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1월14일, 익산 미륵사지 석탑을 해체 수리 중이던 가설 덧집 내부는 긴장감에 휩싸였다. 8년에 걸친 해체 조사와 수리 작업 끝에 마침내 기단부 바로 위에 놓인 심주석(중심부 돌기둥)을 막 들어 올리려는 순간이 왔다. 심주석이 들리자 1,000년 넘게 갇혀있던 사리공부터 금, 은, 유리 보물들이 영롱한 빛을 드러냈다.
지금도 이때를 기억하며 “말 그대로 보물창고를 발견한 순간이며 백제사의 오랜 비밀을 간직해온 빗장이 열린 순간”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전시과장을 맡고 있다. 백제사 전문가로, 올 초까지 국립미륵사지유물전시관장을 지내며 국립익산박물관 건립 사업을 이끈 주인공이기도 하다. 저자는 지난 1910년 일제가 진행한 익산 고적조사부터 왕궁리 유적과 제석사지 발굴, 미륵사지 발굴, 쌍릉 발굴 등을 두루 아우르며 ‘고도’이자 ‘왕도’인 익산의 역사를 비전문가도 알기 쉽게 이야기처럼 풀어냈다.
2009년 당시 미륵사지석탑에서는 ‘사리봉영기’가 출토됐고 여기에는 639년 사택적덕의 딸이자 백제 왕후인 사택왕후가 미륵사 건립을 발원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그간 미륵사는 ‘서동요’의 주인공인 선화공주의 발원으로 무왕이 창건했다는 게 정설처럼 전해져온 터였다. 눈앞에 발견된 사리봉영기의 기록이 ‘삼국유사’의 기록과 정면으로 배치됐다. 선화공주가 미륵사 창건의 중심인물이 아니라는 점이 확인됐고, 백제 무왕의 왕후가 사택왕후이니 선화공주는 어떤 존재였나 논란이 일었다.
발굴조사가 한창인 익산 쌍릉 소왕묘 이야기도 흥미롭다. 저자는 “소왕묘가 대왕묘보다 조성 시기가 이른 것으로 추정되며 주인이 사택왕후는 아니다”라면서 “소왕묘 피장자는 삼국유사에 나오는 선화공주이거나 역사책에 등장하지 않는 제3의 인물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책의 묘미는 이처럼 새로운 유적과 유물 등 고고학 자료의 발견이 그간 ‘역사적 사실’로 믿어온 내용을 어떻게 바꾸고 또 어떻게 새로운 역사가 쓰이는지를 예리하면서도 부드럽게 소개하는 대목이다. 백제가 달리 보인다. 1만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