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문화가 인터넷을 넘어 매스미디어·공공 부문에서도 폭넓게 사용되는 등 ‘그들만의’ 마이너 문화에서 메이저 문화의 위치까지 넘보고 있다. 다만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을 희화화하고 풍자하거나 사회에서 터부시됐던 부분을 건드리다 보니 누구나 웃을 수 있게 한다는 B급 문화가 사회적인 논란을 촉발하거나 세대간·세대내 갈등을 일으킨다는 우려도 함께 제기된다.
B급 문화를 반영한 인터넷 콘텐츠는 공공 부문에서도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육군의 웹드라마 ‘백발백중’이다. ‘삼촌에게 배웠던 군대는 잊어라. 지금 이 순간 실제 병영문화를 보여주겠다’며 지난 2016년 시작된 후 신체검사·부대 족구 등을 다룬 콘텐츠가 유튜브 조회 수 50만을 가볍게 넘기는 등 소위 대박을 쳤다. 육군은 현재 시즌 4를 제작하고 있다.
예비군 훈련소에서는 백발백중의 예비군 조교 편을 즐겨 틀고는 한다. ‘훈련소 조교는 명령권이 있지만 예비군 조교는 부탁권이 있다. 마치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라는 내레이션이 들어간다. 재미있게 보다 보면 예비군들이 자연스레 ‘조교들이 힘들겠구나’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셈이다. 이 콘텐츠는 조회 수 100만 건을 넘겼다.
이처럼 B급 문화가 일반화되면서 문화적 다양성과 풍요로움이 커졌다는 분석도 있지만 때로는 가벼움에 치중한 나머지 본질을 흐린다는 비판도 있다. 2016년 고용노동부가 ‘왜 내 통장은 늘 텅장(텅텅 빈 통장)인 걸까’라며 올린 카드뉴스에는 ‘1.커피 2.택시 3.세일 4.덕질’로 구성됐다. 누리꾼들은 이에 대해 ‘1.최저임금 2.임금 체불 3.높은 물가’라는 글을 올리며 비꼬았다. 국민에게 가볍게 접근하겠다며 B급 문화를 사용했지만 오히려 역효과만 본 셈이다.
공감을 중시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을 희화화하다 보니 젠더·세대 갈등만 조장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신유행 프로그램을 둘러싼 논란은 대표적인 예다. 여성 출연자가 “영앤핸썸 빅앤리치 톨앤머슬(어리면서 잘 생기고, 성기가 크면서 부유하고, 키가 크면서 근육질)이 제 이상형이다”라고 말하는 부분은 경제력 없이 눈만 높은 여성상을 만든다는 지적을 낳았다. 반대로 남성 출연자를 ‘밥줘충(자기가 혼자 밥 차려 먹지도 못하는 남성이 ‘밥 줘’만 외친다고 비꼬는 말)’으로 묘사하는 장면은 또 남성에 대한 공격이라는 비판의 대상이 됐다.
B급 문화가 일부 관심 있는 사람만 즐기는 하위문화에서 보편적 주류 문화의 위치로 올라오면서 세대 간, 세대 내에서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모 대기업의 부장 A씨는 “지난해 딸이 시바견 캐릭터가 있는 치약 가글을 주문하자고 해서 봤더니 ‘가글가글 상쾌해 시바’라고 돼 있었다”며 “시바견으로 욕 같은 말장난을 친 것인데 사자니 애 교육에 안 좋을 듯하고 안 사자니 딸한테 ‘꼰대’ 소리를 들을 것 같아 망설였다”고 말했다. 회사원 3년 차 B씨도 “최근 후배를 만났더니 인터넷에서 영화 ‘타짜’의 곽철용이 유행이라고 하기에 ‘10년도 전 영화가 화제가 되네’했더니 곽철용을 연기한 김응수씨가 MBC 라디오스타에도 나왔다”며 “하지만 개인적으로 왜 재미있는지 잘 모르겠다. 이런 조류에 동참하지 않으면 ‘인싸’가 아닌 ‘아싸’가 되는 것 같아 불편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B씨의 나이는 20대 후반이다.
전문가들은 B급 문화가 주류로서의 위상을 갖게 된 만큼 이를 다루는 사람들에게 책임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인터넷 문화가 대세가 돼 이제는 주류 문화의 한 부분으로 인정할 시점이 온 것 같다”며 “다만 인터넷에서 아무렇게나 표현하던 것을 매스미디어와 같은 주류 플랫폼에서 똑같이 해도 된다고 강변해서는 사회적 논란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주류 문화로 올라온 이상 조심할 줄 아는 성숙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