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통일·외교·안보

"9·19 군사합의 토대부터 뜯어고쳐 검증 담보…군사공동위 가동해야"

[9·19 남북군사합의 1년…고조되는 안보위기론]

■서경펠로 긴급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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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무엇보다 북한이 군사 문제를 논의할 남북군사공동위원회에 불참하는 것은 군비통제를 위해 남측과 신뢰를 구축할 의지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만큼 9·19군사합의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패한 유럽의 군비통제 역사를 돌아봐도 군사회담 제도화와 직통전화 개설 등 접촉을 통한 신뢰구축 절차가 담보되지 못했다. 지난 1975년 미국을 포함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소련 주도의 바르샤바조약기구(WTO) 회원국 등은 유럽에서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헬싱키협약을 맺었지만 신뢰구축에 실패했고 합의는 휴지 조각이 돼버렸다.


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안보전략연구실장은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관련해 남북 소통채널 부재를 아쉬워하며 “제일 안타까운 점은 군사공동위를 만들기로 했고 거기에 많은 것을 위임해놓은 상황”이라며 “남북 간 군사적 문제에서 이견이 생기면 거기서 논의하도록 해 군사공동위가 중요한 기제인데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은 굉장히 안타깝다”고 밝혔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도 “북한은 자기들이 유리한 것만 지키고 있다. 추가 협상도 하지 않고 GP 철거도 전체 GP 철거로 확산돼야 하는데 하지 않고 있다”며 “군사공동위 구성 합의도 하지 않고 한국의 감시정찰 전력만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판문점회담 부속합의서로서 군사합의서는 취지를 달성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북한 신형 미사일의 사정거리가 남한 전역에 이르는 점을 고려할 때 GP 철수만으로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할 수 없다는 문제도 지적됐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9·19합의 이후 북한이 열번째 미사일 및 방사포를 발사했는데 청와대 입장에서는 위반이 아니라고 보지만 실질적인 군사합의 위반”이라며 “남북 군사합의는 사실상 사문화됐다. 비무장지대에서 GP를 철수한다고 해도 미사일이 날아가는 것에 비하면 조족지혈이고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고 혹평했다.

9·19는 투명성 훼손 깜깜이 합의

무력시위 등 중요 사안 논의하는

군사공동위 개최 의무화 필요

군비 합의 스톡홀름 협약이 교훈


남북 군사합의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의 가장 큰 문제점은 남북 간 신뢰구축을 위한 검증체제가 확보되지 않았다는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군사 신뢰 구축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서로가 서로를 잘 들여다볼 수 있게 허용하는 것인데, 이번 9·19합의는 반대로 서로 보지 말자고 감추는 것이라 투명성이 더 훼손됐다”며 “상대편을 더 볼 수 없어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다. 긴장관계에 있는 서로 다른 두 세력이 서로 문을 열어야 하는데 남북이 오히려 반대로 돼 있어 ‘깜깜이’ 합의”라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합의의 투명성과 소통을 강화해 검증체제를 확고히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유럽에서 군사적으로 의미와 구속력을 가진 군비통제 합의 사례로는 스톡홀름협약을 꼽을 수 있다. 선언적 조치만으로는 구속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헬싱키협약의 교훈으로 유럽은 접촉을 통한 소통체제를 강화해 실효성 있는 검증체제를 1986년 스톡홀름협약에서 만들었다. 1만3,000명 이상의 병력과 300대 이상의 전차가 동원되는 군사훈련을 42일 전에 통보할 것을 의무화했으며, 통보국가는 매년 세 차례 현장사찰단을 초청하도록 했다. 이처럼 상호 접촉과 검증체제 확립을 통한 신뢰 구축의 결과 유럽은 3차 세계대전의 위기를 극복하고 탈냉전의 역사를 이뤄냈다. 박 교수는 “현재의 군사합의는 수정 또는 개정이 필요하다”며 “국방부도 하자고 했는데, 1조 1항 무력시위 및 무력증강, 연합훈련 문제 등 중요 사안들을 군사공동위 통해 하기로 했지만 이행되지 않고 있다. 군사공동위 개최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일각에서는 9·19합의를 통한 한반도 긴장완화의 최종 목적이 북한의 비핵화에 있는 만큼 합의 개정이나 파기보다 최근 급물살을 타고 있는 북미협상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지난해 9월 남북 정상 간 군사합의는 북한의 비핵화 진전 상황을 전제로 성사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최용환 실장은 “9·19합의 파기 논란은 비핵화와 연관된 것 같다”며 “최악의 경우 실무협상이 깨지고 내년 신년사에서 김정은이 ‘새로운 길로 갈 것’이라고 하면 (비핵화 논의가) 통째로 다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북미가 실무협상을 재개한다고 하니 모멘텀을 이어갈 것 같기는 한데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북미대화 진전에 따른 한반도 긴장완화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견해도 제기됐다. 양무진 북한대학원 교수는 “북미대화가 잘되면 그다음에 남북대화가 열릴 것이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한반도 긴장완화와 관련된 군사 분야 합의서 이행 문제, 다시 말해 군사공동위 구성 등의 문제를 중심으로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관측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9·19합의 파기는 비핵화 협상을 깨자는 소리와 똑같은 것”이라며 “이런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기 때문에 비핵화 협상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과거에 작은 총격사건만 일어나도 모든 남북관계가 단절됐는데 그보다 더 예민한 비핵화 협상을 하는 데 우발적 충돌을 막을 수 있는 장치가 9·19합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북미협상 난항으로 판 깨질 땐

