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젖

유지소 作

0215A38 시로여는수욜





썩은, 썩어가는 사과가 젖을 물리고 있다


하루의 시간도 한 해의 시간도 막바지 능선을 타 넘는

야산 언덕에서

썩은, 썩어가는 사과가

아직 푸른 힘줄이 꿈틀거리는 젖가슴을

반쯤 흙속에 파묻고


한마디 사과도 없이 사과가 다 떠난 사과나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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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를 잊은 입, 잎들이 열꽃을 피우는 사과나무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

병든, 병들었다고 버림받은 사과가

저를 버린 사과나무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

-잘 여문 사과들이 떠나갔구나, 대처로 떠난 뽀얀 동생들처럼. 못나고 병든 사과가 나무 밑에 떨어졌구나, 고향에 남아 농사짓는 새까만 형처럼. 잘난 사과는 잘난 도시로 가고, 못난 사과가 못난 촌구석에 남아서 썩어가는구나. 썩으면서 다음 세상에 젖을 물리는구나. 봄꽃으로 부활하겠구나. 폭신폭신한 그물망 포장재에 싸여 도시로 간 예쁜 사과들은 어떻게 될까. 붉은 뺨과 하얀 속을 다 내어준 채 이빨자국 선명한 사과갈비는 어디로 가서 눈동자처럼 까만 씨앗을 뉘일 수 있을까.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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