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주년을 맞이한 부마항쟁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이끌던 국군보안사령부가 야당이었던 신민당 당원들을 사찰하고 시위 주동자·가담자 등을 체계적으로 분류해 관리·기록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인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5일 “1979년 10월 작성된 보안사령부의 비공개문건을 열람한 결과, ‘신민당 당원하부동정’, ‘합수단 조치사항’ 등의 목록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우선 ‘신민당 당원하부동정’은 날짜별로 7명 당원의 구체적인 세부 동선 등을 기록했다. ‘박00, 10월 19일 오전 9시5분 KAL편으로 도주했으나 소재불명’, ‘김00. 10월 21일 12시 신민당원의 장남 결혼식에 참석 후 상경 예정’이라는 등 가족과 관련된 일정까지도 적시돼 있다. ‘합수단 조치사항’은 ‘데모 배후 조종 혐의’, ‘포고령 위반’ 등으로 구분해 기록하고 있었다.
‘데모 배후 조종 혐의’에는 △ ‘외국어대 3년 황00(26)-조사요지: 남민전 관계자 김00, 박00(여)로부터 포섭. 10월 16일 부산대 데모 총책 정00(부산대 철학과 3년)를 선동한 혐의이나 계속 부인 중’ △ ‘고대 법과4년 김00(25)-조사요지: 황00으로부터 포섭돼 마산데모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혐의’ △ ‘전 서울대 철학과 주00(25)-조사요지: 김00와 함께 마산데모에 주도적 역할을 한 혐의’ 등의 기록이 남아있었다.
‘포고령 위반’ 항목에는 △ ‘부산지역 덕포동 260-2 이00(20)-조사요지: 부산대생 700명이 구속됐다. 고문으로 손톱이 빠졌다. 군인이 데모했다는 등 유언비어 유포’ △ ‘부산 동구 초량3동 김00(22)-남포동에서 여학생 1명이 죽고 남학생 1명은 할복자살했다는 등의 유언비어 유포’라는 내용이 기록돼 있었다.
보안사령부가 ‘사건처리결과’를 통계도 별도로 관리하고 있던 것으로 나타났다. 신분별로 학생·일반인·방위 등으로 세분화한 뒤 부산과 마산에서의 입건 건수를 각각 헤아려 기록한 것이다. 신병조치에 따라 A급(구속 입건대상), B급(불구속 입건대상), C급(훈방분류)으로 나눠서 사건을 관리한 내용도 있었다.
김 의원은 이와 관련해 “지난해 활동을 종료한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 및 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부마행쟁심의위)의 조사 부실을 일부 증명한다”고 지적했다. 부마항쟁심의위는 지난해 2월 3년간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러나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진상 은폐보고’라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심의위는 보상문제 등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당시 구금 인원 등 정확한 명단 확보가 중요하지만, 관련 자료가 남아있지 않다는 취지로 보고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내일이면 부마항쟁 40주년”이라며 “정확한 진상 조사를 통해 역사의 아픔을 치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마항쟁은 1979년 10월 16일부터 닷새간 부산과 마산(현 창원시 마산합포구·회원구)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으로 단기간의 시위 기간에도 군사정권 철권통치를 끝내는 계기를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현주 인턴기자 apple2609@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