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동십자각] 은행의 미래

서은영 금융부 차장




글로벌 컨설팅 그룹 보스턴글로벌이 최근 펴낸 ‘디지털 잠식에 대비한 은행들(Banks Brace for a New Wave of Digital Disruption)’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2025년 영국 런던에 사는 35세 기업 재무 담당자 막시밀리안의 이야기로 서두를 연다. 그에게 은행은 스마트폰 속에 있다. 수년째 은행 지점을 방문해본 적도 없다. 그의 직장 역시 구글의 기업 서비스를 통해 디지털 캐시로 거래한다. 구글과 제휴한 전 세계 은행들이 구글의 현금 관리 서비스를 표준으로 삼아 기술을 개발한다. 불과 6년 후의 미래를 상상한 이 이야기에 우리가 알고 있는 금융회사의 이름은 단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다.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의 하청업자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국내 은행은 물론 전 세계 은행들이 고객 손바닥 안에 자리 잡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다. 먼 미래가 아닌 5년 후, 10년 후에도 고객 곁에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사투다. 하지만 고객 접점으로는 포털·메신저·상거래 따위로 이미 고객 삶에 깊숙이 침투한 ICT 기업이나 유통 대기업을 따라갈 수 없다. 현시점에서 은행이 빅테크에 앞서는 것은 금융 전문기업이라는 점 하나다.

그런데 잊을 만하면 사고가 터진다. 금융 전문가라는 은행원들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상품을 밀어내기 식으로 팔았다가 대규모 손실 사태가 빚어지기 일쑤다. 우리파워인컴펀드·키코, 그리고 최근의 해외 금리 연동 파생결합상품(DSL·DLF)까지 상품명만 바뀌며 같은 이야기가 도돌이표처럼 반복된다. 하나같이 평판 악화와 브랜드 가치 하락, 고객 이탈로 이어질 수 있는 치명적인 사고들이다.


단기 성과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지배구조와 보상체계, 신용 리스크에만 집중된 리스크 관리체계 등 복합적인 문제가 녹아 있지만 한마디로 단순화하면 결국 금융 전문기업으로서 은행의 역량은 10여년 전보다 나아진 게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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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은행이 판매하는 상품의 구조는 갈수록 복잡해진다. 한 프라이빗뱅커(PB)는 “특정 상품이 인기를 끌면 은행들은 관련 상품을 가져다 진열해야 고객을 빼앗기지 않는다”고 토로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은행도 있다. PB 명가로 꼽히는 씨티은행은 세무 상담 외에는 부동산 컨설팅을 일절 하지 않는다. 은행의 전문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PB센터에서는 한 명의 고객을 팀 단위로 관리한다. 각 팀은 상품·외환·보험 분야의 PB 3명과 자산 및 시장 배분 전문가인 포트폴리오 카운슬러로 이뤄져 있다. 글로벌 투자전문위원회에서 모델 포트폴리오를 만들면 고객 관리를 전담하는 PB팀은 이를 기반으로 고객의 투자성향과 장단기 투자목표에 맞게 투자전략을 짠다. 단기 수익률을 좇거나 특정 상품을 밀어내기 식으로 판매할 수 없는 구조다. 물론 씨티은행 고객 중에서도 손실을 입는 고객은 있을 것이다. 다만 ‘사태(沙汰)’라고 명명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

고객의 신뢰를 저버린 은행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기본을 갖추지 않은 은행이 ICT 기업을 능가하는 기술을 갖춘다고 한들 미래 고객들의 손바닥 위에 살아 남을 리 만무하다.
supia927@sedaily.com

서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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