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고무줄 심사'로 韓 압박...日기업 자산매각 땐 추가보복 가능성

['통상 퍼펙트스톰' 몰아친다-일본, 28일부터 한국 백색국가 제외]

심사기간 최장 90일...공작기계·탄소섬유 등 직접 영향권

정부 "예상됐던 일...준비한 매뉴얼에 따라 대처할 것"

양국 대응보며 수위조절...'일왕 즉위식'이 분수령 될 듯







일본이 한국을 수출 우대국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본격화한 가운데 정부는 이미 예상됐던 일이라며 애써 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일본이 당장에 새로운 무역 보복 조치를 꺼내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면서 준비해둔 매뉴얼에 따라 대응하겠다는 게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다만 통상당국 내부에서는 일본의 추가 규제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앞으로 강제징용 배상을 위한 일본 기업 자산 현금화 등이 현실화하면 일본이 거세게 반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적어도 다음달까지는 한일 간 무역 갈등이 현 수준에서 지속될 것”이라면서도 “강제징용 판결 이행 이슈가 불거지기 시작하면 추가 보복이 없을 것으로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28일부터 한국에 전략물자를 수출하는 자국 기업들에 대한 관리 절차를 강화한다. 그동안 일반포괄허가를 얻어 3년 동안 별다른 제한 없이 수출이 가능했지만 더는 이 같은 혜택을 받지 못한다. 앞으로는 개별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유효기간은 6개월에 불과하고 허가를 받기 위한 심사도 최장 90일이 걸린다. 비전략물자에 대해서도 군사 전용 가능성이 있는 품목에 ‘캐치올 제도’가 적용된다. 캐치올은 전략물자가 아니어도 군사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제품의 수출을 제한하는 제도다.

홍남기(가운데) 경제부총리, 강경화(왼쪽) 외교부 장관,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일본 수출규제 대응 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해 대응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공=기재부홍남기(가운데) 경제부총리, 강경화(왼쪽) 외교부 장관,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일본 수출규제 대응 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해 대응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공=기재부


직접 영향을 받는 품목으로는 일본 의존도가 높은 수치제어장치(CNC) 공작기계와 탄소섬유, 전기차 배터리, 정밀화학 원료, 플라스틱 등이 꼽힌다. 특히 탄소섬유와 CNC 공작기계의 경우 일본 정부가 무기로 전용할 우려가 있는 품목으로 규정한 터라 제재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블랭크마스크 등 반도체 소재의 추가 수출제한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 업계 임원은 “블랭크마스크의 경우 메모리와 비메모리 전반에 걸쳐 사용되는 필수 소재로 호야와 울코트 등의 일본 업체가 과점하고 있다”며 “당장 수출 제한은 없을 것으로 보지만 최악의 경우 해당 소재의 수입에 차질이 발생하면 삼성의 파운드리 생산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이 이번 조치 이후 추가 무역 보복을 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국은 지난 22일 일본의 반발에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종료한 데 이어 독도 등에서 동해 영토수호훈련을 시행한 터다. 다만 정부는 일단 일본이 당장 새로운 보복 조치를 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며 선을 긋고 있다. 일본이 ‘화이트리스트 제외’에 앞서 시행한 수출규제를 두고 일본 정부 내에서도 반도체와 전자제품의 공급망을 훼손해 일본 기업이 역풍을 맞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일본이 파급효과를 우려해 또 다른 카드를 꺼내기보다는 화이트리스트 제외 이후 수출 심사를 깐깐하게 운영하는 방식으로 나올 것”이라며 “우리도 일본 이상의 수출규제 조치를 꺼내지 않으면서 추이를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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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부의 수위 조절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일본의 추가 보복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통상당국은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거부한 신일철주금 등 일본 기업의 압류 자산이 현금화하는 시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해당 자산이 경매를 거쳐 징용 피해자들에게 지급되면 일본 정부가 강하게 반발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정부는 오는 10월 즈음 현금화 조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고 일본의 보복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있다. 일본은 관세 인상, 송금 규제나 한국인에 대한 비자 발급 기준 강화 등의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의 국내 여신 회수 카드를 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 통상 전문가는 “일본 기업 자산 현금화가 이뤄지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강’을 건너는 셈”이라며 “당장 일본의 추가 보복이 없을 것이라며 팔짱 낄 게 아니라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정부 내에서도 자산 현금화 이전에 별도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는 10월 예고된 일왕 즉위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일왕 즉위식은 각국 정상급 인사들이 모이는 자리인 만큼 양자회담을 갖는 것보다 부담이 덜할 것”이라며 “일본의 국가적인 잔칫날인 만큼 우리가 어느 정도 성의를 보인다면 해빙 무드가 조성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김우보기자 이상훈·양철민기자ubo@sedaily.com

김우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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