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을 비준하기 위한 노동관계법 개정안이 실업자ㆍ해고자 및 퇴직 교원의 노조 가입 허용, 사업장 점거 제한 등 핵심내용을 유지한 채 1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그동안 ILO 협약 자체가 노동계의 주장 위주로 반영된 것이라는 경영계의 지속적인 지적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원안을 그대로 통과시켰다. 다만 정부가 올 정기국회 내 협약 비준안과 법 개정안을 모두 처리한다는 목표를 달성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개정 법률안이 노사 모두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있는데다 국회 상황도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가 협약 비준 작업을 서둘게 만들었던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위반과 관련된 전문가 패널은 이달 중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고용노동부는 이날 열린 국무회의에서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조합법·공무원노조법·교원노조법 등 3개 법의 개정안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ILO 핵심협약 중 결사의 자유 관련 87ㆍ98호, 강제노동 관련 29호 등 3개를 비준하기 위해 이와 부딪히는 법 조항을 개정한 것이다. 정부는 비준동의안과 법 개정안이 동시에 국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노력할 방침이다.
이번 개정안 중 노조법의 경우 △실업자ㆍ해고자 노조 가입 허용 △노조 전임자 급여 지급 금지 규정 삭제 △단체협약 유효기간 3년으로 연장 △쟁의 중 사업장 점거 제한 등을 골자로 한다. 다만 실업자ㆍ해고자는 노조 임원을 할 수 없으며 사업장 출입 범위도 제한된다. 노조 전임자의 급여도 현행 타임오프(근로시간면제제도) 한도 내에서만 줄 수 있다. 단협 유효기간 연장과 사업장 점거 제한은 경영계의 요구를 반영한 결과물이다. 또한 교원노조법 개정안은 퇴직교원의 교원노조 가입, 대학 교원의 노조 설립 및 가입을 허용했다. 이에 따르면 해직 교사를 조합원으로 뒀다는 이유로 2013년 법외노조 통보를 받은 전교조의 합법화가 가능하다. 공무원노조법 개정안은 공무원노조 가입을 6급 이하로 제한한 기준을 삭제하고 소방공무원의 노조 가입을 허용했다.
문제는 노동계와 경영계 모두 개정안에 반발한다는 점이다. 경총은 이날 논평을 내 “개정안이 노동계에 편향됐다”며 “실업자ㆍ해고자의 기업별 노조 가입 문제 등이 노조로의 힘 쏠림 현상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사용자에 대한 일방적인 부당노동행위 규제, 대체근로 전면 금지도 반드시 함께 해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민주노총은 개정안에 대해 “최소한의 국제기준조차 미달하는 안으로 ILO 협약 ‘이행 입법’이 아닌 ‘역행 입법’”이라고 주장했다. 한국노총도 성명에서 “내용을 살펴보면 허울뿐인 단결의 자유와 현재보다 후퇴한 단체교섭ㆍ단체행동권으로 차마 국제사회에 내놓기 민망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협약의 비준과 관련 있는 한·EU FTA의 분쟁해결 절차에 따른 전문가 패널은 이달 중 소집될 것으로 보인다. EU는 한국이 한·EU FTA ‘무역과 지속 가능 발전 장(章)’에 규정된 ILO 핵심협약 비준 노력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분쟁해결 절차에 들어갔다. 임서정 고용부 차관은 “원래 지난달 초 패널 구성을 마무리할 예정이었으나 협의가 늦어졌다”며 “패널 보고서는 연말에서 내년 초 사이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패널에서는 협약의 비준 문제와 더불어 국내법 조항 여섯 가지도 논의 대상에 올랐다. 이 중 노조설립신고제도와 단협시정명령제도가 이번 개정안에 포함되지 않아 우리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
/세종=박준호기자 violato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