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과학기술원(UNIST) 스포츠센터 지하 1층에 있는 작은 카페.
카페 규모는 가로, 세로 2m 남짓밖에 안 되지만 커피 기계, 제빙기, 시럽 기계, 온수기, 우유 냉장고 등 음료 제조에 필요한 설비들은 모두 갖췄다. 하지만 바리스타의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화면 메뉴판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누르자 로봇 팔이 움직인다. 로봇 팔이 컵을 하나 꺼내 들어 제빙기 앞에 내밀자 시원한 얼음이 한 움큼 쏟아진다. 이어서 커피머신으로 컵을 옮기자 이번엔 에스프레소가 담겼다.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 완성됐다.
로봇카페 ‘로비스’를 개발, 운영하는 박기범·김민수 공동 대표는 이 대학 기계공학과 12학번 학부 동기다.
석사과정에서 제어설계공학을 전공하며 스마트팩토리연구실에 몸담았던 박 대표는 로봇카페도 일종의 스마트팩토리라고 설명했다. 각종 설비가 신호를 주고받으며 전 생산과정을 자동화 시스템으로 움직이게 하는 원리가 같기 때문이다.
카페를 선택한 건 시장규모가 크고 진입 장벽이 낮아서다. 그야말로 아이디어 하나만 믿고 호기롭게 창업을 결심한 박 대표에 관심을 보인 건 학부 동기 김 대표였다. 이들은 휴학계를 내고 6개월 동안 철야를 밥 먹듯 하며 시스템 개발에 돌입했고, 어렵게 정부로부터 소정의 지원금을 받게 됐다. 여기에 개인 자본금을 더해 지난 2018년 9월 로비스라는 사명으로 회사를 설립했다. 로비스(Rovice)는 로봇(Robot)과 서비스(Service)를 결합한 말이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에서 운영하는 창업성공패키지 사업화지원 청년창업사관학교에도 선정된 로비스는 일대일 창업 지도를 받으며 창업한 지 1년도 안 돼 시제품을 제작했다. UNIST 창업팀의 도움으로 현재는 카페도 운영하게 됐다. 로비스 카페는 일종의 테스트베드로 지난 7월 시범운영을 위해 설치한 것이다.
박 대표는 “작은 사무실부터 내고 본격적으로 각 기계를 움직일 수 있는 통합 시스템을 개발했다”며 “나는 시스템제어설계 쪽을 담당하고, 김 대표는 소비자가 사용할 애플리케이션과 서버를 구축했다”고 말했다.
로비스 카페는 자판기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자판기 인허가를 받을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설치할 수 있다. 또 무인이기 때문에 24시간 운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앱으로 미리 주문하고 카페에서 바로 커피를 가져갈 수도 있다. 로비스는 내년부터 B2B 시장 위주로 본격적으로 로봇카페를 보급할 계획이다. 벌써 관심을 보이는 업체들이 여럿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는 울산 북구에 있는 톡톡팩토리(울산시가 청년창업자에게 제공하는 제조공간)에서 상용제품을 준비하고 있다.
박 대표는 “앞으로 단순노동은 로봇으로 대체돼 무인화가 급속도로 퍼질 것”이라며 “로봇 서비스 시장이 활짝 열렸을 때 시장을 선도하는 업체가 되도록 열심히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울산=장지승기자 jj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