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고유정(36)이 “전 남편이 자신을 성폭행하려다 우발적으로 일어난 범행”이라며 “저지르지 않은 죄로 처벌받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제주지법 형사2부(정봉기 부장판사)는 30일 오후 201호 법정에서 고씨에 대한 네 번째 공판을 진행했다.
이전 재판에서 어렵게 모두발언 기회를 얻은 고유정은 직접 박성한 8페이지 분량의 의견진술서를 읽었다. 약 10분가량 발언을 이어가며 울먹이기도 했다.
고유정은 “저녁을 먹고 난 후 아이가 수박을 달라고 했고, 수박을 자르려는 순간 이상한 기분에 뒤를 돌아보니 전 남편이 갑자기 제 가슴과 허리를 만졌다”며 “부엌으로 몸을 피했으나 전 남편이 칼을 들고 쫓아왔다”고 말했다.
이어 “(전 남편이) ‘네가 감히 재혼을 해! 혼자만 행복할 수 있냐’며 과격한 행동을 했다”며 “칼이 손에 잡혔고, 눈을 감고 전 남편을 찔렀다. 현관까지 실랑이가 이어졌고, 그 사람은 힘이 빠진 듯 쓰러졌다”고 범행이 우발적이었다고 주장했다.
아이를 재우고 밤새 피를 닦았다는 고유정은 “성폭행과 죽음이라는 순간을 겪고 제정신이 아니었다”며 “미친 짓이었고 반성하고 깊이 뉘우친다”고 말했다.
또 “죽을 생각만 되풀이하다가도 살인자로 남게 될까봐 억울했다”며 “진실을 밝히기 위해 버티고 있다. 내가 저지르지 않은 죄로 처벌받고 싶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전 남편 몸에서 나온 졸피뎀 성분에 대해서는 ‘음식에 넣은 적 없다’고 주장하며 “말도 안되는 것들을 사실인 듯 이야기하는 것 같아 무섭다”고 주장했다.
고유정의 발언이 이어지는 동안 방청석에서는 탄식과 고함이 계속됐다. 유족들은 “고인을 모독하지 마라. 거짓말하지 말라”며 분노했다.
유족 측 변호인은 “고유정의 1인극이다. 증거 없이 유족에게 큰 상처를 줬다”며 “감정관 진술에 따르면 범행 도구가 약품 냄새가 날 정도로 수차례 세척돼 있었다. 이런 점을 보더라도 얼마나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했는지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모두진술 이후 검찰 측은 피해자 혈흔에서 검출된 졸피뎀을 다시 증명하기 위해 대검찰청 감정관에 이어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관 2명을 증인신문했다.
또 “고유정이 경찰에서 진술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 진술을 추가하고 각색한 부분을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며 “졸피뎀이 섞인 카레를 먹이지 않았다고 주장하나 혈흔에서 졸피뎀이 검출되는 등 조사를 통해 허위진술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시신을 훼손한 이유도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부분도 지적했다.
증인으로 나온 국과수 감정관들은 붉은색 무릎담요 외에 분홍색 이불에 묻은 혈흔에서 졸피뎀과 피해자 혈흔을 검출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고유정 측 변호인은 지난 재판과 같이 DNA가 검출된 혈흔의 시료와 독극물 검사를 한 시료가 서로 불일치한다며 검사의 신뢰성을 문제삼았다.
이날 고유정은 현 남편에 대해서도 독설을 퍼부었다. 현 남편은 고유정이 의붓아들을 살해했다고 계속 주장해왔다. 고유정은 “남편은 항상 제게 칠칠맞지 못하다고 타박했고, 혼내거나 때리면서도 ‘네 잘못으로 맞는다’고 했다”며 “현 남편의 비난이 두려워 범행 후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청주에서 의붓아들이 갑작스럽게 숨졌을 당시에도 남편은 제게 ‘너와 아이(전남편의 아들)를 지켜줄 수 없다’고 수차례 말했다”며 “3년이나 함께한 아이를 마치 물건 버리듯 내치려고 했다”는 주장을 폈다.
한편 고유정은 5월 25일 오후 8시 10분부터 9시 50분 사이 제주시 조천읍의 한 펜션에서 전남편 강모 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고씨의 다음 재판은 10월 14일 오후 2시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