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활

[기자의눈] 모든 갑은 惡일까

김보리 생활산업부




“을의 눈물을 닦겠다.” “갑을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하겠다.”

데자뷔다. 시점과 화자를 가리고 봤다면 같은 발언이다. 전자는 김상조 전 공정거래위원장의 2017년 6월14일 취임사고 후자는 지난달 10일 조성욱 신임 공정거래위원장의 취임일성이다.

2013년 5~6월, 남양유업 사원이 대리점주에게 주문하지도 않은 제품 물량을 떠안기고 욕설·폭언을 퍼부은 사건은 갑과 을을 계약상 용어에서 일반명사로 만들었다. ‘갑질’이란 표현이 사회 전반으로 퍼지면서 갑에 눌리는 을의 고통이 재조명됐다.


갑을 논란이 일어난 지 6년, 되물어본다. 모든 갑은 악(惡)일까. 이제 갑을 보는 시선은 세분화돼야 한다. 갑과 갑질을 나누고 또 이를 세분화해 바라봐야 한다. 갑을을 다루는 부처인 공정위조차 연내 업종별 표준계약서를 기존 4개에서 11개로 세분화한다. 업태·업종별로 사정이 너무나 다르다는 점을 반영한 조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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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 기업생멸행정통계에 따르면 2016년 신생기업의 1년 생존율은 가맹본부 소속 법인이 72.5%로 자영업자 64.7%보다 7.8% 높다. 3년 생존율은 법인(50.5%), 개인(40.7%), 5년 법인(37.4%), 개인(27.9%) 순이다. 본부의 노하우 전수로 창업 후 가게를 자영업보다 오래 이어갈 수 있는 순기능이 프랜차이즈에는 분명히 있다.

갑을에 선악 이분법을 갖다 대면 모든 프레임은 잠식된다. 국회 계류 중인 가맹사업법 개정안의 골자는 가맹사업자 단체의 협의요청 시 본부가 이를 거부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제윤경 의원의 발의는 한 발 더 나가 본부가 협의에 응하지 않으면 가맹점의 집단휴업 등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단체행동권은 노사관계에서 성립한다. 본부와 가맹점은 노사가 아닌 계약관계로 전제조차 맞지 않지만 이분법 앞에는 단체행동권 조건조차 무력화된다.

공정위가 업계를 정교하게 바라봐야 한다. 갑의 ‘악질관행’이 문제인 것이지, 갑이 악은 아닌 것이다. 조 위원장은 2003년 ‘기업지배구조 및 수익성’이라는 논문으로 세계 3대 학회지 명예의 전당에 오른 학자다. 그가 포괄적으로 한국 공정거래 근간에 접근할 것으로 기대한다. 공정위가 갑을을 그저 선악의 이분법으로 바라본다면 그것은 ‘쉬운 길’이자 ‘성의 부족’일 수 있다.


김보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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