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단독]말뿐인 SW강국…고교 절반이 안배운다

[교육개혁이 미래다]

관련 예산·전담교원 확보 소홀

48%가 '정보' 과목 개설 안해

초중고 코딩 연계교육에 차질

SW중심大 입시 불이익 우려도

2216A01 초중고 SW교육 운영 비율(16판)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정부가 소프트웨어(SW) 교육 강화를 외치지만 국내 일반고등학교의 절반가량은 SW를 교육하는 ‘정보’ 과목이 개설조차 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SW 강국’이라는 거창한 구호만 내세울 뿐 초중고교에서 대학으로 이어지는 통합적인 대책 마련은커녕 관련 예산이나 전담교원 확보에도 소홀하기 때문이다.21일 교육부 등에 따르면 국내 1,556개 일반고 중 정보 과목을 개설해 SW를 교육하는 학교는 52%인 809개에 불과했다. 이는 고교 정보 과목의 경우 의무 시수가 필요없는 ‘일반선택’으로 지정돼 있기 때문이다. 반면 초교와 중학교는 새 교육과정에 따라 지난 2018년 이후 SW 의무교육이 시작됐다. 이에 따라 중학교의 정보 과목 채택률이 2017년 28%에서 올해 83%, 내년 100%로 올라가게 된다. 정작 정보화 교육이 시급한 고등학교만 SW 교육의 불모지가 돼가는 기형적 구조가 만들어진 셈이다.

한 사립고 교장은 “선택과목은 개설 의무도 없는 상황에서 같은 교과영역 내의 오래된 기존 과목과 해당 교원을 그대로 둔 채 신규 과목의 교원을 새로 채용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이처럼 고교에서 SW 교육의 연계성이 끊긴다면 대학 과정 이전에 기초 코딩(프로그래밍) 교육이 제대로 이뤄진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SW 교육 확대를 선도하는 ‘SW 중심대학’이 올해 40여개로 확대되면서 SW 수업이나 동아리 활동이 없는 고교 학생들이 입시에서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도 크다. SW 중심대학 등의 ‘SW 특기자전형’에 응시하려면 사교육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필수교육이 시작된 초교와 중학교도 의무시수는 17시간과 34시간으로 각각 6개월간 주 1시간, 1년간 주 1시간 학습하는 분량에 그쳐 내실 있는 학습에는 못 미친다는 지적이다. 중국이 초교 3학년부터 연간 70시간, 일본이 중학교 55시간·고교 70시간을 교육하는 것에 비하면 격차가 큰 셈이다.

SW중심대학협의회장인 서정연 서강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대학 1·2학년 때 창업해 3·4학년 때 상업화에 도달하는 질 높은 창업이 이뤄지려면 현재와 같은 SW 교육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가장 중요한 초중고 단계에서 교원 및 인프라를 확충하고 교육 시수를 늘리는 등 예산 투입이 중심이 된 SW 공교육 종합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희원·김지영기자 heew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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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소프트웨어(SW) 중점 교육이 고등학교 단계를 외면하는 등 초기부터 뒤틀리는 이유로 전문가들은 제대로 된 예산 확보도 없이 ‘SW 교실 혁명’을 내세우고 있는 정부의 ‘꼼수’를 꼽는다. 지난 1990년대 말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 여파 속에서도 1조원대의 예산을 투입한 ‘교육정보화 촉진계획’으로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의 기반을 닦았다. 반면 현 정부는 인공지능(AI) 혁명을 위한 ‘제2의 교실 선진화’ 작업을 강조하면서도 별반 예산이 안 드는 초등학교· 중학교 위주로 기초 SW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이처럼 기초 교육의 부실화를 막기 위해서는 의무교육과 이수시간 확대와 예산 확보, 전문 교원 확충 등의 ‘정도(正道)’로 돌아간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불모지가 된 고교 SW 교육=고교 정보화 교육의 부실화는 새 교육과정인 ‘2015 개정교육과정’에서 고교 정보 과목을 초등학교·중학교와는 달리 ‘독립 교과’로 지정하지 않으면서 이미 예견됐다. 고교의 정보 과목은 ‘생활교양 교과 영역’에서 기술가정·제2외국어·한문·교양 등과 채택 여부를 겨루는 일반선택 과목에 포함됐다. 대부분 기존 교원이 존재하는 오랜 전통의 과목들과 경쟁해야 하는데다 비전공자가 가르치기도 어려워 신규 개설률은 낮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고교의 SW 강화 방안이 마련되지 않은 것은 예산 부족 때문이다. 초등학교는 기존 담임교사가 SW 교육을 담당한다. 중학교 역시 이수시간이 많지 않은 탓에 학교당 교원 1명 정도만 필요하고 고등학교와 달리 타 과목 교사가 연수를 통해 가르치는 ‘상치 교사’ 등이 있어 그리 많은 예산이 소요되지 않는다. 실제 내년부터 3,200여개 중학교 전체에서 SW 교육이 실시되지만 2017년부터 내년까지 충원되는 중등 SW 교원 수는 신규 교원 약 555명 등 총 600여명에 그친다.

