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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강희, 무명배우→신스틸러 “20년을 재미있게 발버둥 쳤어요”

[인터뷰] 정강희, 무명배우→신스틸러 “20년을 재미있게 발버둥 쳤어요”

“‘나의 왼발’로 이태원에 휴대폰 가져다 준 배우”


정강희란 배우의 이름은 낯설다. 반면 그의 얼굴은 어디서 많이 본 듯 친숙하다. 실제로 이야기를 나눠보면, 수천가지 매력이 가득한 배우란 걸 알게 된다.

20년 차 무명배우인 정강희는 실제로, 많은 대중들이 자신을 거리에서 마주하면 고개를 갸우뚱 거린다고 했다. 친한 동네 형, 선배 오빠, 이웃 아저씨처럼 느껴져 인사를 하지 않고 지나가기엔 뭔가 걸리는 게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몇 분은 ‘혹시 어디 사세요?’ 라고 물어보기도 했다고. 그럴 경우 정강희는 ‘배우이다’는 말 대신 (사실 그대로)“금호동에 살아요” 라고 말 한다고 한다. 장난끼가 다분한 배우 정강희의 기질을 엿볼 수 있는 일화다.

배우 정강희는 캐릭터 배우의 1인자를 꿈꾼다고 말했다.배우 정강희는 캐릭터 배우의 1인자를 꿈꾼다고 말했다.



최근 SBS 수목드라마 ‘닥터탐정‘에서 ’하팀장‘ 역으로 ‘전천후 매력남’ 역할을 선보인 정강희를 만났다. (실제와는 정 반대인)독실한 크리스천 면모를 뽐내며 ‘암호 해독’ 실마리를 제공하는 가 하면, ‘미세먼지에 미숫가루 타 먹는 소리 하네’ 란 임팩트 있는 말을 남긴 어록장인 겸 ‘닥터탐정’ 내 유일무이한 러브라인을 형성하며 궁금증을 유발한 인물이다.

무명배우에서 신스틸러로 거듭나기까지 무려 20년을 재미있게 발버둥 친 배우 정강희와의 대화는 진솔한 유쾌함이 가득했다.

■ 박준우 감독의 “‘닥터탐정’은 정말 좋은 드라마”

‘닥터탐정’은 정강희가 비중 있는 조연으로 출연한 의미깊은 드라마이다. 정강희는 “제가 공식적인 조연으로 출연한 점도 의미 있지만, 사회적인 문제를 제대로 짚어 준 정말 좋은 드라마였다고 생각한다”고 종영 소감을 전했다.

극 중 UDC 화학물질팀장 하진학은 원래 대본상에선 재미있는 캐릭터가 아니었다. 어찌보면 그냥 평범한 회사원 역할이다. 하지만 정강희가 투입되면서 극의 숨통을 열어주는 역할로 변모됐다. 정강희는 “극의 양념 역할로서 활약 한 것 같아 좋다”며 웃었다.

“봉태규 배우가 주인공인 작품인데, 봉태규만 잘 끌어간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그 사이 사이 배우들이 잘 끌어가면서 양념을 쳐줘야 한다. 박진희 누나 역시 다소 무거운 이미지로 극의 중심을 잡아줬다. 반면 하팀장은 박지영 배우에게 아부를 떨기도 하고, 후지이 미나에게 프로포즈 하는 장면도 있다. 결국은 러브라인이 아니고 짝사랑 라인으로 그려지는데, 하팀장이 나오면서 극이 무겁게만 흐르지 않아서 좋았던 것 같다.”

사실 하팀장의 첫 등장은 ‘미세먼지에 미숫가루 타 먹는 소리 하네’란 대사로 기억됐다. 알고 보니 정강희의 애드리브였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처럼 정말 말도 안 되는 경찰의 멘트를 듣자, 하팀장이 시원하게 한마디 하는 대사이다.

