계에 이르는 시간을 가늠하기가 어려워 선뜻 투자에 나서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가 상생품목을 국산화하는 데 1,000억원가량을 투입하는 등 지원 방안을 밝혔지만 연구개발(R&D) 용도 외에 쓰이는 금액은 일정 기간 후 되갚아야 하는 형태여서 기업의 부담을 덜어주기에는 역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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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의 한 관계자는 “일본 업체들이 수십년간 한 분야에 집중해 쌓아온 기술력을 수년 내에 같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일부 국산화가 필요한 물품이 있겠지만 그나마 비슷한 수준의 기술력을 갖춘 제3국 업체와 교역 확대를 통해 자원을 조달하는 것이 차라리 더 생산적”이라고 귀띔했다.

일본이 수출규제를 어느 수준까지 확대할지가 불확실하다는 점도 작용했다. 일본은 7일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통해 한국을 수출관리상 일반포괄허가 대상인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시행세칙인 포괄허가취급요령에서는 한국에 대한 개별허가 대상 품목을 추가하지는 않았다. 기존 반도체 3개 소재를 제외한 품목의 경우 자율준수프로그램(CP) 기업과 거래하는 한국 기업들은 제도 변경 전과 같이 수입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재계 관계자는 “국내 대기업이나 1차 협력사들이 거래하는 일본 대기업은 대부분 CP 인증을 받았다”며 “당장에 국산화할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산화에 대한 정부의 강한 의지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의문스럽다는 지적도 나왔다. 경제단체의 한 관계자는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면서 정부 안팎에서 일본에 의존하는 소재·부품·장비를 국산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며 “소재·부품 기술을 확보하려면 지속적인 지원이 동반돼야 하는데 일본 지진이 수습 국면에 접어들자 결국 흐지부지돼버렸다”고 말했다. /세종=김우보기자 ubo@sedaily.com

김우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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