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부문 활력이 약해지는 상황에서 재정을 통해 효과적으로 보완하는 게 정부의 기본 책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1일 청와대에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약 1시간 30분 만났습니다. 홍 부총리가 문 대통령에 주요 경제 현안을 보고하는 자리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이 홍 부총리에게 지시한 내용은 단순합니다. 경기 보강을 위해 확장재정에 보다 박차를 가하라는 겁니다. 홍 부총리는 “우리 경제 건전성은 견고하나 최근 거시경제 지표상 긍정적·부정적 지표가 혼재하는 만큼 확장적 재정정책 일환으로 올해 예산의 이용·불용 최소화를 통해 최대한 집행되도록 중앙·지방 정부가 협력하겠다”고 보고했습니다.
정부가 돈 풀어 경기 띄우려는 확장 재정정책을 펴는 가운데 기획재정부는 지난 6월 국책 연구기관인 조세재정연구원에 연구 용역 하나를 맡겼습니다. 제목은 ‘재정정책의 거시 경제적 효과 분석’. 말 그대로 정부가 돈 풀기(재정지출)를 늘렸을 때 경제 효과(국민소득 증가)가 얼마인지를 의미하는 재정 승수를 따져보기 위한 작업으로 보입니다. 돈 푸는 효과를 알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니 연구용역 자체가 부자연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눈에 띄는 것은 기재부 내에서 어느 부서가 이 용역을 냈느냐는 점입니다. 기재부 내에는 경제 정책을 총괄 기획하는 경제정책국과 재정 건전성 등 재정 전략을 짜는 재정혁신국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재정정책의 거시 경제적 효과 분석’ 연구용역은 경제정책국이 아닌 재정혁신국 소속 재정건전성과가 발주 했습니다. 이 부서는 재정 수지와 국가채무 등 재정 건전성을 관리하는 곳입니다. 확대재정 정책을 경계(?)하며 건전성 관리를 해야 하는 부서입니다. 경제정책국이 확장재정 정책 효과를 파악하기 위해 연구용역을 냈다면 수긍이 가지만, 재정 건전성 담당 부서에서 용역을 냈다니 고개가 갸웃해집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재정 당국이 쏟아지는 확장재정 주문을 제어할 수 있는 명분을 찾기 위해 연구 용역을 낸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옵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크게 보면 기재부가 연구 용역을 낸 것이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어느 부서가 발주했는지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경제 정책 부서에서 연구 용역을 맡겼다면 확장 재정의 명분 찾기용으로 해석될 수 있고, 재정 관리 부서에서 냈다면 반대로 속도 조절을 위한 명분용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실제로 정부는 내년도 예산을 올해보다 9.3% 늘어난 513조원으로 편성했습니다. 2년 연속 9%대 증가율의 초(超)팽창 예산이지만, 여권에서는 이보다 많은 530조원 규모로 편성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기재부 내에서는 ‘530조원 예산’ 주문에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확장 재정에 드라이브를 건다 해도 재정이 감당하지 못할 규모를 여권에서 주문한다는 시각이었습니다.
반대로, 어째 됐든 연구 용역 결과가 정권 차원의 확대 재정 명분으로 쓰일 수 있다는 견해도 없지 않습니다. 현재 기재부에서 산출하는 재정승수는 10여년 전 데이터와 모형을 따르고 있다고 하는데요, 이번 효과 분석을 통해 재정승수가 높아지는 결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재정승수가 높다는 것은 재정의 효과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확장재정의 ‘안성맞춤’ 명분이 됩니다. 실제로 기재부는 재정승수를 0.3~0.4 정도로 추산하고 있는데요, 이는 국책·민간 연구기관들에 비하면 턱없이 낮습니다. 현대경제연구원과 국회예산정책처가 최대 0.49로 분석하고 있고,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은 최근 연구 보고서에서 1.27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악화하는 세입 여건 속에서의 확대 재정 드라이브, 이로 인한 급격한 재정 건전성 악화 등을 놓고 전문가들 견해가 엇갈리는 가운데 올 11월께 나올 연구용역 결과가 주목됩니다.
/세종=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