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병으로 돌아가신 선친의 뒤를 이어 33세의 나이에 대표가 됐다. 녹록지 않았다. 빚을 내 만든 공장이 화재로 한순간에 사라지기도 했고 외환위기 때문에 부도 직전에 겨우 살아나기도 했다. 윤성태(55·사진) 휴온스글로벌 부회장은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22년을 돌이켜보며 “생존을 위해 아침부터 밤까지 회사만 생각했다”고 밝혔다.
위기는 계속 이어졌다. 지난 2002년, 월드컵의 열기가 뜨거웠던 무렵 아산병원에서 사고가 터졌다. 염화칼슘 일부가 생리식염수에 혼입됐다. 이 때문에 식품의약품안전청(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회수 처분까지 받았다. 윤 부회장은 당시가 가장 힘들었으며 제약회사는 첫째도 둘째도 제품의 품질이라는 것을 가슴 깊이 새긴 순간이었다고 밝혔다.
“30대 후반이었는데, 고비를 잘 넘기고 신제품을 개발하며 잘된다고 생각하니까 무서운 줄 모르고 달려나갔습니다. 그런데 제품에서 불량이 나오자 팔려나갔던 모든 제품을 회수해야 하는데다 식약청 조사도 받게 됐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제 자신을 돌이켜보게 되더라고요. 그동안 마케팅 전략만 생각했는데 품질에서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윤 회장은 이후 뼈를 깎는 개혁에 들어갔다. 전 직원을 재교육하고 관련 시스템도 바꿨다. 공장장과 품질본부장도 새로 임명했다. 회사에서 만들어진 모든 제품을 직접 맞고 먹으며 검증했다. 이른바 ‘1호 임상맨’이 된 것이다. 윤 부회장은 지금도 휴온스에서 개발하는 건강기능식품 후보물질들을 직접 섭취해본다. 얼마 전 국내에 출시한 보툴리눔 톡신 제제 ‘리즈톡스’도 맞았다.
윤 부회장은 회사를 운영한 20년간 가장 기뻤던 순간으로 코스닥 상장을 꼽았다. 상장을 통해 유입된 자금으로 은행 대출 없이 제천에 공장을 지었고 회사가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윤 부회장은 “대출 때문에 회사가 망할 뻔했던 만큼 한 해 매출보다 더 많은 비용을 들여 공장을 짓기란 쉽지 않았는데 상장으로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며 “(코스닥 상장을 했던) 2006년 당시에는 정보기술(IT) 버블 여파로 상장이 쉽지 않았는데 그런 만큼 코스닥 상장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기분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전했다.
휴온스는 오픈 이노베이션에 가장 적극적인 제약 회사로도 꼽힌다. 회사 내 오픈 이노베이션실과 사업개발실을 꾸려 한 해 5~10건씩 기술을 도입해온다. 가능성이 있는 회사라면 투자도 아끼지 않는다. 성과도 많다. 최근 국내에 출시한 보툴리눔 톡신 제제 ‘리즈톡스’ 역시 오픈 이노베이션의 산물이다. 휴메딕스를 인수하며 미용 시장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윤 회장은 자연스럽게 보툴리눔 톡신 제제 개발에 나서게 됐다고 밝혔다.
“사실 처음에는 보툴리눔 톡신 제제 시장에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굳이 왜 해야 하나’ 생각했지요. 그런데 휴메딕스를 인수하고 미용 시장에 뛰어들어 필러를 직접 판매하다 보니 보툴리눔 톡신 제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분석을 해보니 이 시장이 팽창할 가능성이 매우 높더라고요. 하루가 다르게 치료질환을 추가하고 있는데다 주사제를 전문으로 하는 휴온스의 방향과도 맞았습니다.”
