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3대 반기업 정책'에 발목 잡힌 대기업...생존도 벅차다

[창간기획-동굴의 우상서 벗어나라]

①이념 틀 갇힌 대기업정책-<하>혁신성장의 밑그림은 친기업

최저임금 인상으로 생산성 뚝

52시간 영향 R&D 역량 약화

법인세 부담에 투자여력 상실

정책기조 변화 타이밍 실기땐

韓경제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지난달 4일 오후7시30분께 서울 성북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국제협력관의 조명이 대부분 꺼져 있다. 이 건물은 로봇을 연구하는 곳이다./서울경제DB지난달 4일 오후7시30분께 서울 성북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국제협력관의 조명이 대부분 꺼져 있다. 이 건물은 로봇을 연구하는 곳이다./서울경제DB



“요즘 같은 상황에서 국내에서 사업을 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듭니다.”


에너지 사업을 하는 국내 대기업 관계자의 하소연이다. 이 업체는 반기업 정책이 난무하는 국내가 아닌 해외 공장 확충을 통해 원가 경쟁력 확보 및 수익 창출을 꾀하고 있다. 단기간의 집중노동이 필수인 연구개발(R&D) 분야는 주 52시간 일괄 도입으로, 사업 확장을 위한 투자는 법인세 인상으로 각각 사업계획에 차질이 생긴 탓이다.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은 최근 한 토론회에서 국내 경제 상황에 대해 “최저임금 상승은 기업과 경제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으로 해야 하는데 무리한 측면이 있으며 근로시간 단축도 신산업·계절산업 등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고 갑작스럽게 시행된 측면이 있다”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의 성장률이 끝에서 두 번째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우리 경제에 버팀목이었던 대기업들조차 미중 무역갈등과 일본의 수출규제라는 외부 변수에다 △최저임금의 급속한 인상 △경직된 주 52시간제 △세계 흐름과 역행하는 법인세 인상이라는 내부 변수에 신음하고 있다. 최근 일본의 수출규제에 화들짝 놀란 정부가 ‘반기업 정책’에 변화를 주고 있지만 대기업에 대한 기본 인식에는 변화가 없다.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인 조성욱 서울대 교수는 과거 대기업에 대해 “가난한 집 맏아들”이라고 표현하며 “기회조차 받지 못한 기업 및 경제주체들에게 보상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기업에 책임과 의무를 강조하며 희생을 해야 한다는 논리인 셈이다.


3대 반기업 정책 중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국내 기업의 생산성 저하와 제조업의 경쟁력 약화라는 ‘악순환 고리’를 만들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1·4분기 제조업 단위노동비용지수는 129.9로 11년 만에 최고치이며 전기 대비 증가율도 25.6%로역대 가장 큰 증가폭을 기록했다. 높은 단위노동비용지수는 물건 생산에 투입되는 노동비용이 높다는 뜻으로 그만큼 제품의 가격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반면 노동효율성을 평가하는 제조업 노동생산성지수는 지난해 3·4분기 111.7로 정점을 찍은 뒤 올 1·4분기 106.9로 2분기 연속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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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통성 없는 주 52시간 도입은 대기업의 R&D 역량을 끌어내려 미래 성장동력을 꺼뜨리고 있다. 특히 재계에서는 탄력근로 단위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미국·일본과 같은 1년으로 늘려야 그나마 선진국과 경쟁이라도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최근 일본의 수출규제 품목을 국산화하는 업체에 대해서는 주 52시간 적용을 완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일본 규제에 따른 피해가 전방위로 확산될 가능성이 큰 만큼 허용 범위를 보다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다. 경직된 주 52시간 체제 도입은 국가경쟁력 하락으로까지 이어진다는 분석도 나온다. 글로벌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올 6월 한국의 주 52시간 도입과 관련한 보고서에서 “한국이 주 52시간제를 도입하면서 기업들에 연간 9조원의 추가 인건비 부담이 발생하며 이에 따라 내년 한국의 성장률을 0.3%포인트 낮추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며 “또 주 52시간제가 전 사업장에 적용되는 오는 2021년에는 성장률을 0.6%포인트 떨어뜨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세계 흐름과 거꾸로 가는 법인세율은 국내 기업의 투자 여력을 크게 줄이고 있다. 국내 최고 법인세율이 기존 22%에서 지난해 25%로 높아짐에 따라 대기업의 부담이 급속히 늘어났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코스피에 상장된 비금융 기업 중 인상된 법인세율 적용을 받는 38개 기업의 추가 법인세 부담은 지난해 전년 대비 42.5% 증가한 7조5,000억원을 기록했다. 이 중 이익 증가에 따른 법인세 증가 효과는 2조9,000억원이었던 반면 법인세율 인상에 따른 효과는 1.5배가 넘는 4조6,00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분석 대상 517개 기업 중 294곳의 영업이익이 감소한 데 이어 올해는 업체 대부분이 이익 감소를 보일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도 자칫 법인세 부담이 2년 전과 비교해 늘 수 있다.

무엇보다 이 같은 추이는 글로벌 상황과 역행해 기업의 사기를 꺾는다. 기획재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의 법인세율은 25%로 OECD 회원국 36곳 중 일곱 번째로 높다. 특히 주요7개국(G7) 가운데 한국보다 법인세율이 높은 곳은 프랑스(33.3%) 한 곳뿐이다. 관련 순위가 최고세율 기준이며 한국의 경우 투자세액공제 등 공제 항목이 많다는 반론도 나오지만 미국·일본·영국·이탈리아 등 주요 국가들이 모두 법인세율을 낮추는 상황에서 한국만 역주행 중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재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반도체 등 특정 산업 분야가 지난 몇 년간 버텨줬기 때문에 현 정부의 아마추어 같은 경제실험이 가능했지만 일본의 수출규제와 미중 무역갈등은 한국 경제의 체력을 고갈 직전으로 몰고 가는 상황”이라며 “대선공약과 정치적 구호에 연연해 정책기조 변화 타이밍을 실기할 경우 향후 한국 경제는 성장이 아닌 생존을 걱정해야 될 처지에 놓일 것”이라고 밝혔다.

양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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