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스러운 신파 대신 쿨한 유머로 승부를 건 것이 젊은 관객들에게 주효했습니다.”
올여름 최고 흥행작인 ‘엑시트’를 제작한 김정민(45·사진) 필름K 대표는 최근 서울 강동구 상암로의 영화사 사무실에서 만나 “푹푹 찌는 무더위에 시원하고 통쾌한 감정을 만끽하게 해주는 영화라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엑시트’는 산악 동아리 출신인 대학 선후배가 유독가스로 아수라장이 된 도심을 탈출하는 과정을 묘사한 재난 액션물이다. 총 제작비 130억원이 투입된 이 영화의 누적 관객은 지난 17일 기준 729만명을 넘어섰다. 한일갈등이라는 정치적 이슈의 영향을 받은 ‘봉오동 전투’와 달리 순수하게 영화의 힘만으로 달성한 수치라는 점에서 더욱 빛나는 성과다. 김 대표는 “재난 영화임에도 신파적 요소를 뺀 것은 물론 그 흔한 멜로 코드나 악역 캐릭터 하나 없이 이야기를 끌고 간 작품”이라며 “새로운 오락영화의 한 모델을 제시한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지난 1997년 영화계에 발을 들인 김 대표는 이듬해 ‘남자 이야기’의 연출부로 현장을 처음 경험했다. 이후 ‘아라한 장풍대작전’과 ‘친절한 금자씨’의 제작실장을 맡은 데 이어 ‘짝패’와 ‘해결사’에서는 각본가와 프로듀서 역할을 겸했다. 독립해서 차린 영화사 필름K로 ‘베테랑’ ‘군함도’와 같은 흥행작을 외유내강과 공동 제작하기도 했다. 외유내강은 ‘베를린’ ‘베테랑’ ‘군함도’ 등으로 유명한 류승완 감독의 아내인 강혜정 대표가 운영하는 회사다.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엑시트’ 역시 외유내강과 함께 만든 작품이다. 김 대표는 “충무로에서 외유내강은 효율적으로 프로덕션을 관리하는 회사로 유명하다”며 “시나리오 단계부터 철저히 계획하는 노하우 덕분에 이번 영화에서도 실제 촬영한 분량 중 버린 장면이 거의 없었다”고 귀띔했다.
손익분기점인 350만명을 훌쩍 넘어 순항하고 있는 지금이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만 제작 초기에는 ‘배우들이 약하다’는 지적이 많았다고 한다. 특히 배우 조정석과 호흡을 맞춰야 하는 임윤아의 경우 아이돌 그룹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더욱 많은 우려의 시선을 견뎌야 했다. 김 대표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걱정 어린 소리를 들었으나 영화 ‘공조’와 여러 드라마에서 보여준 임윤아의 연기에 확신을 갖고 있었다”며 “촬영이 거듭될수록 그런 확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고 돌이켰다.
국내 최대 투자·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가 여름 대작으로 선보인 ‘엑시트’는 신인 감독의 데뷔작이라는 점에서도 관심을 모은다. 이 작품으로 데뷔한 이상근 감독은 ‘베이비를 원하세요?’ ‘명환이 셀카’ 등의 단편을 통해 일찌감치 주목받은 충무로의 기대주다. 김 대표는 “류승완 감독의 영화 ‘다찌마와 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현장에서 이 감독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며 “그가 만든 단편들을 굉장히 재밌게 봤는데 데뷔를 하겠다며 써온 ‘엑시트’의 시나리오 역시 남다른 감성을 품고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평범한 연출자라면 심각해질 만한 상황에서 웃음의 포인트를 잡아내는 이상근은 귀한 재능을 가진 감독”이라고 평가했다.
지난해 단독으로 제작한 영화 ‘너의 결혼식’으로 이미 흥행의 짜릿한 단맛을 본 김 대표는 현재 서너 편의 아이템을 개발 중이다. 그는 “‘해결사’를 만든 권혁재 감독과 준비하고 있는 휴먼 스포츠 드라마가 기대되는 라인업 중 하나”라며 “다소 어려운 길이라도 남들이 잘 하지 않는 장르를 시도하면서 한국영화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성형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