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0월24일 오후4시5분 런던. 브리티시항공 소속 콩코드 여객기(BA 002)가 히드로공항에 내려앉았다. 미국 뉴욕 존F케네디공항을 이륙한 지 3시간40분 만의 착륙으로 콩코드기는 다시 뜨지 않았다. BA 002 편이 착륙하기 직전 에든버러와 비스케이만에서 날라온 콩코드기 2대가 먼저 도착해 같은 활주로에서 3대의 콩코드기가 고별행사를 치렀다. 우주의 경계 부분까지 올라가 총알보다 빠른 속도로 비행하던 세계 유일의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는 이렇게 역사 속으로 들어갔다.
초고속 현대사회의 총아로 기대를 모았던 콩코드 여객기는 어쩌다 상업운항을 시작한 1976년 1월 이래 27년 9개월 만에 날개를 접었을까. 세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는 소음. 음속을 돌파할 때 발생하는 굉음으로 항로 주변 주민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미국이 한때 콩코드의 운항을 불허할 정도였다. 둘째는 채산성. 기체 길이가 61.66m로 보잉 747 점보 여객기(초기형)보다 불과 9m 짧았지만 승객은 4분의1밖에 태울 수 없었다. 당연히 운임이 5~10배 비싸고 운항 내내 적자에 시달렸다.
결정적으로 1973년 10월 터진 4차 중동전 직후 아랍 산유국의 석유 무기화 이후 기체에 대한 관심이 아예 사라졌다. 콩코드기를 사전 예약한 16개 항공사가 2차 석유 위기를 전후해 72대의 구매를 취소했다. 결국 생산은 시제기 4대를 포함해 20대에 그쳤다. 셋째 요인은 안전성. ‘비싸도 빠르고 안전하다’는 점을 내세워 최고급 여객기라는 이미지를 심었지만 2000년 7월 파리 드골공항을 이륙하던 프랑스항공 소속 콩코드기의 랜딩기어에 다른 여객기에서 빠진 부품이 날아 들어와 추락, 전원 사망한 사고 이후 부자들마저 발을 돌렸다.
애초부터 콩코드는 무리하게 떴다. 7,000만파운드로 책정했던 개발비가 13억파운드로 뛰어 수지를 맞출 수 없었다. 영국과 프랑스가 돈이 없어도 개발 프로젝트를 밀고 나간 것은 미국과 소련에 뒤지는 상황에서 콩코드기를 자존심의 상징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소련이 콩코드기에 앞서 개발을 마친 초음속 여객기 TU-144도 채산성과 안전성 때문에 보다 일찍 사라졌다. 콩코드의 퇴장은 인류 문명사 측면에서도 의미가 깊다. 오직 ‘보다 더 빨리’를 향해 무한 질주하던 인간이 속도를 조정한 첫 사례이기 때문이다. ‘콩코드의 오류’에도 각국은 다시금 극초음속기 개발 경쟁을 펼치고 있다. 과연 제대로 뜨고 수지를 맞출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