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기 재원 마련에 대한 대책 없이 미래 세대에 부담을 떠넘기고 있는 정부가 고소득자·대기업같이 ‘군소리’ 내기 어려운 집단만 콕 집어 옥죈다는 비판이 나온다. 복지 국가 실현이라는 큰 국가 비전은 그려놓고 이에 필요한 재원 논의는 쏙 빼다 보니 특정 집단만 타깃으로 쥐어짜는 것이다.
‘경제검찰’이라고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는 재벌개혁론자인 조성욱 서울대 교수가 신임 위원장 후보자로 지명됨에 따라 대기업에 대한 압박이 거세질 조짐이다. 조 교수는 과거 기고에서 재벌을 ‘가난한 집에서 특혜 받아 성공한 맏아들’로 비유하며 대기업들의 사회적 의무를 강조했던 인물이다. 이미 김상조 전 위원장(현 청와대 정책실장) 시절 국회에 제출된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안에는 전속고발권 폐지와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와 같은 기업 부담을 가중시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조 교수에 대해 ‘김상조 아바타’라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김 실장과 유사한 기업관(觀)을 지녔다는 점에서 현 정부 들어 진행된 ‘사정 칼날’은 계속될 것으로 관측된다.
표심 눈치를 보며 대중적인 증세에 대한 논의조차 서랍 속에 넣어두고 있는 정부는 대기업 및 고소득자에 대한 세금 징수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7월 발표한 올해 세법개정안을 보면 고소득 직장인을 핀셋 증세하겠다는 정부 의지가 분명히 읽힌다. 근로소득공제 한도를 2,000만원으로 신설해 총 급여가 3억6,250만원이 넘는 약 2만1,000여명의 고소득 직장인에 대한 세 부담을 늘렸다. 여기에 퇴직 임원의 공제 한도를 낮춰 세금 혜택을 줄였다. 정부는 이를 통해 향후 5년간 고소득자로부터 3,773억원을 더 거둬들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서민·중산층 세 부담이 1,682억원 줄어드는 것과 대조적이다.
국세청은 대기업·대재산가의 변칙 탈세를 정밀 점검한다. 일감 몰아주기 및 떼어주기, 사주 자녀 편법 지원 등 사익 편취 행위를 중점 조사하는 한편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탈세도 집중 추적할 방침이다. /세종=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