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10월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노스캐롤라이나주 브래그 기지의 육군 특전단을 방문했다. 케네디 대통령은 특수부대를 지휘하던 윌리엄 P 야버러 준장이 정식 군모가 아닌 녹색 베레모를 쓴 모습을 보고 “멋지다. 그린베레가 어떠냐”고 치켜세웠다. 야버러 준장은 기다렸다는 듯 “오랫동안 이 모자를 원해왔지만 금지규정 탓에 못 쓴다”고 호소했다. 백악관은 이듬해 대통령 특명으로 녹색 베레모를 공식 허용했고 그린베레는 특전단의 상징으로 굳어졌다. 몇 년 후 케네디 대통령의 장례식날 의장대로 참석했던 미 특전단은 그를 기리기 위해 베레모를 벗어 유해에 올려놓았다고 한다.
베레모는 16세기 프랑스 남서부와 스페인 북부 바스크 민족의 농부들이 즐겨 쓰던 평범한 전통모자에서 유래한다. 베레(beret)는 모직물 천으로 만든 챙이 없는 모자를 일컫는데, 라틴어 ‘birrus(모자 달린 망토)’에서 나온 말이다. 군용 베레모는 1889년 프랑스 육군 산악부대가 암벽 등반에 처음으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대에 바스크족 병사들이 많았던데다 산악작전을 벌이려면 챙 있는 모자가 불편했기 때문이다. 이후 1924년 영국 기갑부대도 전차용 모자로 검정 베레모를 채택했는데 비좁은 전차 안에서 사용하기 편리하고 기름이 스며들어도 잘 표시가 나지 않는 장점을 갖추고 있어서다.
베레모는 제작 단가가 낮아 대량생산이 가능한데다 다양한 색깔로 만들 수 있어 세계적으로 특정 병과를 상징하거나 내부 단결을 도모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프랑스 육군은 부대원들이 눈 속에서 고립됐을 때 멀리서도 식별이 가능하도록 베레모를 쓰고 있으며 유엔평화유지군은 ‘블루 베레’를 착용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버나드 로 몽고메리 장군은 일반 모자보다 크고 부대표시가 달린 검은 베레모를 즐겨 써 ‘몬티 베레’라는 애칭을 얻기도 했다.
육군이 내년 6월부터 모 소재의 베레모를 챙 달린 전투모로 전면 교체할 방침이다. 베레모는 소재 특성상 통풍이 잘 안 되고 땀도 배출되지 않을뿐더러 챙이 없어 햇볕을 막지 못해 여름철이면 병사들의 불만이 높았다고 한다. 베레모가 강인한 이미지를 심어주고 휴대성이 좋다며 교체한 지 10년 만에 원래대로 돌아가는 셈이다. 병사들의 전투모 하나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수시로 바뀌는 우리 군의 단견이 더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정상범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