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한반도24시] 트럼프-김정은 직접 만남이 화근이다

홍관희 성균관대 초빙교수·정치외교학

즉흥적인 트럼프 협상성과도 빈약

김정은 교언영색·아부 전술은 성공

美 대북정책 급변은 文정부 영향

주한미군 철수 현실화될까 우려

홍관희 교수홍관희 교수



최근 잇단 베스트셀러 출간으로 주목받는 언론인 작가 맬컴 글래드웰은 신간 ‘낯선 사람과 이야기하기(Talking to Strangers)’에서 독재자와의 직접 만남이 자칫 화를 자초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2차 대전 직전인 지난 1938년 9월 네빌 체임벌린 영국 수상이 사전 지식 없이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를 직접 대면한 후 히틀러의 카리스마에 압도당해 그의 속마음을 오판한 것이 대표적 사례라는 것이다.

체임벌린은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데텐만 접수하면 더 이상 영토를 요구하지 않겠다는 히틀러의 거짓 약속을 믿고 독일군의 체코 침공을 방임하는 패착을 범했다. 히틀러와 뮌헨 협정을 체결한 후 런던 공항에 도착한 체임벌린은 “우리 시대에 평화가 찾아왔다”며 “전 유럽의 평화를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그는 불과 1년 후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목도해야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 김정일과 평양에서 ‘6·15공동선언’에 합의한 후 귀경해 “한반도에서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한 것과 거의 판박이다. 이후 김정일은 2005년 방북한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에게 ‘한반도 비핵화가 김일성의 유훈’이라고 언명했으나 모두 거짓이었음이 드러났다. 북한을 오늘날의 핵 강국으로 완성하기 위한 기만극이었던 셈이다.

글래드웰은 히틀러를 한 번도 만난 일이 없던 윈스턴 처칠이 ‘나의 투쟁’을 탐독한 후 오히려 히틀러의 독일민족 중심 인종주의 세계관과 무력에 의한 세계정복 야욕을 정확히 간파했다고 기술했다. 야망을 가진 독재자들은 자기 확신이 강하고 상대를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카리스마가 있어 결코 쉬운 협상 상대가 아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주의자와 협상할 때 반드시 사전에 전략을 세울 것과 신념을 갖고 임하되 특히 민족 감정에 휘둘리지 말라는 엄명을 회담 대표들에게 내렸다. 북한 정권의 실체를 정확히 꿰뚫은 통찰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의 저서 ‘거래의 기술’의 흥행으로 협상 대가(大家)로서의 명성을 얻어 백악관 입성에 성공했으나 대통령이 된 후에는 역설적으로 협상 성과가 빈약하다는 비판을 듣는다. 미 언론들은 그의 협상 스타일이 ‘끼(guts)’ 중심의 즉흥적 성격인 탓에 사전 준비나 전략이 부족하고 특히 국가정보국(DNI) 등 정보기관의 권고를 자주 무시한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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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북한의 6차 핵실험과 잇단 미사일 도발 당시 ‘화염과 분노’로 정면 대응을 천명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이듬해 6월 김정은을 싱가포르에서 처음 만나 한미훈련이 ‘전쟁게임(war game)’이라는 북한의 논리를 수용하며 훈련을 전격 중단시킨 것은 놀라운 반전이었다. 트럼프와의 톱다운 담판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김정은의 교언영색·아부 전술이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되돌아보면 트럼프의 대북정책 급변을 초래한 것은 다름 아닌 문재인 정부였다. 미북 관계를 남북 관계의 마중물이 되게 하겠다면서 북한이 비핵화할 의지가 있는 것처럼 백악관에 왜곡 전달했기 때문이다. 비핵화가 사실상 물 건너간 지금도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비핵화’ 레토릭을 계속하고 있다. 이상주의 ‘희망적 사고’의 전형인가, 아니면 ‘우리민족끼리’에 대한 맹신의 결과인가. 우리 국민은 지금 가중되는 북핵 위협 와중에도 문재인 정부의 지속적인 평화 선동으로 집단적 평화 체면에 빠져 있다. 그러나 국민을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과 ‘1984’에 나오는 ‘개·돼지’ 구성원 정도로 간주한다면 큰 오산이다.

백악관이 언급하지 않았음에도 대북정책의 ‘근본적 전환(transformation)’에 한미가 합의한 것처럼 청와대가 강조하는 이면에 남북 ‘민족공조’를 향한 과도한 욕망이 서려 있음을 본다. 이 상황에서 국방부가 한미동맹을 약화시킬 동북아 다자안보 연구에 나선 것은 규탄받아 마땅하다. 존 햄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소장의 경고대로 워싱턴 정가의 주한미군 철수 주장이 현실화될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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