“경찰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니까, 이런 심정을 그대로 대변한 말이 떠오르더라. 올 초 미세 먼지로 힘들어 했지 않나. 실제로 미세먼지를 손으로 쓸어서 모아놓으면 미숫가루 같기도 하고 톱밥 같다. 제가 한번 해봤던 경험이다. 그래서 그렇게 표현해봤다. ”

드라마 ‘초인가족’의 인연이 ‘닥터탐정’으로 이어졌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문경 십자가의 죽음 편’ 등 굵직한 에피소드들을 연출 한 바 있는 시사교양 PD 출신 박준우 감독은 ‘sbs ’초인가족‘ 조감독을 거쳐 ’닥터탐정‘으로 입봉하게 됐다. ’초인가족‘에서 1인 10역으로 활약한 정강희는 현장 오디션을 거쳐 ’닥터탐정‘의 조연을 맡게 됐다. 정강희는 “그냥 지나가는 말로 하는 게 아닌, 진짜로 저를 기억해주시고 이번 드라마에 불러주셨다”며 박준우 감독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 “아기공룡둘리 속 ‘도우너’로 첫 무대에 올랐어요”

정강희는 2002년 SBS 드라마 ‘야인시대’로 데뷔한 이후, SBS ‘귓속말’, ‘피고인’, ‘낭만닥터 김사부’, OCN ‘구해줘’ 등 다수의 드라마에 출연한 19년차 배우다. 물론 어디까지 공식적으로 알려진 출연 작품이다. 알고 보니 그는 20년 차가 넘는 연극 배우 출신이다.

열아홉살에 어린이 뮤지컬 ‘아기공룡 둘리’로 무대에 올랐다. 연기를 배우고 싶어서, 길거리에 붙여진 포스터를 보고, 무작정 극단으로 전화를 한 후 극단을 찾아갔다. 이후 ‘세균맨’ ‘호빵맨’ 등 다양한 어린이 공연에 출연했다. 공연 횟수 100회가 넘게 무대에 올랐지만 겨우 10만원을 손에 쥘 수 있었다. 그래도 대학로에 매일 출근해서 공연을 배울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렇게 1년을 대학로에서 지내다 스무살에 군대에 지원해 국방의 의무를 다했다.

제대 후엔 백화점 ‘판매왕’에 도전했다. 돈이 없어서 뛰어든 생계형 일자리였다. 2달간 450만원을 벌 정도로 판매에 소질이 있었다. 그가 소리를 지르면 너도 나도 와서 수세미를 사갔다. 사람을 홀리는 매력이 다분했기 때문이다. 생계를 유지할 돈이 모이자 미련 없이 배우의 길로 돌아갔다. 그 돈은 그가 프로필을 찍고 돌릴 수 있게 큰 도움이 됐다. 그렇게 ‘야인시대’ 오디션을 보게 됐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 (2006년)에 출연한 날도 그가 절대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정강희는 위트를 담아 ‘무려 오디션 50번을 보고 합격했다. 사실 봉준호 감독이 선택한 배우이다’고 말하며 자부심을 내보였다. 그는 영화 초반 자살하려고 매달려 있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정말 좋은 장면이었고, 심혈을 기울인 장면이었고, 멋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봉준호 감독이 선택한 배우라는 점에서, 그게 작은 역할이든, 큰 역할이든 함께 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죠.”

정강희는 “사실 봉준호 감독이 선택한 배우이다”이다는 비밀(?)을 알려줬다.정강희는 “사실 봉준호 감독이 선택한 배우이다”이다는 비밀(?)을 알려줬다.


■ 유쾌한 서울 사람 정강희 ..연기를 고민하다 ‘재미있게 ’


유쾌한 사람 정강희의 눈매는 살짝 내려가 있어서 다소 선한 인상을 준다. 이에 “하도 웃어서 그런가” 라는 말을 하더니 “동글 동글해서 선해보이나보다”고 다소 동의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배우가 그 상황에 맞춰서 변화하는 게 배우다. 카멜레온 같은 배우들이란 표현을 하듯이”라며 변화하는 게 좋음을 어필했다.



