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26일 오전(한국시간) 한국정부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해 “일방적으로 (종료가) 통보돼 매우 유감”이라고 밝혔다.
아베 총리가 한일 지소미아 종료 결정이 안보상의 이유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전략물자 수출관리 우대국 목록)에서 제외한 데 따른 것임에도 모든 책임을 한국 정부에 돌리면서 국제 여론전에 열을 올렸다.
아베 총리는 이날 뉴욕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지소미아 종료 결정과 관련 “한일 관계가 안보 분야에 영향을 줘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고 교도통신이 전했다.
아베 총리는 또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강화 조치가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을 포함한 자유무역의 틀과 “완전히 일치한다”고 억지주장을 펼쳤다. 그는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가) 다른 나라와의 무역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자유무역 원칙에 어긋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앞서 일본은 지난 7월 고순도 불화수소 등 반도체 핵심 소재 3개 품목을 한국으로 수출할 때 건별로 허가를 받도록 하는 방식으로 수출 규제를 시작한 데 이어 한국을 화이트리스에서도 제외해 주요 전략 물자의 한국 수출을 까다롭게 만들었다.
외교가에서는 아베 내각의 이 같은 조치가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인 만큼 WTO 협정 위반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는 지난 11일 부당한 경제적 보복 조치를 당했다며 일본을 WTO에 제소하는 절차를 밟고 있고, 일본 정부는 지난 20일 당사국 간의 첫 단계 분쟁해결 수단인 양자 협의에 응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미국 백악관은 25일(현지시간) 아베 총리의 기자회견 전 열린 미일 정상회담 보도자료를 내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한미일 간 3자 안보협력의 중요성을 언급했다”고 밝혔다.
미일 정상이 언급했다는 한미일 3자 안보협력은 지난달 있었던 한국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은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한 강한 우려와 실망을 공개적으로 표명해 온 바 있다. 미 조야에서는 한일 지소미아 종료가 동북아에서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 만큼 한일 갈등을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총리와 만나 이 같은 미국의 우려를 전한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한일갈등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도 한일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고, 뒤이어 열린 미일 정상회담에서도 한일갈등을 직접 거론하지 않았다.
교도통신은 아베 총리가 트럼프 미 대통령과 회담한 자리에서 한일 관계 악화의 배경이 된 징용 피해자 소송 문제 등에 대한 일본 정부의 기본적인 입장을 설명했다고 보도했다. 아베 총리가 징용 소송에 따른 한일청구권협정 위반 상태를 방치하고 있다며 한국 정부의 책임 문제를 거론한 것으로 보인다고 교도통신은 전했다.
아베 총리가 한국정부의 징용판결 선(先) 해결이라는 강경론을 유지하면서 26일(현지시간) 오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릴 것으로 보이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 간의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도 먹구름이 끼고 있다. 회담에서는 일본의 한국 수출규제와 한일 지소미아, 일왕 즉위식 특사 파견 문제 등이 논의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