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대한민국 엄마를 응원해] "생계조차 힘들었지만 곳곳 온정 가득…아이 잘 키워 보답해야죠"

■ 한부모가정 수기공모 장려상 - 김미영씨 '많은 분들께 감사합니다'

출산 전 아이 아빠 연락두절 막막했지만

주민센터 직원들 덕 집·생활비 지원 받고

집주인 할머니는 친정 엄마처럼 대해줘

'미혼모 자립 공동체' 만드는 것이 꿈

한부모가정



“세영(가명)이를 가졌을 때부터 모든 일을 저 혼자 감당해야 했어요. 하지만 뒤돌아보면 세영이 덕분에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고 그분들 덕분에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본지와 한샘이 공동 주관한 ‘제1회 한부모가정 수기공모전’에서 ‘많은 분들께 감사합니다’라는 편지로 장려상을 수상한 김미영(46)씨는 6일 서울경제와 만나 딸아이와 자신이 자립을 꿈꿀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가난한 일상 속에서 길고 짙은 외로움이 이어졌지만 김씨는 딸을 키워온 5년의 시간 동안 자신에게 향했던 온정을 잊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세영이의 생부는 김씨가 출산하기 두 달 전에 “해외로 사업하러 가겠다”는 말을 남긴 후 연락이 두절됐다. 가난이 이유였다. 김씨는 수원에 위치한 자취방에 살았다. 편의점에서 오전7시부터 오후5시까지 일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이런 김씨를 보고 세영이의 아버지는 “이런 식으로 출발하기 싫다”는 무책임한 말을 남기고 해외로 떠나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김씨는 아이를 포기할 수 없었다. 김씨 자신도 부모가 이혼하면서 어머니와 생이별을 했던 쓰라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죽어도 아이를 버릴 수 없었다”는 김씨는 “부모라면 어떻게든 아이랑 살 방도를 마련해야 하는 거고 살다 보면 방법이 생길 거라고 믿었다”고 말했다.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고 했던가. 배가 남산만큼 부른 임신 9개월 차에 무작정 주민센터 사회복지과에 찾아가 “선생님 저를 도와주세요. 아이 아버지에게 연락이 닿지 않아요”라며 도움을 요청했다.

동사무소 직원들은 급히 김씨를 의자에 앉히고 물을 주며 진정시켰다. 이어 구청과 시청에 “김씨를 사례관리대상자로 둘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알아봐 달라”며 계속 전화를 돌렸다. 다행히도 사회복지과 직원들은 “복지법이 바뀌어 법적 부양의무 절차가 간소화된다”며 “아이를 먼저 출산하고 오면 기초생활수급을 받을 수 있게끔 하겠다”고 약속했다. 김씨에게는 한 줄기 빛과 같은 말이었다.

김미영 씨가 2015년 당시 찍은 세영이의 발도장./사진제공=김미영씨김미영 씨가 2015년 당시 찍은 세영이의 발도장./사진제공=김미영씨


지난 2015년 세영이를 만난 후 매달 기초생활수급비 78만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주민센터의 도움을 받아 보건복지부에서 기저귀도 받아 쓸 수 있게 되면서 기저귀값 걱정도 덜었다. 사회복지과 직원들은 김씨가 만난 첫 번째 은인이었다.


하지만 먹고 사는 게 힘들었던 김씨로서는 산후조리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아이를 낳은 달에 월세를 내니 통장에는 30만원만 남았다. 동네 보건소에서 보내주는 산후조리사에게 점심값을 주기에도 벅찬 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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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그에게 도움을 준 두 번째 은인은 집주인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우연히 아기 울음소리를 듣고 김씨가 살던 집에 들어왔다가 세영이를 마주쳤다고 한다. 비록 2011년부터 쭉 살던 집이었지만 할머니에게 출산 사실을 말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그 자리에서 곧바로 아이를 안아보며 “그동안 힘들었을 텐데 얘기라도 하지 그랬냐”면서 따뜻한 말을 건넸다.

이후 할머니는 김씨 집에 들러 분유·기저귀·반찬·간식 등을 살뜰히 챙겨줬다. 늦은 밤 울음소리가 들리면 혹여나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닌지 조용히 문 앞까지 왔다가 울음소리가 그치면 쓱 돌아가고는 했다. 친정어머니한테도 받아보지 못한 따뜻한 배려였다.

이듬해인 김씨는 2016년 보증금 70만원에 월세 7만원만 내면 되는 집을 구하게 돼 자취방을 떠나게 됐다. 김씨는 당시 할머니가 한 말이 지금도 가슴속에 남는다고 했다. “나한테도 자식이 둘이나 있어. 아들한테도 손자가 둘이고 딸한테는 손녀가 둘이 있거든. 나에게 다섯 번째 손녀를 만날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 김씨는 “그분은 제 마음속에서는 친정어머니나 마찬가지”라며 “지금도 힘들 땐 제일 먼저 생각난다”고 말했다.

김씨가 집을 옮길 수 있게 도와준 사람들은 주민센터 직원들이었다. 김씨에게 “여성가족부에서 진행하는 주거지원 사업이 있는데 한번 살펴보라”며 권유했던 것. 덕분에 김씨는 쾌적한 환경에서 세영이를 키울 수 있게 됐다. 직원들은 공동 모금까지 하며 김씨의 밑천을 보탰다. 이들의 도움은 김씨가 세영이의 육아에 몰두할 수 있는 소중한 토대가 됐다. 김씨는 시간이 있을 때마다 세영이를 데리고 구립도서관에 가서 함께 책을 읽거나 시에서 진행하는 문화행사에 참여해 ‘견문’을 키워주고 있다.

“비록 먼 곳까지 갈 수는 없지만 아이와 함께 나들이를 떠나면 엄마인 저도 육아로 지친 마음을 내려놓고는 해요. 푸른 풀밭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엄마, 나무예요’ 혹은 ‘엄마 노란색 꽃이에요. 엄청 예쁘죠’라며 활짝 웃는 딸아이의 얼굴을 보면 모든 시름이 사라져요.”

김씨의 꿈은 다른 한부모가정 어머니들과 함께 공방을 만들어 자립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최근에는 서울 서초구에 자리한 대한사회복지회에 방문하기도 했다. 이곳에 개설된 미혼모 자립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비누 등을 제작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다. 그는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통해 내 지역 내에서 엄마들과 함께 꾸려나갈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을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그가 가난을 벗어나 자립을 꿈꿀 수 있게 해준 인연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절대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김씨는 “예상치도 못했던 곳에서 많은 분들의 정성 어린 관심과 사랑으로 아이가 큰 병 없이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며 “이분들에게 세영이를 잘 키우는 것으로 보답하고 싶다”고 말했다.


심우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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