어렸을 때부터 ‘끼’가 있었던 정강희는 관심 받는 걸 좋아했다고 했다. ‘관종’의 모습이 내면에 있었던 것 같다고 자평했다. 결국 배우나 가수 다 관심을 받고 싶어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관심 받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겉으론 소심해도, 안에 있는 성향이 결국 보여주고 싶어하는 마음인거다. 관심종자 즉 ‘관종’이란 말이 인터넷 상에서 안 좋게 사용 돼서 그렇지, 우리 일은 관심을 받는 일이다. 관심을 받지 못하게 되면 결국 이 일을 못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저는 시청자들에게 관심 받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그의 취미는 ‘재미있게 연기 고민’을 하는 것. 그가 들려준 캐릭터의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겉으론 강한 척 하는데 실제로는 약하고 겁 많은 조직보스 캐릭터. 시도때도 없이 ‘아이고 아이고’를 연발하는 아저씨 캐릭터를 눈 앞에서 그대로 재현해서 보여줬다.

“전 등치 큰 부하가 손 올리면 ‘깜짝이야’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조직보스 캐릭터가 잘 어울릴 것 같다. 뭔가 재미있는 캐릭터가 좋다. 최근엔 ‘아이구’ 가 습관이 된 아재 같은 아저씨 캐릭터를 계속 머릿 속으로 생각하고 있다. 나이 들수록 혼잣말을 하는 분들이 많아진다고 하더라. 추임새가 많이 들어가는 거다. 젊었을 땐, ‘띵동’ 택배요 하면, 별 말 없이 ’네‘ 하고 나간다. 그런데 아저씨나 아주머니들을 보면 노래를 흥얼거리는가 하면, ’택배가 왔구나‘ 이이구 아이구, 가만 있어보자. 어떤 게 왔나’ 이렇게 계속 생활 연기 디테일을 보여주는거다. 숟가락 하나 드는데도. ’아이구 아이구‘ 하면 재미있을 것 같지 않나. 제가 올드한 감성이 있어서 그런가. 그런 디테일이 재미 있어 보인다. ”

■ 정강희의 ‘나의 왼발’

정강희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은 짐 쉐리단 감독의 ‘나의 왼발’(1989년)이란 영화이고, 가장 좋아하는 배우는 ‘나의 왼발’에 출연한 다니엘 데이 루이스이다. 연기자를 처음 하려고 마음 먹었던 게 이유도 바로 그 배우 때문이다. 중학생 시절 안방에서 방송된 토요명화에서 처음으로 ‘나의 왼발’을 봤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연기를 보고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목표가 생겼다. ‘내 생애 언젠가는 뇌성마비 환우 역을 꼭 해보고 싶다’ 고. ‘오아시스’ 의 문소리 배우 연기 역시 큰 감흥을 안겼다.

오디션에서 보여주려고 비장의 카드로 준비해 간 적도 있었지만, 갑작스럽게 보여주는 장애 연기는 거부감을 줬다. 그는 캐릭터를 차근 차근 보여줘야 납득이 되지, 갑작스런 뇌성마비 인물을 보여주면 공감이 되지 않아 거부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회가 된다면 직접 ‘나의 왼발’이란 영화를 제작하고 싶다는 꿈도 있다. 그래서 짐 쉐리단 감독 SNS도 서치해본 적이 있다. 그분의 SNS에도 ‘나의 왼발’ 사진이 메인에 떠 있을 정도로 소중한 작품이란 걸 알게 됐다.

“‘나의 왼발‘ 이란 작품을 모르는 사람도 많지만 몰라도 한번 보면 정말 좋은 작품이란 걸 알게 될 것 같다. 아역 연기자들도 진짜 연기 잘 하는 친구들을 섭외해야 해서 쉽지 않다. 사실 조카 중에 몸이 안 좋은 조카가 있어서 가까이에서 그들을 본 적이 있다. 복지센터에 가서 봉사활동을 한 적도 있는데 그래서 더 관심이 간 건지도 모르겠다. 이야기가 너무 ’나의 왼발‘로 갔나. 나의 오른발로 가야하는데. 하하하”

자연스러운 연기 디테일을 추구하는 정강희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배우의 ‘호흡’이다. 정말 저 사람 앞에 카메라가 있는 게 맞아?란 착각이 들 정도로 자연스러운 배우의 연기를 보면 희열을 느낀다고 했다. 그래서 송강호 배우의 연기를 너무 좋아한다고 했다.