윤 부회장의 예측은 정확했다. 글로벌 제약사인 애브비가 보툴리눔 톡신 제제 1위 업체인 엘러간을 인수하며 공격적으로 시장 확장에 나선 것이다. 물론 보툴리눔 톡신 시장에서 휴온스는 후발주자다. 하지만 식약처 임상1·2·3상을 거치며 입증된 안전성은 ‘리즈톡스’의 가장 큰 무기다. 윤 부회장의 다음 목표는 ‘리즈톡스’의 미국 진출이다. 이미 두 곳의 업체와 미국 진출을 위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윤 부회장은 귀띔했다.
최근 소비자들의 관심이 부쩍 늘어난 건강기능식품 분야에도 뛰어들었다. 남아프리카의 허니부시 분말에서 추출해 피부건강 회복에 도움을 주는 ‘이너셋 허니부쉬’를 출시했고 갱년기 여성에게 효과가 좋은 프로바이오틱스 건강기능식품 개발도 막바지 단계다. 아울러 ‘차조기’를 활용해 수면장애를 개선할 수 있는 제품도 아주대에서 기술을 도입했다.
물론 휴온스의 최종 목표 역시 다른 제약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혁신신약 개발이다. 하지만 무작정 파이프라인에 ‘올인’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는 게 윤 부회장의 지론이다. 신약 개발에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만큼 자금을 투여할 수 있는 매출구조를 구축하는 게 먼저라는 의미다. 윤 부회장은 “신약 개발에 실패했을 때 피해는 저뿐 아니라 1,400명의 임직원 모두가 함께 받게 된다”며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신약 개발을 진행하기 위해 먼저 글로벌 제약사에 버금가는 매출구조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위해 헬스케어 산업 전체에서 매출을 올릴 수 있는 분야, 우리가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찾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제약바이오 산업을 정책적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혔지만 최근 분위기는 좋지 않다. 잇따른 기술수출계약 파기와 신약 개발 실패, 품목허가 취소 등으로 업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한국의 신약 개발 잠재력은 분명히 있다는 게 윤 부회장의 생각이다.
“건강보험을 바탕으로 한 의료 시스템이 잘 구축돼 있고 인적자원이 매우 우수하다는 점은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제약바이오 산업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기초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의대·약대에 가고 있지 않습니까. 이들 중 신약 개발에 나서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는데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데이터베이스가 방대한 만큼 부가가치가 높은 신약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윤 부회장은 특히 정부의 역할이 가장 필요할 때라고 말했다. 신약 개발은 연구개발(R&D)에 천문학적 비용이 필요한 만큼 신약개발단·항암제개발단 등의 지원체제가 더욱 강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 우리나라는 전자·조선·철강 산업 등 정부의 강력한 지원으로 성과를 얻어냈던 사례가 많은 만큼 제약바이오 산업 역시 정부의 확고한 의지와 지원으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윤 부회장은 지원만 받고 성과를 내지 못하는 도덕적 해이를 경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직 우리나라 제약바이오 산업의 기반이 약한 만큼 실패는 당연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실패하게 된 과정입니다. 법적·도덕적 문제가 있던 기업에 대한 처벌은 필요합니다. 전적으로 정부의 지원에만 의존하면 도덕적 해이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해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된 기업에 대한 지원은 이어져야 합니다.”
윤 부회장은 2009년 부회장에 취임하고 10년간 승진을 하고 있지 않다. 부회장직이 실무를 챙기며 빠른 결정을 하는 데 더 효율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언제쯤 승진할 예정이냐”는 질문에 윤 부회장은 웃으며 답했다. “100세 시대라는데 아직 60세도 안 된 만큼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평소 디테일에 강해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그러려면 회장보다는 부회장이 낫지 않을까요.”
/판교=우영탁기자 tak@sedaily.com
He is… △1964년 충남 아산 △1987년 한양대 산업공학과 △1989~1992년 한국IBM △1992년 광명약품공업 대리 △1997년 광명약품공업 대표 △1999년 광명제약 설립(재창업) △2003년 휴온스로 사명 변경 △2009년 휴온스글로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