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론 제기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북한을 향해 조속한 협상 재개를 촉구하고 나선 것은 미국 조야에서 커지고 있는 ‘트럼프식’ 대북정책에 대한 회의론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6·30 판문점 회동’ 당시 약속에도 불구하고 북미협상이 두 달이 훨씬 넘도록 교착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과 행정부 내에서조차 대북정책 실패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점증하고 있어서다.
이에 비건 대표가 일종의 충격요법 차원에서 북한은 물론 중국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한일 핵무장론을 끄집어낸 것이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북한 비핵화와 체제 안전 보장을 연계하는 등 협상 촉구를 위한 유화 메시지를 보냈다. 북미협상 지연이 장기화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은 물론 동북아 지역에서 미국의 위상에도 부정적 영향이 예상되는 만큼 미국이 북한과 중국을 향해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흔드는 형국이다.
비건 대표는 6일(현지시간) 모교인 미 미시간대 강연 도중 북한 문제를 언급했다. 비건 대표는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과의 대화 한 대목을 소개하며 “키신저 박사는 우리가 오늘날 북한의 핵무기 제거를 위해 일하고 있으나 이런 노력이 실패하면 이후에는 아시아 지역의 핵확산 도전에 대응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그는 “실패에는 늘 결과가 따른다”며 “국제사회가 이 일(북한 비핵화)에 실패하면 북한이 아시아에서 마지막 핵보유국이 아닐 것이라는 키신저 박사의 말이 맞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북한을 향해 협상 복귀를 촉구하는 동시에 한국과 일본 등의 핵무장에 반대하는 중국을 향해서도 적극적인 역할을 압박한 것으로 해석된다.
최근 북한이 협상의 걸림돌로 지목한 폼페이오 장관도 북한을 향해 목소리를 냈다. 그는 김 위원장이 비핵화를 약속했다는 점을 다시 강조하면서 “북한에 안전과 평화·번영을 보장하는 일련의 결과를 위해 북한 팀과 협상하는 데 매우 전념하고 있다”며 협상 의지를 거듭 밝혔다.
하지만 트럼프 대북 라인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워싱턴의 기대감은 낮아 보인다. 척 슈머 원내대표 등 민주당 상원의원들은 트럼프의 대북 접근 방식을 비난하는 공개 서한을 냈다. 워싱턴에서는 이달 말 열리는 유엔총회에서 미국 정부가 북한을 향해 공개적으로 강경 메시지를 내는 등 다시 압박 모드로 전환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조지프 버뮤데즈 전략국제연구소(CSIS) 연구원은 워싱턴포스트(WP)에 “북한의 탄도 위협은 현재 엄중하고, 또 증가하고 있다”며 “미국은 동맹인 일본과 한국을 위해서도 (탄도 위협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