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국적을 지닌 한국인 남성은 20대 초반에 선택의 기로에 선다. 병역의무를 이행할지 여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병역을 피하기 위해 한국 국적을 포기, 미국 국적을 취득하면서 17년째 입국을 거부당하고 있는 스티브 유(한국명 유승준) 사례에서 보듯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인생행로가 크게 달라진다. 군대에 가기 싫어 한국 국적을 포기하는 이들도 적지 않지만 굳이 외국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포기하면서까지 입대를 선택하는 이들도 있다.
리쓰엉깐 주한베트남관광청 관광대사는 두 아들과 딸을 두고 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리 대사가 지난 1992년 한·베트남 수교로 베트남 국적을 회복하면서 자녀들도 자연스레 양국 국적을 모두 지닌 복수국적자가 됐다. 리 대사의 아들들은 베트남에서 성장했고 현지 대학을 다녔지만 한국군에 입대했다. 리 대사는 “5년 전 큰아들이 육군에 입대해 무사히 전역했고 얼마 전 둘째 아들이 군대에 갔다”며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으니 당연히 군대를 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리 대사 역시 1982년 육군에 입대해 병역의무를 이행했다.
아들들의 복수국적 취득 과정에 편법이 없었던 점을 감안하면 한국군에 입대하지 않는다고 해도 지탄 받을 일은 아니다.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베트남 국민으로 살아도 되지만 오랜 세월 한반도에 터전을 잡고 살아온 가문의 역사와 전통을 생각하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결정이었다.
아들을 군대에 보낼 때 고민이나 걱정은 없었느냐는 질문에 리 대사는 “아들 둘 다 자원입대를 했는데 어릴 때부터 군대는 당연히 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며 “군대를 보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없었고 걱정이라면 다른 부모들처럼 건강하게 생활하고 전역하기를 바라는 마음과 염려 정도였다”고 전했다.
자신이 병역을 기피했거나 자식을 군대에 보내지 않은 고관대작들이 즐비한 상황에서 아들들을 군대에 보낸 리 대사의 처신은 단연 돋보이지만 정작 본인은 귀감이 될 만한 일은 아니라며 말을 아꼈다. 그는 “한국 국적을 지닌 남성이니 군대에 갔을 뿐 그리 대단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나라를 지킨다는 자부심으로 열심히 군생활을 하고 있는 둘째가 몸 건강히 전역했으면 하고 바랄 뿐”이라고 진한 부정(父情)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