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가 여성 교역자(교무)의 결혼을 허용했다.
원불교는 지난달 교단 최고 의결기구인 수위단회(首位團會)를 열어 여성 교무 지원자가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했던 ‘정녀(貞女)지원서’를 삭제하는 내용의 ‘정남정녀 규정 개정안’을 통과했다고 12일 밝혔다. 이번 규칙 개정으로 원불교 여성 교무도 남성 교무처럼 자율적인 의사에 따라 결혼을 선택할 수 있게 됐다.
정녀지원서는 원불교 여성 교무가 되면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겠다고 약속하는 일종의 서약서다. 원불교는 여성 예비 교역자가 대학 원불교학과 입학을 지원할 때 이 서약서를 제출하도록 의무화했다. 이 때문에 원불교 여성 교무는 그동안 결혼할 수 없었다.
원불교 최고지도자이자 수위단회 단장인 전산(田山) 김주원 종법사는 “이번 개정 건은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한 결의가 될 것이며, 교단의 큰 방향이 되고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원불교에서는 1916년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의 개교 이래 여성 교무들이 독신으로 사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어린 나이에 결혼했지만 일제강점기나 한국전쟁을 거치며 배우자를 잃은 여성이 교무로 들어오는 경우는 있었다. 1986년에는 아예 교헌을 개정해 정녀지원서 제출 의무를 명시화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 시대착오적인 남녀 차별이라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원불교 초기만 하더라도 정남은 물론 정녀 지원도 스스로 희망할 경우에 하고 지원 이후 정식 인증을 받기 전 언제라도 지원 변경이 가능하도록 했다. 또 지원을 변경한 사람에게 손해가 가지 않도록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번 개정은 이 같은 초기 정남정녀 규정의 정신을 되살리는 데 의의가 있다고 원불교 관계자는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여성 (교무) 사이에서 정녀지원서가 자율적인 선택조항이어야 한다는 요구가 많았다”며 “원불교 초기 정신에도 더 부합한다는 판단에 따라 규정을 다시 개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 교헌 개정으로 정남정녀 지원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변경된 규칙에 따라 정남정녀 희망자는 교역자 승인을 받은 때로부터 42세 전까지 지원서를 제출한다. 이들이 독신 서약을 지켜 60세가 되면 교단은 정식으로 정남정녀 명부에 등록한다.
원불교는 여성 교역자의 상징으로 여겨진 ‘검정 치마, 흰 저고리’ 정복에 변화를 주는 방안도 본격 검토한다. 외부적으로 상징적인 의미는 있지만 활동성이 떨어지고 관리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