덧붙여 “곽경택 감독의 영화 ‘챔피언’(2002년)이란 영화에서 배우 유오성씨가 포장마차에서 술 먹다 술 취한 장면의 호흡이 대단하다“고 전했다. 그는 ”취해서 주사를 부리는 게 아니라, 사람이 술에 취하면 평상시보다 호흡이 가빠지는데 그런 호흡을 디테일하게 표현해내시더라. 아직도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정강희는 “친구 울랄라세션 출신 군조(이영진)가 직접 그림을 그려준 캔버스화을 신고 왔다”고 말했다./사진=정다훈 기자정강희는 “친구 울랄라세션 출신 군조(이영진)가 직접 그림을 그려준 캔버스화을 신고 왔다”고 말했다./사진=정다훈 기자




/사진=정다훈 기자/사진=정다훈 기자


■ ‘정강이’로 기억될지라도...“좋은 사고 한번 쳤으면 해요”



이름 탓일까. 그는 군대시절 발음이 비슷한 ‘정강이’로 불렸다고 했다. 언뜻 들으면 여자 이름 같이 느껴지기도 하는 본명인 ‘정강희’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소중한 이름이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던지는 유머가 일품인 정강희는 본인을 “‘나의 왼발’로 이태원에 휴대폰 가져다 준 배우”라고 소개했다. 자신의 입으로 미담을 전하는 그의 모습이 얄밉지 않았다. 바로 그게 그의 매력이기도 했다.

그의 입을 통해 들은 미담은 휴대폰을 분실한 사람에게, 직접 휴대폰을 가져다 준 일화다. 술을 한잔하고 택시를 탔는데, 뒷좌석에 놓여있는 휴대폰이 자신의 것인 줄 알고 가지고 내렸는데 알고보니 누군가 택시에 흘리고 간 휴대폰이었다. 그렇게 휴대폰을 분실한 사람에게 전화가 왔다. 문제는 직접 찾으러 오겠다는 게 아닌 휴대폰 주인이 자신이 있는 이태원 쪽으로 휴대폰을 가져다 달라고 한 것. 마침 ‘닥터탐정’ 촬영이 없는 날이었다. 정강희는 뜨거운 여름 날, 스쿠터를 타고 직접 휴대폰을 가져다줬다고 했다.

“너무 뜨거운 여름 날이라 한 여름에 팔 토시로 무장을 하고, 직접 스쿠터를 운전해서 갔다. 갔더니 계좌번호를 불러달라고 하더라. 사실 사례 받을 생각도 없었고, 거기서 계좌번호 부르고 있는 것도 웃기더라. 그래서 ‘제가 정말 중요한 작품을 하고 있는데, 정말 사례를 해주고 싶으면 ‘닥터탐정’을 시청해주십시오‘ 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제가 TV를 안 봐서요‘ 라고 말하더라. 돌아오면서 생각해보니, 내가 택시 기사인지 알았던 것 같다.”

뭔가 어색했던 분위기로 끝난 미담은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며칠 뒤 드라마 톡방에 그 휴대폰의 주인 분이 ‘정강희씨 그때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는 글을 직접 올린 것. ‘닥터탐정’ 스크립터가 배우에게 이 사실을 알리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그날 휴대폰을 가져다주고 오면서도 ‘웃기다’는 생각이 들더라. 휴대폰을 들고 가는 내 모습도 웃기고, ‘닥터탐정’을 봐달라고 하는 내 모습도 웃겼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나도 모르게 미담을 바랬나보다. 그게 마음 속에 있지 않았을까 란 생각과 함께 말이다. 톡방에 올렸다는 사실을 알기 전에, 그분도 분명 속으론 감사하고 있을거라고 추측했다. 내가 휴대폰을 분실해본 경험이 있어서, 마음고생이 심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찾아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내가 내 어필을 하고 있는건가. 하하”

정강희와의 대화는 유쾌함과 따뜻함이 가득했다. ‘캐릭터 배우의 1인자’ 를 꿈꾸는 정강희는 꿈을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가겠다고 했다. 수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간 인터뷰 현장이었다. 인터뷰 말미 정강희는 “ 군조가 그려준 캔버스화”다며 끈끈한 우정을 자랑했다. 정강희와 울랄라세션 출신 군조(이영진)는 10대 시절부터 우정을 키워온 사이다. 둘은 불후의 명곡에 함께 출연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정다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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