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건축과 진학 희망자가 줄고 있다. 로스쿨 같은 전문 체제로 전환한 5년제 건축대학 졸업자들이 건축사사무소에 취직하는 비율은 매우 낮다. 이유를 한마디로 말하면 사회로 쏟아져 나오는 건축사 숫자가 너무 많아서다. 단순히 통계로만 보면 우리나라보다 인구 대비 건축사 비율이 더 많은 나라가 적지 않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과 여건은 다르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특별한 대량공급 주거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지어지는 주택의 60% 이상이 공동주택이다. 그중에서도 아파트가 압도적으로 많다. 아파트는 대개 개별동이 아닌 대형단지로 지어지고 있으며, 최근 들어 규모가 더 커지고 있다. 재개발과 재건축을 통해 단독주택은 사라지고, 동수가 적은 아파트단지들은 인접한 단지와 연합해 더욱 큰 단지로 변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대규모 프로젝트가 소수의 인원에게만 업무가 집중되는 독점적 시장을 형성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큰 프로젝트라고 해도 한명의 건축사가 모든 법적인 심의·허가행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대규모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건축사사무소들은 직원 수가 수백명에서 1,000명이 넘는 규모로까지 커진다. 여기서 건축설계 시장이 2대8의 파레토 법칙으로 극단적으로 왜곡되고 있다. 소수의 독점이 점점 심화하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이 현상은 건축사의 문제라기보다 시장구조 전체의 문제다.
그 과정에서 많은 건축사는 생계를 걱정할 처지가 됐다. 현재 건축사는 2만4,000명이 훌쩍 넘게 배출됐는데, 이들 중 실제 건축사사무소에 등록한 건축사는 50%를 간신히 넘은 1만4,000여명이다. 물론 일부 건축사들은 회사에 소속돼 있거나 타 직종에도 종사하고 있다. 전체 자격자의 절반만 시장에서 활동하는 것이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다수의 건축사는 고군분투하며 생존의 문제 한가운데에 있다. 십수년을 공부하고 실무를 익혀야 합격할 수 있는 건축사 자격을 취득한 기쁨도 잠시, 냉혹한 현실 앞에 좌절하며 자신의 미래에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방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다가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면서 탈법과 편법의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전문가들의 일탈에 따른 피해는 자신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회와 국민에게로 확대된다. 의사는 한명의 진료를 잘못해서 의료 사고를 내지만, 건축사가 잘못하면 수백명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어 책임이 막중하다. 외국의 예를 보면 중국은 건축사를 국가 기반 사업자로 대우하고, 독일은 건축사를 공무원으로도 채용한다.
이는 한 직능단체가 이기주의적 관점에서 주장하는 게 아니다.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으로서 주어진 본분을 다할 수 있는 여건에 관한 국가적 배려를 말하는 것이다. 정부는 전문가의 사회적 수요 못지않게 적절한 공급도 고민해야 한다. 더불어 독일처럼 건축사가 공무원과 같이 건축물 인허가를 책임지는 등 자격자가 정상적으로 시장에서 활동할 수 있는 방안 또한 검토해볼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