한미동맹 강화해 압박 동참해야

다만 일각에서는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을 보이지 않으며 재래식 무기와 핵 무력 증강에 나설 경우 9·19합의를 파기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북한이 합의를 지키지 않고 중대 위협을 가하며 핵을 포기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우리도 중대결정을 해야 한다”며 “북한이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고 핵 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비핵화의 판을 깨는 행동을 보이면 9·19합의 파기 등 중대한 결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북한의 중대위협으로 9·19합의가 파기될 경우에 대비해 한국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으로 흔들리는 한미동맹을 공고히 해야 한다는 의견도 뒤따랐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파기될 경우 미국의 대북정책에 맞춰 강한 대북 압박에 동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 대표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대화에 나선 동기가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 제재에 있었다는 점을 재차 상기시켰다.

지소미아 종료 결정 등 동북아에서 미국의 국익과 직결된 사안에 대해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컸다. 박원곤 교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기행이 있다고 하더라도 안보를 지키려면 한미공조를 전반적으로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는다고 본다”며 “그럼에도 고민되는 부분은 국제사회가 빠르게 변화하고 우리가 준비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이 한반도 문제에서 발을 뺄 경우 우리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이다. 모든 가능성을 열고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지난 6일(현지시간) 한일 핵무장론 검토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미 조야와 국내에서 파장이 일고 있는 가운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미국과의 동맹이 흔들리고 북한이 핵 무력 증강의 길로 들어설 경우에 대비해 한국도 핵무장을 준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문성묵 센터장은 “대화를 통한 북한 핵 폐기에 실패한다면, 핵을 가진 북한에 대해 핵무기가 없는 우리는 어떻게 이를 억제할 수 있겠느냐”며 “미국이 확장억제나 핵우산 등 전략자산을 제공한다는 보장이 있으면 좋겠지만 트럼프 대통령 같은 불확실성이 큰 지도자가 있어 불안감이 크다”고 짚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6·25전쟁 이후 혈맹관계를 유지해온 한미동맹을 비즈니스 관계로 격하하는 발언을 잇달아 쏟아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에도 미국이 부유한 나라들을 방어하는데 그들은 대가를 거의 치르지 않는다고 강조한 뒤 “때때로 우리 동맹이 미국을 더욱 나쁘게 대한다”며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문 센터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 있다고 보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에게는 확실한 약속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예를 들어 유럽 핵 공유협정처럼 우리도 핵 공유협정을 통해 확실한 억제장치를 만들어야 하는데 지금은 안전보장의 수단이 없다”며 “연합훈련을 줄이고 전략자산도 축소하고 확장억제도 되지 않는다면 우리 안보를 지키기 위해서는 핵무장이 불가피한 선택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우인·양지윤·김인엽기자 wipark@sedaily.com

박우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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