SW 교육 확대에 따른 교원 특수 역시 없어 한때 20여개에 달했던 사범대학 컴퓨터교육과는 현재 8개로 줄었고 한 해 모집인원도 학교당 30명이 최대로 전국에서 총 160명 수준이다. 서울에서는 2015년 고려대가 학과를 없앤 이래 성균관대 1곳만 운영된다. 한 임용고시 준비생은 “올해 서울·경기 100여명 등 총 225명을 뽑아 숨통이 트이는 듯 했지만 내년엔 서울·경기 60여명 등 137명으로 다시 줄어든다”며 “고교 교원의 확충 없이 SW교육을 설계한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는 초·중등 SW 교육 강화를 외치면서도 교원 연수비, 일부 노후기기 교체비, 일부 무선망 설비 비용 등 ‘푼돈’을 제외할 때 별다른 예산을 집행하지 않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전공 탐색 및 기초 코딩(소프트웨어) 교육이 이뤄져야 할 핵심적인 고교 단계를 ‘자율 선택’에 맡기는 형태로 SW 교육을 시작하는 모양새만 갖추게 된 셈이다.

오는 2025년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골라 듣는 ‘고교학점제’가 일반고에 전면 도입되지만 현 추세대로라면 큰 변화가 나타나기는 힘들다. 제2외국어 등 동일 교과 영역 내의 다른 과목과는 달리 정보 교과는 진로선택(3학년용) 과목 없이 일반선택(2학년용) 과목 1개만 지정돼 있어 심화학습 역시 사실상 배제돼 있기 때문이다. 과목을 배워도 2개 학기(1년) 동안 주 2시간 수업을 듣는 분량에 그친다.



◇‘정보 강국’이라고… 공교육은 OECD 최하위 수준=예산 가뭄 속에 대다수 학교들은 교원 확보에 앞서 ‘집보다도 느린’ 인터넷 인프라부터 개선해달라고 호소하는 지경이다. 현재 국내 초·중등학교의 디지털기기 접근성 및 활용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 수준이고 1인당 PC 보유 비율은 OECD 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태블릿기기 사용을 위한 기초 기반인 무선망도 내년 상반기에야 전국 초·중학교당 최소 4개 교실에 설치가 완료되며 고교의 경우 내년 상반기 추진을 준비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올해로 초·중학교 SW 교원 연수가 상당 부분 마무리되기에 재정 당국은 당장 내년 예산 축소부터 거론하고 있다”며 “예산 없이 4차 산업혁명 시대 변화에 대응하면서 학교 정보화 경쟁력이 얼마나 추락했는지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SW 교육 확대를 위해 선정된 ‘SW 중심대학’은 올 하반기 40개로 늘어나 고교에서 정보 과목을 배우지 못한 학생들이 입시에서 불이익을 입을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종로학원하늘교육에 따르면 이번 2020학년도 입시에서 32개 SW 중심대학은 SW 중점학과를 통해 신입생 4,212명을 선발하며 이 중 56%인 2,379명을 수시모집 ‘학생부종합전형(학종)’으로 뽑는다.

학종 전형이 교과 이수와 비교과 특기, 동아리 활동 등 ‘전공 적합성’을 중점 평가하는 만큼 해당 교원이 없어 수업 및 동아리 활동 등에 참여하지 못한 학생들이 상대적 피해를 입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든 셈이다. 특히 고려대·KAIST·한양대 등 주요대를 중심으로 늘고 있는 ‘SW특기자전형’의 경우 SW 실기능력이나 입상 실적 등을 요구해 지도 교사가 없다면 일체 사교육에 의존해야 한다. 반면 130명을 선발하는 서강대의 SW관련학과 입학 경쟁률은 2015학년도 22.5대1에서 2019학년도 35대1로 치솟으며 10대 1 이하인 전국 평균 경쟁률과 큰 차이를 보이는 등 고교생들의 SW 선호도는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김미량 성균관대 컴퓨터교육과 교수는 “지난 3년간 정부의 SW 교육이 ‘정착’ 단계를 밟았다면 앞으로는 실질적인 강화 단계로 나아가야 유의미한 조기 창업 등의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며 “교육 강화와 예산 확대를 연계한 ‘제2의 교실 선진화’를 모색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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