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활

[CEO&스토리]워런 버핏 꿈꿨지만...경영학도 분석력으로 '밀키트' 뛰어들었죠

■정중교 프레시지 대표

투자자문사 창업, 사회진출했지만

상상했던 투자가치와 괴리감 느껴

美 벤치마킹...성장성 큰 밀키트 개척

'창업→재창업'하며 사업 전략 바꿔

대기업과 손 잡고 업계 1위로 키워

자영업자 대상 B2B사업에도 매진

신공장 짓고 내년엔 1,000곳 공급

정중교 프레시지 대표/오승현기자정중교 프레시지 대표/오승현기자



내로라하는 국내 식품·유통 대기업이 뛰어드는 유망산업이 있다. 손질된 원재료와 레시피가 동봉돼 편리함은 물론 요리하는 즐거움까지 느낄 수 있는 ‘밀키트’다. 현재 한국야쿠르트·GS리테일·이마트·CJ제일제당 등 거대 기업의 차세대 먹거리로 주목받지만 국내 밀키트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기업은 따로 있다. 올해 1,700억원에 달하는 국내 밀키트 시장에서 7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프레시지(Fresh easy)’다. 집밥의 ‘신선함(fresh)’을 라면만큼의 ‘간편함(easy)’으로 전달한다는 목표하에 올해로 3년째 프레시지를 이끌고 있는 정중교(33·사진) 대표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위치한 본사에서 만났다.

◇‘워런 버핏’을 꿈꾼 경영학도…밀키트에 뛰어들다=대학생 시절 정 대표는 식품 산업과는 거리가 먼 투자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관심을 이어가다 보니 졸업 전에 투자자문사를 창업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막상 필드에 나서니 상상하던 투자와 괴리가 느껴졌다. 정 대표는 “대학생 때 배웠던 투자자는 기업과 함께 산업을 바라보고 지원해주는 주체였는데 현실은 주가가 내려가면 팔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면서 “내가 생각하는 투자가 이게 맞는지 창업 3년 차에 많은 고민을 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파견차 베트남을 찾은 정 대표는 ‘터닝포인트’를 맞았다. 현재 베트남 시가총액 1위인 빈그룹이 마트·슈퍼 등 유통 업체를 인수할 때였다. 정 대표는 “현장을 뛰어다니는 현지 기업가들을 보면서 현실을 모르고 풍월을 읊었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고 한국에 와서 창업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식품, 그중에서도 밀키트 시장에 뛰어들게 된 데는 특별한 계기가 없었다. 워런 버핏을 꿈꾼 경영학도답게 계산기를 두드렸고 합리적인 계산을 바탕으로 성장 가능성이 높은 산업군을 발견했다. 정 대표는 밀키트 산업의 미래를 설명할 때도 앞에 놓인 A4용지에 일련의 숫자를 적으며 말했다. 스스로 숫자에 집착하는 ‘넘버 프리크’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국내 소비 시장이 400조원에 달하는데 이 중 전자상거래 시장이 100조원 정도예요. 편리함을 추구하는 소비자들로 인해 e커머스 시장이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죠. 그런데 이런 편리함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이 온라인에서 신선식품을 구매할 때 야채 원물을 구입할까요? 대파를 사서 집에서 썰고 양파를 사와 다듬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봤습니다. 기존의 원물을 사서 조리하는 형태가 아닌 전처리가 된 밀키트가 주목받으리라 예측했죠. 메가 트렌드에 맞는 산업을 만들어가는 게 저의 숙명이자 진정한 투자자라고 생각하고 밀키트 사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거듭된 실패 통해 1위 밀키트社로 우뚝=2016년 1월 정 대표는 미국의 밀키트 회사 ‘블루에이프런’을 벤치마킹하며 프레시지를 창업했다. 하지만 스타트업 규모에 비해 고급인력을 채용하는 등 ‘엇박자’가 나면서 6개월 만에 팀이 해체됐다. “사업을 너무 몰랐다”고 털어놓은 정 대표는 같은 해 6월 재창업에 들어갔다. 가장 큰 변화는 ‘전략’이었다. 스타트업의 한계를 인정하고 밀키트 산업을 키워나갈 수 있는 방법을 고안했다.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타자’고 생각했다.

