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활

[속빈강정 코리아세일페스타]참가기업 5배 늘었는데 매출↓...'억지춘향 쇼핑축제' 되풀이

"정부 독촉 거절할수도 없고..." 기업들 마지못해 참여

美 블프처럼 화끈한 할인상품 없어 소비자도 시큰둥

온라인시대에 오프라인 집중...구시대 마케팅도 문제




“광군제 스타로 떠오르는 순간 브랜드의 운명이 바뀝니다.”

지난주 말 중국 항저우 알리바바 이노베이션센터에서 만난 왕훙미디어그룹 아로니안의 박위 대표는 왕훙 2,000여명과 함께 다음달 11일 열리는 광군제(11월11일 중국 쇼핑축제)를 준비하며 이렇게 말했다. 중국에서 판매하고 있는 패션·화장품·가전 등의 모든 브랜드는 광군제 하루를 위해 달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날 제품이 얼마나 팔리느냐에 따라 적어도 향후 1년간 브랜드 마케팅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실제 화장품 브랜드 바닐라코의 ‘클린 잇 제로’는 2017년 광군제 당일 18억원의 매출을 올려 ‘4.3초당 1개씩 팔리는 클렌징밤’으로 지금껏 그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박 대표는 “광군제는 1년의 성과를 대표하는 대목”이라며 “우리 회사와 거래하는 화장품 기업들은 빠르면 1년 전부터 늦어도 4월부터 광군제를 위한 제품개발에 착수했다”고 전했다.


광군제를 한 달여 앞두고 찾은 중국의 준비 현장은 어느 때보다 분주했다. 업체들이 참여 자체를 저울질하는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인 ‘코리아세일페스타(11월1~22일)’와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민간업체들 위주로 진행되는 중국의 광군제나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와 달리 코세페는 관(官) 주도로 진행되면서 5년째 히트 상품 탄생은커녕 소비자들의 무관심 속에서 ‘그들만의 행사’로 내리막을 걷고 있다.

◇정부와 업체의 ‘동상이몽’=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코세페에는 500개 이상의 업체가 참여한다. 코리아페스타 사무국 관계자는 “아직 신청이 3주나 남아 참여업체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지난해 대비 20% 증가할 것”이라고 전했다. 코세페 참여업체 수는 행사 첫해였던 지난 2015년 92개에서 지난해 451개로 5배가량 증가했다. 정부는 매년 참여업체 수가 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지만 정작 업체들은 참가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아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한 유통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에도 백화점과 마트는 물론 명동 소상공인까지 모두 참여했다”며 “정부가 추진하는 행사에 참여를 거부하기는 쉽지 않다”고 꼬집었다.


게다가 코세페가 가져오는 경제효과가 미미하다는 점도 업체들이 행사 준비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이유로 꼽힌다. 한 대형 백화점 관계자는 “코세페는 아직 자리 잡은 행사로 보지 않아 자체적으로 가을 정기세일에 더 무게를 두고 진행하고 있다”며 “정기세일이 끝나고 나서야 코세페 준비에 나설 것”이라고 전했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도 “아직 코세페 관련 마케팅을 진행하는 것은 없다”면서 “올해도 구색 맞추기식에 그치지 않을까 싶다”고 귀띔했다. 실제 지난해 코세페에 참여한 주요 업체의 매출은 4조2,378억원으로 전년 대비 반 토막 났다. 추석 연휴 기간이 포함되지 않은 게 매출을 깎아내리기는 했지만 2016년의 8조7,217억원과 비교해도 실적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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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처럼 ‘화끈한 할인율’ 없어=코세페가 이처럼 매년 고전을 면치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처럼 ‘화끈한 할인율’을 제공할 수 없는 한국의 유통구조에 있다. 업계에 따르면 코세페와 블랙프라이데이의 할인율은 40∼50%까지 차이가 난다. 이는 국내 백화점 등 유통업체들이 제품을 직접 구매해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제조업체들로부터 수수료만 받고 매장을 빌려주는 형식이어서 할인율을 유통업체 마음대로 조절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비인기 상품에 어중간한 할인율을 적용해 내놓게 되고 이는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매년 할인율을 지적받고 있지만 손해를 보고 판매할 수는 없다”며 “정부의 예산도 업체를 지원하기보다는 대부분 행사 기획과 홍보에 쓰여 문제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에 코세페를 운영하는 정부는 제조업체들을 많이 끌어들이려 하지만 제조업체들은 오히려 코세페보다 중국 광군제나 미국 블랙프라이데이로 눈길을 돌리는 분위기다. 한 국내 의류 제조업체 관계자는 “사실상 코세페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며 “블프 시즌도 한국에서 쇼핑 위크화됐기 때문에 오히려 그때 맞춰서 생산업체와 싼 가격의 원가로 소량만 생산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온라인 ‘광군제’와 달리 오프라인 중심 한계=중국의 광군제가 온라인 중심으로 진행되며 큰 경제효과를 창출하는 것과 달리 코세페는 1941년 미국 정부가 시작한 블랙프라이데이의 초기 버전인 오프라인에 중심을 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지난해 중국 광군제의 경우 24시간 동안 무려 35조원 규모의 물건이 팔려나갔다. 이 같은 매출이 발생할 수 있던 것은 타오바오를 비롯한 알리바바의 여러 온라인 플랫폼이 행사의 주 무대가 됐기 때문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오프라인은 쇼룸이 되고 온라인에서 구매하는 소비문화로 이동하고 있는데 정부의 코세페는 오프라인에서 보여주기식 행사에 매몰돼 있다”며 “온라인 중심으로 온오프라인 경계를 허무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경기침체로 소비심리가 위축된 상황에서 온라인 특가보다 못한 상품으로 코세페를 반복할 경우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과 교수는 “올해는 경기 상황이 그 어느 때보다 최악”이라며 “독특하고 파격적인 행사로 키우지 않고서는 코세페는 흥행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민간업체도 작정하고 행사의 판을 키워야 하지만 관 역시 뒷짐만 지지 말고 적절한 서포트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항저우=심희정 생활산업부장 박민주기자 parkmj@sedaily.com

박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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