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벌거벗은 푸른 남자가 대로변에서 인사하는 까닭

조각가 유영호, 김종영미술관 '오늘의 작가'전

'인사하는 사람' 공공조형물 작업으로 유명

인사는 평화를 바라는 화해의 첫 걸음

세계 곳곳의 '그리팅맨 프로젝트' 진행중

유영호 ‘연천 옥녀봉-장풍 고잔상리 그리팅맨’ /사진제공=김종영미술관유영호 ‘연천 옥녀봉-장풍 고잔상리 그리팅맨’ /사진제공=김종영미술관



서울 중구 삼일대로의 롯데시티호텔 앞에는 온몸이 하늘색인 키 6m의 조각상이 큰 길을 향해 15도 허리 굽혀 인사하고 있다. 조각가 유영호의 ‘인사하는 사람(Greeting Man·그리팅맨)’이다. 작품을 마주하는 순간 호텔 방문객이든 행인이든 누구나 절로 환영받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사거리의 한 한의원 앞에 있던 ‘그리팅맨’은 한복을 입고 고궁을 찾는 외국인들 사이에 포토존으로 소문이 났다. 건물 앞이 과도하게 북적여 작품은 최근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널리 알려진 그의 작품 중 하나는 상암동 MBC 사옥 앞 광장에 놓인 ‘월드미러’로,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에 등장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지난 4월 27일 열린 남북정상회담 1주년 공연 ‘먼길’에서는 중국 첼리스트 지안왕의 연주 배경으로 대형 ‘그리팅맨’ 두 작품이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유영호가 김종영미술관의 ‘오늘의 작가’로 선정돼 다음 달 3일까지 전시한다. 3층 전시장부터 관람한다면 왜 남북정상회담 1주년 공연에 그의 작품이 등장했는지를 알 수 있다. 작가는 지난 2016년 4월 경기도 연천군 옥녀봉에 ‘그리팅맨’을 설치했다. 당시 남북관계는 최악이었다. 곧 전쟁이라도 날 듯한 상황에서 작가는 “휴전선을 경계로 마주 보고 인사하는 작품을 세워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연천군을 설득한 지 2년 만에 작품 설치가 성사됐다. 나머지 하나는 북한 쪽 황해도 장풍군 마량산에 세우는 게 목표지만 정치·군사적 문제 등으로 요원하다. 전시장에는 흰색 폼보드로 제작된 휴전선 부근 연천군과 장풍군을 축소지형이 놓였다. 등고선처럼 높낮이만 드러나는 이곳의 제일 높은 봉우리에 높인 키 28㎝의 푸른 ‘그리팅맨’이 마주보며 인사하고 있다.

신작 ‘평화의 길’ 앞에 선 조각가 유영호. /사진제공=김종영미술관신작 ‘평화의 길’ 앞에 선 조각가 유영호. /사진제공=김종영미술관


유 작가는 “입으로는 평화를 얘기하면서 실제로는 싸울 구실만 찾는 현실이 안타까웠다”면서 “남북이 서로 마음 터놓고 인사한 적 없다. 서로를 존중하는 가운데 만나고 이으려는 노력, 절실한 마음을 인사하는 사람의 형태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한 그는 개념미술과 사회참여형 예술로 유명한 독일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공부했다. 유학생이던 1999년 그룹전에 큰절하는 장면의 영상작품을 내놓았다. 이를 본 네덜란드 출신의 조각가 행크 피쉬가 “인사는 모든 관계의 시작점이다”고 말한 것을 계기로 ‘그리팅맨’을 구상했다. 옅은 파랑을 택한 것은 하늘·바다 등 “이념이나 성별에 치우치지 않은 중립적 색상”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작품이 남성성을 갖는 것에 대해서는 “남성 위주의 지난 역사에 대한 반성적 태도에서도 고개 숙이고 몸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했고, “옷 때문에 선입견을 가질 수도 있으므로 태어날 때와 똑같은 벌거벗은 모습”이라고 밝혔다.

유영호 ‘평화의 길’ /사진제공=김종영미술관유영호 ‘평화의 길’ /사진제공=김종영미술관


유영호 ‘평화의 길’ 세부. /사진제공=김종영미술관유영호 ‘평화의 길’ 세부. /사진제공=김종영미술관


3.5m 높이의 대형 그리팅맨은 지난 2007년 경기도 파주 헤이리에서 처음 선보였다. 이때부터 만남·화해·공존을 주제로 전 세계를 누비며 ‘그리팅맨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2012년 10월,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 그리팅맨을 설치했고, 이 작품을 계기로 장소의 지명이 ‘대한민국 광장’으로 바뀌었다. 2016년에는 태평양과 대서양이 만나고 북미와 남미를 잇는 파나마운하 근처에 작품을 세웠다. 이듬해에는 남반구와 북반구가 만나는 에콰도르의 적도 자리에도 ‘그리팅맨’을 놓았다.


1층 전체를 꽉 채운 하나의 작품 ‘평화의 길’은 어깨를 숙인 두 사람이 팔을 맞잡은 형태다. 그들의 팔 위로 국경과 인종을 초월한 다양한 사람들이 걸어다닌다. 작품 안쪽으로 들어가면 품에 안기듯 포근하고 벽에 드리운 그림자들을 보는 맛도 남다르다. “평화는 우리가 짊어진 것이자, 어깨를 낮추고 상대에게 먼저 내주는 자세에서 비로소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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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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