“재창업 당시까지만 해도 유치된 투자가 전무했어요. 이런 상황에서 밀키트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개척한다는 게 제일 힘들었죠. 마케팅의 핵심은 3초 안에 제품을 어필해 소비자들이 구입하게 만드는 것인데 밀키트에 대한 개념 설명에만 30분이 넘게 걸린 거죠. 밀키트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대기업과 손을 잡아야 한다고 판단했어요. 2017년부터 대기업과 계약하기 위해 PT를 다녔고 같은 해 9월부터 한국야쿠르트의 밀키트를 독점 공급하면서 시장과 함께 성장할 수 있었어요.”

현재 프레시지는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 등 유통 업체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제조업자개발생산(ODM) 형태로 밀키트를 공급하고 있다. 이 같은 형태의 밀키트를 통한 매출이 5%를 차지하며 자체 브랜드 매출은 95%에 달한다. 프레시지의 매출은 2016년 당시 7,000만원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연결기준으로 2,000배 성장한 약 1,400억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어려움도 직면했다. 야채마다 씻는 온도가 다르고 합포장을 할 수 없는 야채도 있었지만 경영학을 전공한 정 대표가 이를 처음부터 파악할 수는 없었다. 프레시지가 지난해 업력이 긴 야채 전처리 전문기업 ‘웰푸드’를 인수한 이유다. 정 대표는 “현재 협력관계인 회사 가운데 시너지가 날 만한 회사는 적극적으로 인수합병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올해는 포천에 있는 유명 갈비 기업을 비롯해 5개 업체를 인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프레시지는 올해 ‘포트폴리오 다변화’에도 방점을 찍었다. “지난해 말 사업계획을 세우면서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은 밀키트 자체가 아니라 음식이라고 판단했어요. 예를 들어 서울식 불고기처럼 어떤 메뉴를 선호하는 것이고 이에 적합한 형태가 밀키트인 것일 뿐이죠. 지난해까지는 밀키트류만 생산했지만 올해 소비자가 원하는 모든 식단을 제공하기 위해 반찬·김치·양념육 등 모든 카테고리에 손을 대기 시작했어요. 집에서 식사하는 모든 경우의 수와 솔루션을 제공하는 업체가 되는 방향으로 재정립한 것이죠.”

◇자영업자에게도 밀키트의 ‘편리함’을=프레시지는 5월부터 밀키트를 자영업자에게 공급하는 B2B 사업에 매진하고 있다. 예컨대 프레시지가 밀키트 형태로 스테이크를 만들어 자영업자가 운영하는 콩나물국밥집에 공급하면 이를 배달 메뉴로 판매하는 것이다. 별도의 재료나 조리기구가 필요 없어 콩나물국밥이 주로 판매되는 점심 시간대 외에도 추가 매출을 올릴 수 있다.

밀키트의 차세대 수익모델을 여기서 찾은 배경을 묻자 정 대표는 국내 외식업의 현주소를 짚었다. “우리나라에 80만명의 자영업자가 있는데 매년 17만8,000명이 망하고 18만3,000명이 새로 생겨나고 있어요. 자영업자는 점점 증가하고 더 많은 소비자가 집에서 식사를 하면서 치열한 경쟁이 펼쳐질 수밖에 없는 구조죠. 그렇기 때문에 자영업자들이 생존하려면 늘어나는 배달 수요를 공략해야 해요. 밀키트를 통해 ‘멀티 카테고리’를 제공하면 자영업자들의 생존을 도울 수 있다고 판단한 이유죠. 이를 위해 프레시지는 포스 데이터를 바탕으로 자영업자들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을 컨설팅하고 있습니다.”

현재 프레시지의 B2B 밀키트를 공급받는 업체는 8월 기준 100개에 달한다. 올해 안에 300개, 내년까지 1,000개 업체가 이용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프레시지는 이 같은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 인천 공장에 더해 용인에 신공장을 짓고 있다. 오는 12월부터 가동에 들어갈 계획이다.

정 대표는 신사업을 적극 알리기 위해 사장님들과 일일이 만나고 있다. 그는 “한 콩나물국밥집의 경우 밀키트를 통해 월 1,500만원의 추가 매출을 올렸는데 이는 본업의 매출을 넘어서는 규모”라면서 “‘프레시지 덕분에 망할 뻔한 가게를 살려냈다’는 사장님들의 말을 들을 때면 사명감이 느껴지고 뿌듯하다”고 말했다.

He is... △1986년 서울 △2005년 백영고등학교 졸업 △2013년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2012~2015년 ㈜더퍼블릭투자홀딩스, ㈜더퍼블릭투자자문 CFO △2016년~ ㈜프레시지 대표이사

허세민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