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기업이 민생이다] ILO핵심협약 비준·노동법 개정...더 기울어진 운동장에 선 노사관계

해고자·실업자 노조 가입 허용 등

노동계에 유리한 내용만 들어가

일방적 부당노동행위 규제 해소 등

경영계 의견은 배제돼 勞가 우위에

노동시장 국가경쟁력 악화 우려




“ILO 핵심협약 비준 문제는 노사관계의 기본 틀이 바뀔 만큼 중대한 사안임에도 개정안의 내용은 국내 노사관계의 특수성을 외면하고 있습니다.”(한국경영자총협회)

실업자와 해고자도 기업별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는 노동관계법 개정안이 이달 초 국무회의를 통과하자 경영계는 아연실색하고 있다. 예상은 했지만 개정안에는 경영계의 요구사항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노동계의 편향된 내용만 포함됐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노동관계법 개정안은 국무회의에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안을 의결함에 따라 통과됐고 정부의 행정절차가 끝나 국회에서 관련 개정법안을 처리하는 일만 남았다”며 “이대로라면 국내 노사관계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아예 노동계가 우위에 서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번 개정안의 주요 골자는 실업자와 해고자의 노조 가입 허용, 공무원의 노조 가입 제한 해제, 퇴직교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것이다. ILO 협약은 총 189개다. 이 중 핵심협약은 노조활동 보장 협약, 강제노동 금지 협약, 아동노동 금지 협약 등 8개다. 기존에 국내에서는 이 중 4개를 비준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정부는 결사의 자유, 단결권, 강제노동 금지 등 3개 협약 비준과 이에 상충하는 국내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ILO 협약 비준과 함께 노동관계법 개정을 강행하자 경영계에서는 노조 권력이 더욱 강화된다며 반대하고 있다. 파업 시 대체근로를 허용하고 현행법상 사용자에만 적용되는 부당노동행위 처벌제도를 노사 모두에 균형 있게 적용해야 한다는 경영계의 요구사항이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미 노 측에 유리한 노사관계의 운동장이 더욱 기울어질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경제단체의 한 관계자는 “재계는 사회적으로 소통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노조는 더욱 강성으로 변하고 있다”며 “노조로의 쏠림이 더 심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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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안 중 가장 논란이 되는 부문은 해고자나 실업자의 노조 가입 허용이다. 국내 노사관계는 유럽과는 달리 기업별 노조 중심 체제다. 재직자로 한정된 기업단위노조 가입이 해고자나 실업자로 확대될 경우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비롯해 노조에 힘을 실어주는 현상이 더욱 심화할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부당노동행위 문제와 관련해 사용자에만 일방적인 규제가 적용된다는 점도 노사 간 갈등을 유발시키는 요인 중 하나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 부당노동행위가 발생하면 노사 간 균등하게 규율을 하거나 노동위원회를 통한 원상회복, 행정제재 등으로 자율성이 부과된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노조가 사용자에 대한 압박수단으로 부당노동행위를 이슈화하며 고소·고발하는 사례가 이어져 사용자들의 부담이 큰 상황이다.

노조전임자 급여 지급 금지규정 삭제도 정당성에 어긋난다는 의견이다. 사용자가 노조전임자에게 급여를 지급한다면 독립적인 관계가 무너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국내와 비슷하게 기업별 노조 중심인 일본의 경우 노조전임자 급여는 노조 스스로 부담하고 있다. 경총은 “노조 전임자 급여 지급 금지와 근로시간 면제 한도 완화에 관해서도 전면 재검토돼야 한다”며 “노조의 자주성을 확보하는 방향에서 엄격한 운영제도를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노조의 편에 서며 재계와 노동계 간 갈등이 심화하는 동안 국내 노동시장의 경쟁력은 더욱 약화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국가경쟁력을 평가한 결과 한국의 노동시장은 141개 국가 중 51위로 전년보다 세 단계나 하락했다. 급여 및 생산성 항목에서는 14위를 차지하며 지난해보다 두 계단 상승했지만 노사 관계에 있어 협력(130위), 고용 및 해고관행(102위) 항목 등은 하락하며 노동시장 부문의 경쟁력을 끌어내렸다.

한국경영자총협회를 비롯한 경영계는 노사를 포함해 국민의 의견을 충실히 수렴해 균형된 개정안을 다시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총 관계자는 “ILO 핵심협약 비준 문제는 세계적으로 가장 강한 노동권 보장에 따라 형성된 강성노조와 대립적·갈등적·후진형 노사관계의 틀을 협력적·타협적·선진형 노사관계로 전환한다는 차원에서 논의되고 추진돼야 한다”며 “일방적인 부당노동행위 규제, 대체근로의 전면 금지, 파업 시 사업장 점거 등이 반드시 함께 해결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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