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문제뿐 아니다. 이상 기류가 흐르는 한미관계, 중러의 도발 등 대형 외교 이슈가 터질 때마다 국회는 외교적 ‘가교’ 역할은커녕 되레 국운이 걸린 외교 문제를 정쟁의 소재로 삼는 모습만 보이고 있다.
지난 22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해서도 비슷한 행태를 보였다. 야당은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이슈를 ‘물타기’하기 위한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설훈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같은 당 이종걸·우원식·권칠승·김한정·박찬대·이용득 의원과 오는 31일 독도를 방문하기로 했다. 독도를 수호하는 경비대를 격려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으나 민감한 시기인 터라 보다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학계 전문가들은 정치적 계산보다는 ‘숲을 보는’ 큰 관점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지소미아 종료가 비단 일본이 아닌 미국 등 외교 측면에서 광범위한 후폭풍을 가져올 수 있는 만큼 여야가 초당적으로 머리를 맞대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껏 여야가 국가 외교·안보 문제에서도 주판알을 튕기며 위기 해결보다는 극단적 대결구도만 초래한 터라 이제라도 본연의 역할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용철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외교·안보 문제가 생겼을 때 의원들을 파견하고 공동으로 전략을 논의했으나 현재는 그런 모습을 찾기 어렵다”며 “무조건 (반일) 감정을 누르라는 것이 아니다. 외교적 협상 분위기를 조성하고 해결 방안을 찾는 등 정치권의 역할에 충실하라는 뜻”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일본이 엮여 있기는 하나 지소미아 종료는 미국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안”이라며 “일본이 평화 헌법 개정에 나서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은 아닌지 또 미국은 물론 중국·북한 등 외교관계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따져봐야 할 때”라고 꼬집었다. 정치권이 당 이익에 따른 감정적 호소보다는 실질적 해결책 모색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